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비참한 환경서 자라 주변 사람들과 공감하기 어려워요[마음상담소]

  • 문화일보
  • 입력 2023-11-29 09:05
  • 업데이트 2023-11-2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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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상담소

▶▶ 독자 고민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어머니를 때리기 일쑤였고, 분노한 어머니가 저와 아버지 보는 앞에서 자살했습니다. 학교에서도 엄마가 자살한 애라는 소문에 괴로웠습니다. 그 후로는 자주 이사 다니면서 그 소식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친구도 없습니다. 아버지는 그 이후 여러 사람과 동거했고, 그중에는 잘 해주는 새엄마가 있었지만 1년 만에 떠났습니다. 저에게 나가 죽으라는 폭언을 하는 사람부터 고등학생인 저를 유혹하는 사람까지 너무 다양했습니다.

지금은 과외와 근로장학생으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하는데, 과외를 할 수 있는 처지임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또래들은 엄마하고 싸웠다고 불평하고, 새 스마트폰을 못 산다는 푸념을 들으면 벽이 느껴집니다. 특히 여자들이 조금만 하소연해도 뭐 저런 것을 갖고 힘들어 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최근에는 제 사정을 다 모르는 상태에서 “그래도 어떻게 아버지와 연락을 끊니”라고 말한 여자친구와 헤어졌습니다. 어린 시절이 비참하면 평범한 삶을 살기가 어려운 것일까요?

A : 트라우마 만성화된 증상… 타인과 마음 여는 과정 통해 치유

▶▶ 솔루션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를 잃는 트라우마를 넘어서 열심히 해서 대학생까지 되었다는 것이 대단합니다. 정신적인 충격을 모두 트라우마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릴 적 심각한 죽음의 위협을 느꼈을 테니까요. 트라우마를 겪은 후 급성기 증상, 즉 곧바로 힘든 점은 그런 일이 반복될까 봐 불안하거나, 또 별것 아닌 일에 놀라고 예민해지는 증상입니다. 그런 증상의 터널은 이미 다 지나왔을 것입니다.

트라우마를 안고 오랜 세월이 흐르면, 만성기 증상을 겪는데 그중 가장 심한 것은 결국 고립감입니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았고,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굉장한 외로움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나는 분리되어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공포와 우울, 분노를 극복하고 평범한 삶을 살려면 스스로가 잘 해왔다는 것을 충분히 납득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모두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나 심리학책 말고 진정 나를 이해받는 경험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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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을 먼저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좋습니다. 나의 힘든 과거사를 시도 때도 없이 이야기한다거나, SNS에 게시하면서 여러 사람의 관심을 받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수에게 공개한다면 오히려 내가 더 힘들어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단 한 명의 사람이라도 소통을 시도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도대체 누구에게 털어놓아야 할지 모른다면 대학교에서 제공하는 심리상담이나 주변의 정신보건센터를 이용해도 좋습니다. 매우 친한 친구이거나 연인이어도 좋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이해받지 못해서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한 번의 시도가 아니라 여러 번의 시도를 하더라도 실제로 내 경험을 자세히 이해하고 제대로 받는 것이 치유의 길이 아닐까 합니다.

하주원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홍보이사·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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