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대책과 포퓰리즘[뉴스와 시각]

  • 문화일보
  • 입력 2024-02-0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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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권 사회부 차장

인구학계에 따르면 수렵채집사회에 합계출산율은 4.8명대로 추산된다. 농경사회에는 12명까지 치솟았다. 현재 대한민국 합계출산율 0.7명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치이지만, 불과 50∼60년 전 한국에서도 합계출산율은 6∼7명이었다. 웃프게도, 대한민국 정부는 인구 정책에 매번 실패해 왔다. 1960∼1970년대 정부는 인구 증가를 우려해 산아제한정책을 펼쳤는데 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던 1980년대 고도산업사회 진입과 함께 급격하게 인구가 줄어들자 뒤늦게 산아제한정책을 폐지하고 2002년부터 저출산 대책을 펼쳤지만, 20년 이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와 정부가 저출산 대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최대 수십조 원의 예산을 투입해 자녀를 낳으면 각종 현금 및 수당을 지급하는 대책이 핵심이다. 지난 20년 이상 정부가 추진했지만 실패한 저출산 대책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간접지원에서 직접지원으로 바뀌고, 조금 늘어난 게 전부다.

현금 급여를 통한 출산 정책은 100년 전 20세기 초 유럽에서도 많이 시도했지만, 성과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통하지 않는다. 인구학자 전영수 한양대 교수는 그의 저서 ‘대한민국 인구 트렌드’를 통해 “똑똑한 한국 청년들은 효용을 최대화하기 위해 노동, 육아, 여가 시간을 배분할 때 출산을 후순위로 둘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고학력 청년들은 출산에 대한 기회비용과 매몰비용, 전환비용을 철저하게 계산하는데, 소소한 현금 이익 때문에 출산을 선택할 가능성은 낮다는 의미다.

저출산 대책은 복지 대책과도 구분해야 한다. 의료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병의원을 가겠다는 사람이 없고, 장애인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장애인이 되겠다는 사람이 없는 이유와 같다. 출산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출산하겠다는 청년은 없다. 출산 복지는 필요한 정책이지만, 그것만으론 출산을 늘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청년들이 자녀를 출산하기까지는 보통 네 가지 장벽을 넘어야 한다. 첫 번째 단계는 취업, 두 번째 단계는 주거다. 이 두 가지 단계를 넘어서야 그나마 세 번째 결혼이나 네 번째 출산을 검토해볼 여지가 생긴다. 현재 출산 복지 혜택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장벽을 극복하지 못한 청년들에겐 수혜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연간 출생아 수가 40만 명대로 떨어진 2002년은 IMF 구제금융(1997년)과 IT버블(2001년)의 여파로 청년취업자(15∼29세) 수가 400만 명대로 내려간 시기와 맞물려 있다. 혼인 건수가 처음 20만 건대로 떨어진 시기도 부동산 가격이 역대급으로 폭등한 2015년의 다음 해다. 그 이듬해엔 출생아 수가 처음 30만 명대로 내려갔다. 최근 한국은행이 집값을 2015년 수준으로 낮추면 출산율이 개선된다는 보고서를 낸 것도 이 때문이다.

저출산 해법은 복지보다는 고용과 주거의 문제, 이른바 경제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똑똑한 청년에게 현금으로 출산을 유도하기보단, 본인이 주체적으로 출산을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미래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저출산 대책은 가성비 떨어지는 총선용 포퓰리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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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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