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단가에 담은 한국인 정서… “詩碑, 평화 상징되길”

  • 문화일보
  • 입력 2023-11-08 11:42
  • 업데이트 2023-11-08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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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치마저고리가 상징하는 한국인 정서를 일본 단가에 담았던 손호연 시인.


■ 손호연 시인 20주기 시비 건립
딸 이승신 기념사업회 이사장

1400년전 백제인, 日에 전해줘
손,우리 전통 계승…화해 노래
“한·일·영어로 새긴 시비 뜻깊어
훌륭한 시인 알리고 싶을 뿐”


글·사진=장재선 전임기자 jeijei@munhwa.com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7일 제막한 손호연 시비 앞에서 딸 이승신(사진 왼쪽) 시인과 손호연평화문학상 첫 수상자인 나카니시 스스무가 함께 포즈를 취했다.



“1997년 일본 아오모리(靑森) 현에 어머니의 시비(詩碑)가 세워졌습니다. 일본 게이단렌(經團連·경제단체연합회) 임원이 주도한 일입니다. 오늘 한국에 설립하는 시비는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의 류진 회장께서 후원했으니 참 귀한 인연이지 않습니까.”

손호연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이승신 시인은 7일 이렇게 말했다. 그의 표정엔 만감이 서려 있었다. 어머니인 손호연(1923∼2003) 시인의 시비를 서울 필운동 자택(‘모녀 시인의 집’) 앞에 세우기까지의 시간들이 떠오르는 듯했다. 이날 시비 제막식엔 이근배 시인(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과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 유성호 한양대 인문대 학장 등 한국 문화계 인사들과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이 참석했다. 일본에서 나카니시 스스무(中西進·94) 전 오사카(大阪)여대 학장을 비롯해 유명 단가(短歌) 시인들이 방한해 함께 자리했다.

손 시인은 일본의 전통 단시인 와카(和歌)의 명인이었다. 와카는 5·7·5·7·7음절씩 모두 31자로 이뤄진 시이며 17자로 구성하는 하이쿠(俳句)와 함께 일본 시문학의 핵심이다.

“일제가 우리말을 못 쓰게 하는 폭압을 한 탓에 어머니는 일어로 시를 썼습니다. 그래서 한국 유일의 일본 단가 시인이 탄생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인 셈이지요.”

손 시인은 평생 3000여 수의 단가를 지으며 일본 시인 흉내를 내지 않고 우리 역사의 아픔과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무엇보다도 이웃 나라인 한국과 일본이 다툼 없이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최재형 의원이 이날 “손 시인이 1400년 전 백제가 일본에 시를 전해 준 역사의 전통을 잇는 정신으로 시를 썼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 까닭이다.

이번에 세운 시비에 평화에의 소망이 깃든 시 2편을 우리말과 일본어, 영어로 새겼다. ‘동아시아 끝자락에 살아 온 나//오로지 평화만을 기원했네.’ ‘국경과 언어의 벽을 뛰어넘어//나는 피우려네 무궁화 꽃을.’

손 시인의 시는 일본에서 크게 인정을 받아왔다. 지난 2005년 한·일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일 총리가 그의 단가를 읊을 정도였다. 이 시인은 어머니가 생전 한국에서 시인으로 크게 빛을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만큼 영어에 능통한 그가 일어를 새삼스럽게 배워서 어머니 시를 우리말로 옮긴 까닭이다.

그는 올해가 손 시인 탄생 100주년이자 20주기가 되는 것을 기념해서 ‘손호연 평화문학상’을 제정해 시상했다. 첫 번째 수상자는 나카니시 스스무. 시비 제막식에 온 그는 일본 ‘만엽집’ 연구의 대가이다. 현재 일본 연호인 ‘레이와(令和)’를 제안한 인물이다. 나카니시는 손 시인이 생전 한국인으로서 일어로 시 쓰는 것을 고민할 때, “일본에 건너온 백제인들이 탄생시킨 장르가 단가”라며 격려했다고 한다.

이 시인은 이날 어머니의 시집 2권을 새로 만들어 펴냈다. 또한 ‘손호연 시인의 평화와 화해’를 주제로 한 국제문학포럼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었다. 제막식에 참석한 인사들 이외에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브러더 앤서니 서강대 명예교수 등이 포럼에 참여했다.

“어머니의 시를 알리기 위해 오랫동안 돈과 시간을 들이는 저더러 주변에서 효녀라고 하지만, 훌륭한 시인에 대한 존경으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입니다(웃음). 살아 계실 때 너무 겸손하셔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어머니께서 저 세상에서 과연 뭐라고 하실지….”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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