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퍼·구명조끼 ‘가짜근거’로… 국가권력이 ‘진실’ 조작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12-0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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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공무원 탔던 무궁화 10호  7일 감사원의 서해공무원 피살사건 감사결과 발표로 문재인 정부의 사실 은폐·왜곡이 드러나면서 국가권력의 부당한 집행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사진은 사건 발생 닷새째인 지난 2020년 9월 27일 무궁화 10호가 전남 목포시 전용부두로 입항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 감사원 ‘서해 공무원 피살 왜곡’ 결론

구명조끼 착용·남겨진 슬리퍼
軍첩보에 없고 사실확인 안돼
감사 1년5개월만에 전모 밝혀

안보실·국방부·통일부 등
기관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여
한 개인에게 월북 책임 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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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감사해온 감사원이 7일 내놓은 최종 감사 결과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가안보실 지침에 따라 관계부서가 기민하게 움직여 사실을 은폐·왜곡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자진 월북’ 근거로 제시된 고 이대준 씨의 슬리퍼와 구명조끼 등도 군 첩보에 없거나 월북 근거로 보기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 2020년 9월 22일 사건이 벌어진 지 약 3년 3개월만, 그리고 지난해 7월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한 지 약 1년 5개월 만에 문 정부의 월북 몰이 전모가 밝혀진 셈이다. 국가가 부당한 권력 집행을 통해 진실을 조작하고 개인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워 논란이 다시 커지고 있다.

이날 감사원에 따르면 청와대 국가안보실, 해양경찰청, 통일부, 국방부 등 관계기관은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 씨의 사망 전까지 제대로 대처하지 않고, 막상 피살이 벌어진 뒤엔 사실을 덮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사건 당일 안보실은 오후 5시 18분쯤 합동참모본부로부터 북한 해역에서 실종된 공무원이 발견된 사실을 보고받았지만, 통일부 등에 위기상황을 전파하지 않고 최초 상황평가회의도 실시하지 않았다. 국가위기관리센터장은 상황이 종료되지도 않았는데 퇴근했고, 해경은 안보실로부터 발견 정황을 전달받고도 추가 정보를 파악하거나 수색 협조요청을 하지 않았다.

이 씨가 피살되기까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던 관계 당국은 정작 피살 이후엔 사실 은폐와 책임 회피에 나섰다. 국방부는 다음날인 23일 안보실로부터 지침을 받고 합참에 관련 비밀자료를 삭제하도록 지시했고, 합참은 오전 3시 30분쯤 실무자를 불러 밈스(군사정보체계)에 탑재된 첩보 보고서 60건을 삭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방부는 같은 날 오후 4시 35분엔 이 씨 생존 시엔 보내지도 않던 대북전통문을 ‘뒷북’ 발송했다.

당시 국방부 등은 ‘다른 승선원과 달리 혼자 구명조끼를 착용했다’ ‘이 씨의 슬리퍼가 발견됐다’ 등의 이유를 내세우며 자진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분석보고서를 만들어 언론에 발표했지만, 수사결과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한 결과 이들 근거는 군 첩보에도 없고 사실과 다른데도 안보실·국방부의 지시로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정보원은 합참이 제시한 4개의 월북 근거를 분석한 결과 ‘자진 월북 여부 불명확’으로 결론 내렸지만, 관계장관회의에 보고하지 않은 채 입을 다물었다. 해경 역시 무궁화 10호에 비치된 B형 구명조끼 수량에 이상이 없고, 이 씨가 착용한 구명조끼에 한자가 기재되어 있었음을 파악하고도 ‘월북으로 판단한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해경은 이 씨의 도박 사실이나 도박 채무 금액 등 사생활을 부당하게 공개하기까지 했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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