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렸다 녹였다 말렸다… 쫀득·꼬들한 ‘겨울맛’ [이우석의 푸드로지]

  • 문화일보
  • 입력 2024-01-04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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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며 말린 꽁치로 만든 과메기. 서울 을지로 ‘영덕막회’의 차림이다.



■ 이우석의 푸드로지 - 겨울의 식도락

완연한 봄에 출하하는 황태
차가운 눈·바람이 필수 조건

해풍에 며칠씩 말리는 과메기
전국 대표 겨울별미 자리매김

중국 북방서 유래한 凍두부
국물 요리 훠궈와 찰떡궁합

대패 삼겹살·샤브샤브 고기
살짝 얼어야 얇게 썰 수 있어


겨울의 한복판. 한반도는 겨울왕국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과 진록의 여름, 오곡백과가 천지에 결실을 거두는 가을에 비해 겨울은 뭔가 삭막한 느낌이다. 뭔가 ‘나는’ 것보다 시들고 사라지는 것이 많다. 실제로 뭔가 없기 때문에 인류는 겨울을 대비해 많은 음식을 저장했다. 곡물이며 푸성귀, 고기 등을 저장하는 방법을 강구했다. 하지만 요즘 겨울의 밥상은 다르다. 오히려 겨울이라 맛이 단단히 드는 것도 많다. 특히 낮은 기온에 얼어붙는 현상을 활용해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도 했다. 겨울왕국에 더욱 맛이 나는 음식 몇 가지를 소개하기로 한다. 지금부터 “렛츠고(Let’s go), 렛잇고(Let eat go)”.

바다에서 나는 먹거리는 겨울에 꽝꽝 얼어서 더욱 좋은 것이 많다. 우선 황태와 동태, 양미리, 과메기가 있다. 만약 겨울이 없었다면 그럭저럭 예사로운 음식이 차가운 눈바람과 만나 유달리 맛난 것으로 변신했다. 이름에 얼 동(凍)이 들어가는 동태(凍太)가 있다. ‘겨울 동(冬)’ 자가 아니다. 동태는 겨울에 잡아 꽁꽁 언 상태로 유통했다. 냉동기술이 발달한 요즘 얘기가 아니다. 예전부터 그랬다. 겨울이니 언 상태로 오래 보관하고 멀리 유통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민초들은 겨울에도 단백질을 쉽사리 보충할 수 있었다. 꽝꽝 언 동태로 국을 끓이고 찌개나 조림을 해서 든든한 한 끼를 맛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생태보다는 선도가 떨어지고 살짝 마른 상태가 된다. (그래서 ‘썩은 동태 눈깔’이란 표현도 있다.) 하지만 미묘하게 변화한 특유의 맛이 겨울 입맛을 사로잡을 만하다. 얼면 식감도 변화하게 마련이다. 살짝 꼬들꼬들해진다. 그래서 설날엔 전을 부쳤다. 부들부들하니 씹히는 식감 좋은 동태전은 한겨울인 설날 생선전의 대표 재료로 쓰였다.

생태로는 주로 맑은국을 끓이지만 언 상태로 유통되는 동태는 대부분 칼칼한 양념을 한다. 동해 쪽에서 주로 잡히는 까닭에 함경도와 경상도를 잇는 한반도 동부 라인의 매운 고추 맛과도 조화를 이뤘다. 같은 겨울에 만들지만 황태는 동태와는 제조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동태야 그냥 잡아서 놔두면 얼어서 되는 것이지만 황태는 다소 복잡하다. 덕장을 만들고 거기다 명태 입이 하늘을 보도록 넌다. 차가운 겨울바람과 눈을 맞히며 삼한사온의 기후적 특성을 활용해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도록 해 만드는 꽤 고급 기술이다.

다들 잘못 알고 있지만 사실 황태는 완연한 봄에 출하한다. 그래서 눈과 바람이 많은 곳에서만 황태를 출시할 수 있다. 국내에선 내설악 인제군 용대리와 대관령 평창군 용평리 쪽에서 황태를 만든다. ‘명태의 고향’인 강원 원산땅에서 갖고 내려온 기술이다. 원산에는 대관령보다 눈과 바람이 많은 마식령이 있다.

