아까운 가을[유희경의 시:선(詩:選)]

  • 문화일보
  • 입력 2023-11-0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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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아무에게도 왜 사냐고 묻지 않았어요 넌 얼마나 가졌니, 나무에게 물으니 가난한 나뭇잎이 쏴아아 요란하게 떠들어댑니다 웃음을 꾹 참으면 안 깨끗한 물이 눈에서 흘러나옵니다 이것이 파도의 성분입니다’ - 임유영 ‘처서’(시집 ‘오믈렛’)
낙엽이 절정이다. 하나둘 떨어져 어느새 한가득한 낙엽을 두고 보다가, 마냥 그럴 수는 없어 빗자루를 들고 나선다. 한참 쓸고 있는데, 지나던 노인 한 분이 “아까우니 그냥 두어요” 하고 말을 건다. 농이겠거니 웃어넘겼는데, 노인이 떠나고 비질을 마친 뒤에도 나는 그 말을 반복해 떠올려보다가 마침내 궁금해지게 되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저 낙엽이 다 돈이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럼 나는 부자일 텐데. 그러나 낙엽은 돈이 아니고, 그러니 많아도 소용이 없고, 나는 여전히 가난하다. 그런 낙엽이 아깝다니. 바싹 마른 채 버려져 나뒹구는 낙엽이 어째서. 나는 노인에게 되물어보고 싶다. ‘선생님, 무엇이 아깝다는 뜻인가요. 쓸지 않으면 거리를 더럽히고 마는 저 낙엽의 효용이 대체 무엇이기에 그리 말씀하신 건가요.’ 혹시 아까운 것은 가을의 기분일까. 이 쓸쓸한 계절은 그리 길지 않다. 곧 빈 가지의 계절이 될 것이며 우리는 얼어붙은 몸을 녹이는 일에 정신이 팔릴 것이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고 걸으며, 그것이 새순이었다가 생생한 잎이었던 지난 시간의 우리를 추억하는 것도 지금에나 가능할 일. 그러니 일평생 맞이할 수 있는 몇 번 되지 않는 가을을 아껴보라는 충고일까.

그러자니 나는 어쩌지 못하는 낙엽이 아깝긴 하구나, 여기게 되는 것이었다. 가치로 따지자면 저것이 돈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 어쩌면 돈보다 나은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내가 왜 부자가 되지 못하는지 알겠다 싶어져서 웃음도 나는 거였다. 그사이 창밖에는 언제 쓸었냐는 듯 낙엽이 도로 수북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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