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전의 시간… 사사분기의 가계 지출이 직감적 터치에 달려 있었다[소설, 한국을 말하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12-04 09:30
  • 업데이트 2023-12-0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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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 = 의자 작가



AI(인공지능)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까. 가속하는 저출산과 고령화, 사교육 광풍, SNS가 발신하는 끝 모를 욕망 속에서 한국인은, 또 한국 사회는 어디를 향해 가는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이 질문에 답한다. 9월 4일부터 연재에 들어간 문화일보의 ‘소설, 한국을 말하다’는 문단에서 가장 첨예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소설가 15명이 들여다 본 ‘지금, 한국’을 짧은 소설에 담았다. 매주 월요일 한 편 씩 공개되며, 12월까지 계속될 예정.

(13) 김멜라
고물가 - 마감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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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의 날 선 울음이 들려오는 깊은 새벽, 침대에 누운 세오는 A 마트의 앱을 열었다. 방 안에는 까마득한 탄광 속을 비추는 광부의 헤드라이트처럼 세오의 휴대전화에서 새어 나오는 조명만이 작은 빛 둘레를 만들었다. 옆에서는 이영이 고개를 젖힌 채 렘수면에 빠져 있었다. 환절기에 접어들며 날씨가 변덕을 부리자 이영은 부쩍 잠꼬대와 하지불안증이 심해졌다. 지금도 꿈에서 뭔가에 쫓기고 있는 듯 다리를 파르르 떨다가 흐엉 흐엉 기이한 신음을 냈다.

장어, 장어를 사야 해.

세오는 현란한 엄지와 검지의 연속 동작으로 A 마트의 앱을 내리고, B 사이트에 들어갔다. 자정이나 새벽에 마감 세일 품목이 올라오는 B 사이트에서 장어를 사야 했다. A 마트에서는 기다리던 주꾸미가 세일했다. 이런 생물은 인기 상품이라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신들린 듯 결제 버튼을 눌러야만 겨우 행운의 문이 열렸다. 그야말로 우연과 무작위가 뒤섞인 통신망의 홍수 속에서 황금손의 강림이 필요했다.

양배추, 양배추도 사고.

결연하게 다문 입술, 과하게 집중해 약간 풀린 듯한 눈의 초점, 금방이라도 솔솔 잠에 빠질 법한 자세로 누워 세오는 지역 상품권 앱을 열었다. 주꾸미볶음에 들어갈 양배추와 장어에 올려 먹을 생강도 사야 했다. 이미 마트들의 가격 비교를 마친 세오는 양배추의 단위가격은 ‘럭키 싱싱 마트’가 제일 싸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프라인에서 물건을 살 땐 결제액의 7퍼센트를 할인해 주는 지역 상품권이 제격이었다. 그러나 명절을 빼고 일 년에 두어 번만 발행하는 모바일 상품권이야말로 빛보다 빠른 터치와 대기 시간을 참고 버티는 끈질김이 요구됐다. 어림잡아 수만 명이 동시 접속하는 상품권 발행일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것조차 버거웠다. 세오는 내일 상품권 발행 시간에 맞춰 알람을 맞춰놓았다. 넋 놓고 있다간 골든 타임을 놓칠지도 몰랐다. 세오는 꼭 이영이 좋아하는 해산물로 몸보신을 해 주고 싶었다.

한때는 세오도 찌개를 끓이다 다진 마늘이 똑 떨어지면, 가까운 마트로 달려가 별 고민 없이 다진 마늘이 담긴 통을 집어 들었다. 퇴근길에 과일이 먹고 싶어질 때면 주인이 청록색 먼지떨이 채로 가판대를 정리하는 ‘딸 부자 청과’에 들러 딸기나 복숭아를 정가 그대로 사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세오가 다니던 상점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양파 한 망을 사더라도 온라인 마트 세 군데와 오프라인 가게의 가격을 비교하기 시작한 때가. 그즈음 세오는 코앞에 땅만 보며 길을 걸었다. 판매직으로 일하던 직장에서 나온 뒤 실업급여를 받으며 일자리를 찾던 시기였다. 옷은 입어보지 않고 살 수 있어도 신발은 꼭 신어보고, 걸어보고, 손으로 운동화 앞코도 눌러본 다음 사는 거라며, 사장은 자기네 지점이 망할 걱정은 없다고 했다. 사장의 말은 세오가 입사하고 딱 두 번의 분기까지만 옳았다. 사람들은 운동화를 직접 신어보고 샀다. 다만 공짜로 신어보는 곳과 돈 주고 사는 곳을 분리했을 뿐. 세상에 ‘비대면’이란 낯선 말이 휘몰아치자 그런 뜨내기조차 줄어들어 가게는 건물 임대료를 낼 수 없을 정도로 매출이 쪼그라들었다. 세오를 포함해 직원 셋을 내보낸 사장은 그 뒤로 한 번의 분기를 더 버티다 결국 폐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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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아, 이 터무니없는 인간아.