황금색으로 변한 황태는 가열하지 않고 그대로 찢어 먹어도 된다. 살짝 구운 후 양념을 더해 무쳐도 되고 찢어서 국을 끓여도 된다. 진한 감칠맛의 국물이 우러난다. 콩나물을 넣고 물에 불려 찜을 해먹어도 좋다. 코다리찜보다 훨씬 고급스럽다. 강원 특산 향토음식으로 소문났다. 황태포구이는 뜻밖에도 전북 전주시가 유명하다. 가게 맥주에서 유래한 전주 가맥집들이 저마다 맛있는 소스와 함께 포슬포슬한 황태포를 구워서 내는데 이게 명물이 됐다. 눈도, 바람도 덜한 서부 내륙인데 황태가 유명한 것은 오로지 사람의 기술 덕이다.

동태나 황태나 고단백 저지방 식품이다. 특히 황태는 수분율이 거의 없는지라 중량 당단백질 함유율은 식품 중 최고 수준이다. 100g당 단백질 함량이 무려 80g에 이른다. 우유나 치즈, 육포, 달걀, 닭가슴살의 2배 이상 많다. 그냥 생선 모양의 단백질 덩어리, 단백질 환이라 생각하면 쉽다.

겨울이 오기만 기다렸다 요즘에 ‘내가 왕이 될 상이요?’ 하는 음식이 있다. 청어나 꽁치로 만드는 과메기가 바로 겨울왕국의 주인공이다. 차가운 바닷바람에 며칠씩 얼려서 말리는 등 황태와 유사한 원리로 제조하지만, 원료부터 기름진 ‘등 푸른 생선’으로 만드는 까닭에 맛과 식감에서 확연히 다른 식품이 나온다. 수분율은 떨어져도 지방은 그대로 남아, 만지면 손이 번들번들해질 정도로 기름지다. 식감 또한 포슬포슬한 황태와는 달리 젤리처럼 존득하다.

예전에 끈으로 눈을 꿰어 줄줄이 말렸대서 ‘관목(貫目)’이라 불렀던 것이 과메기가 됐다는 말이 있다. 말린 청어를 관목이라고 불렀다. 요즘은 주로 꽁치로 만든다. 경북 포항이 내세우는 대표 먹거리다. 예전엔 비린내에 대한 우려 탓에 타 지역에서 먹는 이가 드물었지만 생각보다 냄새가 적고 맛있는 데다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퍼져 저변이 확대되며 전국적으로 인기몰이하는 겨울철 대표 음식이 됐다. 포항 지역에서만 한 해 과메기를 700억 원 이상 팔아치운 적도 있다.

옛날 과메기는 통으로 해풍에 말려서 만들었지만, 요즘은 배를 따고 반으로 갈라 자체 덕장에서 송풍기로 말리기도 한다. 산패하기 쉬운 재료라 날이 추워야 만들 수 있으니 최소한 11월은 되어야 시작할 수 있다. 배를 따서 만든 편과메기보다 내장이 남아있는 통과메기는 좀 더 추울 때부터 시작하고 훨씬 오래 말려야 한다. 대신 동결건조 과정에서 내장 지방이 살점에 녹아들어 식감이 더 부드럽고 풍미가 진하다. 다만 등 푸른 생선 특유의 냄새에 민감한 체질이라면 통과메기에 도전해보기란 녹록잖은 일이다.

고효율의 단백질과 지방의 집합체인 과메기는 생미역과 다시마, 김 등 해조류와 쪽파, 마늘, 고추 등 향신채 등에 곁들여 먹으니 영양 균형도 맛도 좋다. 특히 불포화 지방산 DHA와 EPA가 유난히 많다. 문헌 기록에는 그나마 근대에 들어 등장한다. 규합총서(빙허각 이씨)에 청어를 일러 관목(貫目)이란 말이 등장하는데 이를 부엌에 매달아 놓고 먹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이규경)에는 청어를 훈연해 보관하는 연관목(燃貫目)이라는 대목에 과메기가 나온다. 모두 청어 이야기다. 간혹 과메기를 굽거나 익혀 먹는 경우도 있는데, 이땐 냄새가 활성화되는 까닭에 양념을 듬뿍 쳐서 조리한다. 향취가 강한 김치와 함께 조리하기도 한다.

