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 25% 해수면 이하… 생활화된 스케이트가 ‘빙속 대국’ 일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빙속 영웅 이보너 판 헤닙이 19일(한국시간) 캐나다 캘거리 올림픽오벌에서 문화일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네덜란드 세계선수권 우승…전설적 빙속영웅 판 헤닙 인터뷰

16개 종목중 11개 종목 메달
金 6개 銀 3개 銅 4개 압도적

“겨울엔 온나라가 스케이트장
프로팀 8개·실업팀은 700개
생계 걱정없이 운동 집중 가능
세계 최장신도 스피드 한 몫”

캘거리=글·사진 정세영 기자 niners@munhwa.com

2024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종목별 세계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시상대가 온통 오렌지색으로 뒤덮였다. 지난 19일(한국시간) 종목별 세계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가 막을 내린 가운데, 네덜란드가 종합우승(금메달 6개·은 3개·동 4개)을 차지했다. 네덜란드는 전체 16개 중 11개 종목에서 메달을 챙겼다. 특히 여자부 8개 종목에서 6개의 금메달을 휩쓸었다. 이번 세계선수권뿐 아니다. 네덜란드는 최근 10년간 3차례 열린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총 40개의 금메달 중 절반이 넘는 21개를 가져갔다.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빙속 영웅인 이보너 판 헤닙(60)을 19일 캐나다 캘거리 올림픽오벌에서 만나 세계 최강이 된 비결을 물었다. 판 헤닙은 1988 캘거리동계올림픽 3관왕(1500m·3000m·5000m) 출신. 그는 네덜란드 스포츠 사상 가장 성공한 여성으로 꼽힌다. 대표팀 관리자로 세계선수권에 동행한 그는 “구조적으로 모든 게 어우러진 결과”라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산이 거의 없고, 국토의 25%가 해면보다 낮아 운하와 수로가 발달했다. 겨울철이면 곳곳이 꽁꽁 얼어붙어 스케이트장으로 변한다. 스케이팅은 오래전부터 쉽게 접하는 놀이이자 효율적인 이동수단이었다. 판 헤닙은 “많은 아이가 스케이트를 자연스레 접한다. 400m 트랙을 갖춘 빙상장은 20개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면서 “이런 인프라를 바탕으로 정부와 협회가 유소년 시스템에 특히 신경을 썼다.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을 발굴해 ‘특별팀’에 배치하는데, 총 5개가 운영된다. 여기서 성장한 선수들은 단계를 밟아 프로선수까지 될 수 있다. 이런 선수층이 네덜란드 빙속의 큰 힘”이라고 설명했다.

네덜란드 인구 1767만 명 중 스피드스케이팅 등록 선수는 무려 15만 명에 달한다. 프로팀이 8개나 있고, 실업팀 수도 700개가 넘는다. 스피드스케이팅 스타의 인지도는 훨씬 규모가 큰 축구와 F1 선수들에 견줄 정도. 판 헤닙은 “선수들이 생계에 대한 걱정 없이 스케이트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도 크다. 운동선수에겐 기량도 중요하지만, 결국 금전적인 여유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프로 무대에선 치열하게 경쟁하나 올림픽 무대에서 메달을 따면 많은 부와 명예를 동시에 쥘 수 있다”고 귀띔했다.

타고난 신체 조건도 무시할 수 없다. 네덜란드는 세계 최장신 국가. 큰 키와 긴 다리는 스트로크(다른 발로 밀치면서 한쪽 스케이트로 미끄러지는 것)를 할 때 유리하다.

판 헤닙은 “우리 선수들은 남녀 모두 빼어난 신체 조건을 지녔다. 그래서 힘과 스피드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물론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코치들의 역량과 열정도 빼어나다. 판 헤닙은 “이번 대회엔 스무 명 이상의 코치가 왔다. 선수들 모두가 팀이나 클럽에 소속돼 있기 때문”이라면서 “선수를 가장 잘 아는 코치가 대회를 준비하는 게 맞다. 대회 참가 비용은 협회에서 전액 지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노르웨이, 일본, 캐나다 등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네덜란드 코치들이 늘어난 것은 그만큼 우리 코치들의 기술력을 믿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