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짐장사로 50억 기부… “나눔이 곧 삶, 하늘나라 가면 돌려받겠죠”[나눔 실천하는 초록빛 능력자들]

  • 문화일보
  • 입력 2024-02-28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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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대전지역 관공서 등에 생필품을 판매한 돈으로 매년 아동들을 위한 기부에 나서고 있는 신초지 후원자가 지난 21일 추운 날씨에도 물건을 팔기 위해 길을 나서고 있다. 초록우산 제공



■ 나눔 실천하는 초록빛 능력자들 - 60여년째 청소년 후원하는 신초지 할머니

여든넷 나이에도 매일 행상나가
식사는 무료급식소서 하루 한끼
나눔공로 인정받아 국민훈장도

“어릴때부터 홀로 악착같이 생활
부모 잃은 아이들 설움 잘 알아
내 도움받고 잘 큰 것 보면 뿌듯”


여든넷의 나이에도 매일 아침 7시, 양말과 치약을 끌차에 싣고 대전 지역 관공서와 학교로 향하는 신초지 후원자. 생필품을 한두 개라도 더 팔기 위해 “헬프 미(help me)”를 외치며 다니는 모습 때문에 동네에서는 ‘헬프미 할머니’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식사는 인근 무료급식소에서 해결하는 등 자신을 위해서는 단돈 천 원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는 신 후원자는 60여 년간 수십 억 원을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을 위해 기부해 왔다.올해 추운 겨울에도 “나 혼자 좋은 옷 입고 배불리 먹는 것보다 주변 이웃들과 나눌 때 더 기쁘다”는 마음으로 집 밖을 나섰다.

스무 살 때부터 행상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신 후원자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부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다. 독립운동을 하다 대구경찰서 간부까지 지낸 아버지, 경북대에서 한문을 가르친 어머니와 어릴 적 6·25전쟁 때 헤어지게 됐다는 신 후원자. “젊은 시절 부모님 없이 홀로 내 몸을 건사하기 위해 악착같이 버텼다”는 그는 25세 때 연탄가스를 마시고 닷새 만에 깨어나는 경험을 하게 됐다. 신 후원자는 “그때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삶에 대해 되돌아보게 됐다”며 “생전 남에게 베푼 일은 모두 하늘나라에서 나에게 돌아온다는 생각에 기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신 후원자는 어릴 적 자신과 처지가 비슷하다고 느낀 부모 잃은 아이나 소년 소녀 가장들을 대상으로 주로 기부를 해왔다. 그는 “보육원에서 크는 아이들을 보면 나의 어릴 때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고 내가 그 아이들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동복지 전문 기관인 초록우산과도 1981년 처음 인연을 맺은 후 꾸준히 후원하고 있으며, 매년 1월 성금을 보내고 있다. 그는 “당시 한국어린이재단(현재의 초록우산)이 대전시청 안에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재단을 통해 고아들을 도울 수 있다고 알려줬다. 내가 돕지 않으면 누가 돕겠나라고 생각해 기부를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신 후원자는 “내가 도와줬던 부모 잃은 아이가 커서 아이 다섯 명의 엄마가 됐고 그 아이들 이름도 내가 지어줬다. 나의 도움으로 잘 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뿌듯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신초지 후원자가 나눔의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에서 받은 국민포장. 초록우산 제공



60년 넘는 기간 신 후원자가 행상으로 벌어 기부한 것만 50억여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오랜 기간 이웃을 향한 나눔의 공로를 인정받아 1986년에 국민포장, 1996년에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그 외에도 대통령상, 장관상, 국회의장상, 교육감상, 시장상 등 정부와 지역사회로부터 무수히 많은 표창과 감사패를 받았다. 그렇지만 아직도 신 후원자의 삶은 소박하기만 하다. “나에게 쓰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신 후원자. 식사는 무료급식소에서 100원을 내고 하루 한 끼를 먹는 것이 전부고, 옷 역시 자신이 산 것은 거의 없고 주변에서 준 것뿐이라고 한다. 자궁암 판정을 받아 투병했던 경험이 있을 정도로 건강도 좋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원자가 매일 봇짐장사를 하면서까지 후원에 나서는 이유는 “나눔이 내 삶의 전부”라는 신념 때문이다. 그는 “남은 생도 지금처럼 남에게 다 나눌 것이다. 그게 아니면 살 이유가 없다”고도 말했다.

신 후원자는 다만 최근 사람들이 점점 기부와 나눔에 대해 인색해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내가 좋은 일을 하는 걸 주변에서 아니까 과거에는 관공서에 물건을 팔러 가면 물건을 사주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경우가 잘 없다”면서 “어떨 땐 잡상인 취급하면서 출입조차 못 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요즘엔 한 달에 30만~40만 원 벌기도 힘들어 기부를 이어가는 게 힘겹다고 한다. 그는 “요즘 같은 때 먹을 거 제대로 못 먹고 입을 거 제대로 못 입는 애들이 있어서야 되겠나. 잘 살고 여유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고아들을 위해 많이 기부하고 돌봐야 한다”고 주변에도 나눔에의 동참을 요청했다.

문화일보 -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공동기획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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