차가운 해풍에 등 푸른 생선을 말리는 것은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 네덜란드에도 있다. 네덜란드 전통 요리인 하링(haring)은 겨울철 청어를 널었다 말린 후 기름에 재운 것이다. 극동 포항과 수천㎞ 떨어진 곳에 비슷한 식문화가 각기 발달한 것은 참으로 공교롭고 묘한 일이다. 북극 노르웨이 북쪽 로포텐에도 추운 날씨(여긴 거의 연중 추운 날씨다)에 대구를 황태처럼 말린 식재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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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 위부터 서울 무교동의 ‘짱이네’의 동태탕. 서울 노량진 ‘명인설렁탕’의 남도식 한우물회. 경남 창원 도계동의 ‘도계생선’의 동태전. 전남 장흥 ‘불금탕’의 차돌박이 키조개삼합.



꽝꽝 얼어붙은 겨울이라 좋은 것이 어찌 수산물만 있을까. 겨울이 길고 추운 중국 북방에서 유래한 동두부(凍豆腐)가 있다. 두부를 얼려서 만든다. 황태나 과메기와 마찬가지로 겨울날 밖에서 두부를 얼려서 만들었다. (요즘은 당연히 냉동공장에서 만든다.) 일반 두부가 아닌 수분 함유량이 적은 두부를 단단히 얼리고 이를 서서히 해동하면 된다. 내부에 있던 콩 단백질은 조직층으로 남고 사이에 있던 수분이 빠지며 스펀지(해면체) 같은 형태가 되는데 그러면 동두부의 완성이다.

고소한 두부의 식감이 원래보다 졸깃해지고 해면체 특유의 형태상 국물을 잘 빨아들여 각종 요리에 유용하게 쓸 수 있다. 그 덕분에 쓰촨(四川)식 국물 요리인 훠궈 재료 중에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매콤한 국물을 빨아들이면 얼추 고기 맛이 난다. 그냥 먹어도 진한 맛이 좋고 튀겨도 바삭하니 일반 두부와는 다른 맛을 낸다. 멀쩡한 생두부를 일부러 얼려 먹는 이유다. 얼렸다 구워내 빵 반죽 속을 포슬포슬하게 만든다.

겨울에 저장하다가 얼어버려 더욱 맛이 좋아진 재료는 다른 나라에도 있다. 남미 안데스 케추아 족의 추뇨(Chuno)는 감자를 얼려서 동결건조시킨 식재료다. 무려 7000여 년 전부터 지금껏 먹고 있다. 가벼워지고 저장성이 좋은 데다 영양분도 많아지니 생감자보다 더욱 선호한다. 얼렸다 녹였다 해서 만드는 방식은 황태나 과메기와 다름없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등 육류는 형태를 가공하기 위해 일부러 얼리기도 한다. 물컹한 생고기를 얼린 다음 썰어내면 훨씬 얇게 나온다. 물성을 변화시키는 일종의 분자요리 기법이라 할 수 있다. 얇은 고기가 필요할 때 동결 기법을 이용한다. 우선 육회부터 대패 삼겹살, 냉동 삼겹살, 샤브샤브용 소고기, 냉동 등심 등이 이에 해당한다. 차돌박이 같은 경우엔 제아무리 당대 최강의 검객이라 해도 상온에선 그리 얇게 썰어낼 수 없다. 관우도, 여포도, 미야모토 무사시라도, 심지어 제다이 루크 스카이워크였대도 불가능한 일이다. 얼려야 한다. 워낙 육질이 부드러워 썰면 살점이 잘 부서지는 삼치 같은 생선도 살짝 언 상태에서 썰어 횟감으로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삼치회 제철도 겨울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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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었다면 반드시 녹는다. 왜 맛있다는 표현에 사르르 입안에서 녹는다고들 하잖나. 모든 것을 얼려서 멈춰버리는 겨울왕국이라고 함께 얼어붙지 말고, 추운 날 더욱 맛있어지는 음식을 찾아 ‘겨울의 식도락’을 즐긴다면 건강도 미각도 한결 포근한 계절을 보낼 수 있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과메기 = 영덕막회. 포항 과메기 원조 논쟁에는 영덕 사람들도 뛰어든다. 원래 울진, 영덕에서도 먹던 것이란 주장. 막회로 유명한 이 집은 튼실하고 존득한 과메기를 갖은 해조류와 푸성귀를 함께 차려 낸다. 신선한 것만 골라서 가져오고 곁들이는 장맛도 깔끔해 비린내 걱정 따윈 하지 않아도 좋다. 너무 냉하다면 꽃게 술국이나 가자미 순살로 부쳐낸 가자미전을 주문하면 과메기와 잘 어울린다. 서울 중구 을지로3길 33. 3만2000원.