하지만 그때 세오가 보도블록에 드러누운 자신의 그림자를 밟으며 걸었던 건 고용 불안 때문이 아니었다. 일자리야 어떻게든 다시 구하겠지만, 수년간 월급을 쪼개 긁어모은 적금과는 영영 작별이었다. S 전자 9층이라니, 거긴 세오가 할머니가 되어 초경량 효도화를 신기 전까지 오를 수 없는 높이 같았다.

“그래서, 몇 주 샀는데.”

세오는 갈라지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으며 물었다.

“좀 올랐어. 최악은 아냐.”

이영은 눈을 내리깔며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듯 어깨를 움츠렸다. 그 와중에도 입은 살아서 S 전자가 망할 일은 없다고, 그게 망하면 우리나라도 간판 내리는 거라고, 반도체는 미래의 핵심 기술이고, 얼마 안 가 우리 머릿속에도 칩 하나씩 넣을 날이 올 거라고 말했다.

“달러는 뭐야, 그래서 아침마다 환율 본 거야?”

세오는 이영이 무슨 생각으로 ‘알부자 씨드’ 적금을 깨서 달러 통장을 만든 건지, 대체 무슨 약을 처먹었기에 손해만 뭉텅이로 보는 환치기를 시도한 건지, 자신은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할인 쿠폰을 받느라 밤잠을 설치는데, 너는 어떤 귀신에 씌었기에 이렇게 내 뒤통수를 친 건지, 조목조목, 멱살을 잡고, 따져 묻고 싶었다.

“우리나라는… 휴전국이잖아…. 미사일 쏘고 그러면 안전자산이 오르지.”

이영이 손톱의 거스러미를 뜯으며 말했다. 그 순간 세오는 차라리 정말 나라에 비상사태가 일어나 금융기관의 모든 시스템이 초기화되면 좋겠다는 불순한 생각을 품었다. 어째서 너란 인간은 당장 눈앞에 놓인 달걀값에는 무심하면서 70년간 일어나지도 않은 전쟁을 가정하며 내 가슴에 박격포를 쏘는 걸까. 어째서 나란 인간은 이런 덜떨어진 인간이 아직도 밉지만은 않은 걸까.

세오는 알았다. 이제껏 복권 한 장도 돈 낭비라며 안 사던 이영이 기질에도 안 맞는 주식과 외환 거래로 헛꿈을 꾼 건 다름 아닌 자신 때문이었단 걸. 구직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날마다 조금이라도 생필품을 더 싸게 사려고 조바심을 내는 세오를 위해 이영이 생각해낸 야망이고 욕심이었단 걸. 전쟁이나 파산 같은 극단적 불행을 떠올릴 만큼 이영도 삶이 불안했고, 그들의 처지는 갈수록 추락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의 가훈은 ‘현상 유지’가 되었다. 그들이 믿을 건 반도체 기술도, 기축통화도 아닌, 나가서 일할 수 있는 튼튼한 몸이었다. 자정마다 B 사이트에 업데이트되는 할인 제품을 샅샅이 뜯어보며, 세오는 어쩌면 자신이 이 기업의 소비자가 아닌 계약직 근로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초주검이 될 정도로 힘들지만, 돈은 된다는 근무 후기를 읽으며 세오는 아랫입술을 잘근거렸다. 섣부른 투자 실패 후 이영이 벌어오는 급여는 죄다 세오의 통장으로 직행했다. 다행히 S 전자의 시세도 삼보일배하듯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이영도 국내외 경제 뉴스를 두루 챙기며 ‘떡상’과 ‘떡락’의 파고에 떠밀려 가지 않을 수 있는 투자의 기초 체력을 길러갔다. 그런데도 세오는 별안간 밀려드는 초조함에 가슴이 벌떡거렸고, 손에 틀어쥐고 한 알씩 밀어 올리는 묵주 알처럼 많이 살수록 싸지는 상품의 단위가격과 마감 세일에 매달렸다. 그들의 집은 시장이나 역세권과 멀리 떨어진 곳이었고, 가까운 마트들도 문을 닫았기에 온라인에서 승부를 볼 수밖에 없었다. 세오는 커피와 에너지 음료를 들이부어 가며 웹디자이너로 밤샘 작업하는 이영을 위해 영양식 만들기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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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제 어딨지?”

