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벗겨진’ 당의 위태한 현실[오승훈의 시론]

  • 문화일보
  • 입력 2024-03-0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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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논설위원

공정성 잃은 ‘공천 숙청’ 단행
北노동당 거론될 만큼 常道 이탈
주류교체 완성해 1인1색 사당화

당 70년 유산 정체성 상실 위기
정당은 사익 추구의 도구 아냐
총선 앞 전통 지지층 심판대에


정당은 정치적 노선을 같이하며 정권을 획득하려는 결사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선 정치 주체로, 공직선거를 통해 그 목표를 실현한다. 후보자 추천과 선거운동이 반(反)헌법적, 반체제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정당 설립과 활동의 자유를 보장한 취지가 그러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4·10 총선의 공천권을 쥐고 있으면서, 지난해 11월 초 외부 수혈을 위한 인재위원회 위원장까지 맡아 셀프 임명했다. 당 시스템 공천을 강조했으나 비명(비이재명) 쳐내기의 사천은 예고된 일이었다.

당시 비명 김종민 의원은 “전 세계 민주 정당 중에 이렇게 하는 정당은 조선노동당과 공산당밖에 없다”고 했다. 이후 공관위원과 선관위원장이 사퇴하는 공정성 논란 속에 원내외 친명(친이재명)을 살리고, 친문(친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탈당도 자유”라며 내치는 ‘비명횡사’가 몰아쳤다. 몇몇 비명 중진 현역과 원외 인사들을 남겨두긴 했지만 정적을 제거하고, 기존 계파를 모두 와해하는 공천작업을 완료했다. 지난 총선 때도 사당화 논란이 있었고, 총재 시절 역시 공천 파동이 다반사였으나 이처럼 “원칙도, 절차도, 명분도, 심지어 총선 승리라는 진영의 과제까지도 내던진”(홍영표 의원) 공천 도륙은 보지 못했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 시절이던 2017년 5월 제19대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처음으로 주류 문재인 후보에 맞설 때만 해도 소수파 중의 소수였다. 2018년 지방선거 경기지사 경선 과정에서 친문과 일전을 벌이며 세를 키웠다. 2021년 7월 제20대 대선 민주당 경선에 나설 때도 소수파였지만 그는 거물이 돼 있었다. 대장동 사건이 불거졌는데도 친문의 분화 속에 후보가 됐고, 2022년 3월 대선의 패배자가 3개월 뒤엔 국회의원, 5개월 뒤엔 당권까지 거머쥐었다. 이제는 대선 패배 책임을 친문에 덮어씌워 친명을 확고한 주류로 재편했다. 당내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지 7년, 공천 작업 3개월 만에 70년 전통의 민주당을 1인 1색의 정당으로 완전히 개조했다. 그게 혁신(革新)이라는 미명 아래 ‘가죽이 벗겨진’ 민주당의 현재다. 이번엔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가 “조선노동당처럼 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일성은 1956년 소련에서 스탈린 격하 운동이 시작되자 전이를 막으려 정적들을 종파주의자로 몰아 숙청을 단행했다. 6·25 실패 책임, 불순 사상 등을 들먹이며 박헌영, 연안파, 소련파, 갑산파 등을 차례로 무자비하게 제거하고 1961년 1인 독재를 완성했다. 자유민주주의 다원적 정당체제와 ‘유사’ 공산주의 일당 체제를 현상적으로 비교하는 게 억지랄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주류 교체는 이념·노선 갈등, 대안 리더십 부상에 따른 주도권 다툼처럼 보편적 요인이 아니다. 오로지 1인 정당 권력을 공고화하려 내외부 세력과 시스템을 도구화했다. 현대 민주국가 정당사에선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상도(常道)를 벗어났다.

정당 시스템 무력화와 인적 청산의 여파가 무서운 건 정신적 유산까지 상실되는 것이다. 공과 논쟁이 거세지만, 주요 정당들이 저마다의 역할로 국가 기반 축적에 일익을 담당해왔음을 인정하는 것은 그 유산 덕분이다. 그 역사가 당 정체성의 근간이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결집하게 한다. 민주당이 ‘우리의 대통령’으로 칭하는 김대중의 의회주의, 노무현의 탈권위주의가 숱한 실정(失政) 공방 와중에도 평가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 지금 민주당에선 강령 전문에서 핵심 가치로 내세운 ‘공정·생명·포용·번영·평화’가 죄다 흔들리고 있다. 공천 과정에서 공정과 포용이, 비례위성정당에서 당 정체성에 반하는 세력들의 원내 진입을 보장하면서 생명·번영·평화가 위협받고 있다.

지난 1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정당 지지도는 33%로, 국민의힘(40%)에 1년여 만에 오차범위를 벗어난 차이로 뒤졌다. “공천 갈등 등이 큰 변동 요인”이란다. 여권의 실책에 기대는 관성적 선거전략에 제동이 걸렸다. 비주류로 겪은 핍박에 대한 복수이건, 당을 방패로 삼으려는 의도이건 그 역시 이 대표의 자유다. 하지만 자신보다 먼저 생겨나 국가적 역경을 헤쳐온 정당은 그런 사익에 쓰일 도구가 아니다. 총선이란 국민적 심판에 앞서, 민주당 지지층의 심판이 더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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