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또 다른 시작’… 딸의 안락사, 먹먹한 공감

  • 문화일보
  • 입력 2024-03-05 08:55
  • 업데이트 2024-03-0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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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연극 ‘비Bea’ 공연 사진. 딸은 어머니에게 안락사를 요구한다.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제공



■ 연극 ‘비bea’ , 24일까지 LG아트센터 무대에

8년째 병상에 누워있는 ‘비’
“고통 벗고싶어” 안락사 요구
모친 거부하지만 결국 ‘존중’

상상 속 댄스·파티 장면 등
무거운 주제, 유쾌한 분위기
방은진, 23년만의 무대 복귀


“부모를 잃은 자녀나 남편을 잃은 부인을 가리키는 말은 있지만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낸 부모를 나타내는 단어는 없어요.”

부모에게 자식을 잃는 것보다 더 큰 슬픔이 있을까? 아픈 딸이 안락사를 원한다는 뜻을 내비치자 어머니는 자식을 잃은 부모를 나타내는 단어는 없다며 절규한다. 지난달 17일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연극 ‘비bea’는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시각으로 안락사에 접근한 작품이다.

‘비’는 정확한 병명을 모르는 만성 피로증으로 8년째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의 모친 ‘캐서린’은 딸을 위해 동성애자 간병인 ‘레이’를 고용한다. 비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안락사를 요구하지만 캐서린은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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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소재를 밝고 유쾌하게

안락사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지만 극의 분위기는 대체로 밝고 유쾌하다. 작품은 비가 침대 위에서 방방 뛰며 신나게 춤을 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에도 레이와 춤을 추거나 레이, 캐서린과 함께 파티를 즐기는 등 신나는 장면이 계속 나온다.

하지만 이는 실제 비의 모습이 아니라 상상 속 모습이다. 비는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 정도로 아프지만 상상 속에서만큼은 활기차고 긍정적인 모습이다. 이는 말도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온몸이 마비된 듯한 비의 실제 모습이 나올 때 슬픔을 배가시키면서 자칫 어렵게 흘러갈 수 있는 작품을 누구나 즐겁게 관람할 수 있게 해준다.

간병인 레이의 어설픈 행동도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그는 당황하면 횡설수설하며 이상한 소리를 하고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는 기괴한 버릇이 있다. 간병 중에 옷장을 발견하고 신이 나서 비의 드레스와 하이힐을 신고 포즈를 취하다가 캐서린에게 들키는 장면이 압권. 하지만 레이는 우스꽝스럽기만 한 캐릭터가 아니라 비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인물이다. 비 대신 캐서린에게 안락사를 요구하는 편지를 작성하기도 하며 이 과정에서 캐서린이 거부하자 비의 입장에서 캐서린을 설득한다.

#공감의 중요성

작품은 공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비는 예전에 자신처럼 병명을 모르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친구가 있었으나 전혀 공감하지 못했던 사실에 자책한다. 그는 같은 처지가 되고서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과거를 후회한다. 이준우 연출은 “나의 신념과는 정반대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들, 그리고 타인이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공감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물음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작품은 캐서린이 비의 뜻을 존중하고 그의 안락사를 돕는 것으로 끝난다. 이때 무대 세트인 비의 방이 무너지며 넓은 들판과 숲이 펼쳐진다. 비는 자유롭게 이 들판을 뛰어놀며 죽음이 또 다른 시작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보인다.

2016년 국내 초연했던 작품으로 이번이 세 번째 시즌. 방은진 감독이 23년 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비 역을 이지혜·김주연, 레이 역을 강기둥·김세환, 캐서린 역을 방은진·강명주가 맡는다. 공연은 오는 24일까지 계속된다.

유민우 기자 yoome@munhwa.com
유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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