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탐험 300년의 기록… 예술로 이어진 놀라운 발견들[북리뷰]

■ 자연을 찾아서
토니 라이스 지음│함현주 옮김│글항아리

자연은 무한의 세계를 잉태한 씨앗이다. 이 신비로운 씨앗은 인간의 탐험으로 발아해 자연사와 과학지식이란 줄기로 자란다. 그리고 어느새 예술로 꽃을 피운다. 영국 런던의 자연사박물관이 소장한 100만 권의 장서에 담긴 동식물 자료들과 50만 점의 미술 컬렉션은 자연을 마주한 인간이 가꿔낸 경이로운 화원이다. 이곳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는 저자가 희귀한 자료와 그림을 엄선해 소개하는 ‘자연을 찾아서’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치는 매혹적인 기록의 꽃다발이다.

책은 서양 자연사에서 가장 중요한 성취로 기록된 열 번의 탐험에서 얻은 발견과 여기서 탄생한 위대한 예술작품을 톺아보는 300년의 탐험기다. 한스 슬론의 자메이카 여행부터 진화론의 배경이 된 다윈의 비글호 탐사, 해양학을 발전시킨 과학 탐사 챌린저호 항해까지 자연과학의 분수령이 된 탐험들을 담았다. 과학자·탐험가와 동행해 ‘테라 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 라틴어로 ‘미지의 땅’을 개척하며 직접 관찰한 곤충과 식물을 그려낸 예술가들의 분투기가 흥미롭다.

여성 화가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 1699년 라틴아메리카의 수리남으로 떠난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메리안이 살던 당시 유럽은 이제 막 곤충이 흙이 아닌 알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이 입증된 세상이었다. 자연사 자료라면 기껏해야 훼손되거나 보존 상태가 엉망인 표본을 보거나 상상만으로 그린 게 전부던 때다. 이런 시대에 나이 쉰둘의 여성이 신세계로 떠나 직접 나비의 변태 과정과 유충, 성충의 식생 등을 그림으로 남기러 간 것이다. 이후 그가 펴낸 ‘수리남 곤충들의 변태’라는 책 속의 그림들은 예술적으로도 높은 완성도를 보이며 자연사 미술의 토대가 됐다. 이 작품들이 이후 현대 동식물학의 아버지 칼 폰 린네가 연구하고 참조했으니 과학적으로도 업적을 남긴 셈이다.

책엔 메리안이 남긴 수많은 곤충 그림뿐 아니라 포유류, 파충류, 어류, 양서류, 각종 식물, 그리고 당시 신세계 사회의 모습까지 갖가지 신기한 그림이 가득하다.

예술에 너무 취한 탓인지 지나치게 기교를 부려 어떤 식물인지 알아내지 못했던 그림, 과거 유럽인들이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던 오리너구리를 부리부터 물갈퀴까지 따로 떼어 상세하게 그려낸 표본까지 흥미로운 그림들로 가득하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덮을 때까지 심심할 틈 없는 ‘발견의 항해’가 가능한 이유다. 412쪽, 2만8000원.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