그러나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생리 주기엔 세오의 전투력도 휘청거렸다. 살 때도, 버릴 때도 한없이 마음이 무거워지는 식재료는 세오의 배란통을 기다려 주지 않고 시시각각 시들거나 짓물러 갔다.

“어제 내가 회사 가져가서 먹었어.”

이영이 가방을 뒤적거리며 말했다.

“어제? 어제 시작했어?”

세오가 물었다. 이영의 배란 주기는 세오와 일주일 정도 차이가 났다. 두 사람은 그 일주일의 거리가 다행이라고 여겼는데. 그날은 둘 다 허리에 타이어라도 묶은 듯 하반신이 무거웠다. 그 주 내내 이영은 중고차 판매 사이트를 만드느라 잔업을 거듭했다. 작업을 의뢰한 곳은 ‘카프카에서 내 차 팔기’라는 다소 희한한 이름의 업체였는데, 이영은 집에 돌아와 진짜 카프카가 썼다는 글을 세오에게 말해주곤 했다. 폰트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인터넷에 ‘카프카’를 검색하면 그 사람의 글이 나온다고.

“솟구쳐 오르는 새를 보고 있으면 내 몸이 추락하는 기분이 든다. 이거 우리 같지 않아?”

침대에 누운 이영이 세오의 허리를 안으며 말했다.

“물가가 오를수록 우린 떨어지잖아.”

“어, 그러게.”

옆으로 돌아누운 세오가 대강 답했다. 마침내 결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양배추와 햇생강, 오프라인 상점에서만 살 수 있는 종량제봉투 그리고 진통제. 앞으로 남은 사사분기의 가계 지출이 세오의 직감적인 스크롤과 터치에 달려 있었다. 세오는 또 심장이 발딱거리며 손금에 땀이 맺혔다. 약을 먹어서인지 속에서 역한 맛이 올라왔다.

“내일 장어 구워줄게. 모레는 주꾸미, 진짜 싸게 샀어.”

비어져 나오는 하품을 참으며 세오가 말했다.

“아무리 올라 봐라, 우리 사이가 멀어지나.”

이영이 세오의 등에 달라붙으며 말했다. 그러자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세오가 몸을 돌려 이영을 끌어안았다. 여전히 휴대전화는 손에 꼭 쥐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세오는 지역 상품권을 살 수 없었다. 알람이 울렸지만, 세오는 잠에 빠져 듣지 못했다. 이영은 살그머니 세오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빼내 알람을 껐다. 그러고는 세오의 입가에 묻은 침을 닦아주고서 다시 연인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날 상품권은 발행 개시 후 최단 시간 만에 매진되었고, 세오가 기다리던 주꾸미는 수량 부족으로 주문이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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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 행위로는 얻지 못하는 가치 생각해보고 싶었다”

■ 작가의 말

‘마감 사냥꾼’은 ‘물가’라는 공동의 허들이 턱없이 높아진 지금 치열한 생존 경쟁에 내몰린 한 연인의 장보기 일상을 그린다. 김멜라 작가는 “끊임없이 계산하고 판단해야 하는 교환 행위와 그 속에서도 결코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가치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솟구쳐 오르는 새를 보며 우리의 몸은 추락하는 기분을 느끼듯, 물가가 오를수록 우린 떨어진다. ‘우리의 처지’ ‘우리의 희망’ ‘우리가 계속 버텨나가는 힘’ 같은 것들이.

그래도 이영과 세오는 서로를 힘껏 끌어안으며 위로한다. “먹고사는 일의 고단함은 생명과 몸을 지닌 존재라면 여지없이 다 짊어져야 하는 하나의 짐이지요. 이를 조금이나마 덜 고통스럽게 해나가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생각했습니다. 사냥에 성공했을 때의 기쁨도, 실패한 뒤에 찾아오는 좌절도, 그것을 함께 나눌 관계가 있다면 우리는 그 삶의 조건을 좀 더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 김 작가는…

1983년생. 소설집 ‘적어도 두 번’과 장편소설 ‘없는 층의 하이쎈스’ 등을 썼다.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박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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