◇동태탕 = 서울시청 인근 짱이네. 메뉴엔 없지만 높은 확률로 ‘오늘의 메뉴’ 동태탕을 낸다. 칼칼하니 고추 양념을 넣고 보글보글 끓여낸 동태탕 뚝배기에는 진한 풍미의 동태 도막이 많이도 들었다. 수저로 살을 살살 걷어내 국물과 함께 들이켜면 초겨울의 한기 따윈 스며들 틈이 없다. 서울 중구 무교로 6 금세기빌딩 지하 1층. 8000원.

◇육회 = 명인설렁탕. 고양시 일산에 본점을 둔 명인설렁탕이 서울 노량진에 진출했다. 일반과 얼큰 두 종류로 내는 설렁탕은 뜨끈한 식사 메뉴로 딱이고 한잔 곁들이려면 수육이나 육회를 주문하면 좋다. 과하지 않은 양념이 신선한 고기 본연의 맛을 거들뿐이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로8길 43 1층. 한우물회 1만4000원. 한우꾸리살 육회 1만7000원.

◇냉동 등심 = 오륙도. 도심 속 오랜 노포로 한우 등심구이를 파는 집이다. 생등심을 일부러 얼려서 동그랗게 썰어낸 옛날 ‘로스구이’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숯불에 석쇠를 올려 구워내는데 집어먹기 좋은 딱 한입 크기라 눈 깜짝할 새 접시가 바닥을 드러낸다. 고기 메뉴를 점심과 저녁으로 나눠 ‘정식’이란 이름으로 판다. 서울 중구 을지로3길 20. 4만 원.

◇황태포 구이 = 전일갑오. 황태가 나지 않는 내륙 동네인 전북 전주이지만 황태포 맛에서만큼은 아성을 쌓아올린 집이다. 살점을 솜사탕처럼 포슬포슬하게 만든 황태포를 연탄불에 구워낸다. 찍어 먹는 특제 소스도 외면할 수 없다. 간장과 마요네즈, 청양고추가 어우러진 소스 맛은 바삭한 황태포의 맛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현무2길 16. 1만2000원.

◇차돌박이 = 불금탕. 키조개해물삼합. 이름엔 해물만 들었지만, 삼합은 원래 다른 종류의 식재료를 모아놓은 것. 장흥삼합으로 유명한 전남 장흥 토요시장에 차돌박이와 함께 신선한 해물을 구워 먹는 집이 있다. 낙지며 주꾸미, 전복, 키조개 관자 등을 더욱 맛있게 거들어주는 것이 바로 기름진 차돌박이. 차돌박이가 해물에 아낌없이 자신의 기름을 제공하고 쫄깃한 식감으로 남아 삼합을 완성시킨다. 전남 장흥군 장흥읍 토요시장 육교 2층. 8만 원부터.

◇육회비빔밥 = 백수식당. 전주, 익산, 곡성, 진주 등 육회비빔밥으로 유명한 고장이 많다. 경북 예천도 빼놓을 수 없다. 숙주나물, 고사리와 함께 비벼 먹기 좋도록 길고 가늘게 썰어낸 육회를 얹은 비빔밥이다. 지역민들이 찾는 맛집이었는데 어느새 전국구 명성을 얻었다. 자극적이지 않게 양념을 한 육회가 밥알과 섞이고 나면 그 향기에 군침이 새 나온다. 경북 예천군 예천읍 충효로 284.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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