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특권 폐지 공약 왜 없나[뉴스와 시각]

  • 문화일보
  • 입력 2024-03-19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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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경 전국부장

최근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스웨덴 현지에서 30년 이상 생활한 그로부터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스웨덴 의원에 비해 얼마나 많은 특권과 권한을 누리고 있는지 자세히 설명 들었다. 최 교수가 거론한 한국 국회의원들의 특권은 너무 많은데, 대표적인 것들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을 누리고 있으며 세계 최고 수준의 연간 1억5700만 원 세비, 여기에 사무실 지원 경비 일부와 후원금을 합할 경우 실질 연봉은 5억 원에 이른다. 또 KTX 특실, 비행기 비즈니스석, 의원회관 내 이발소·헬스장·목욕탕·약국 등 무료 이용, 의원회관 내 내과·치과·한의원 본인 포함 가족 무료 이용, 인천국제공항 등의 귀빈실 무료 이용 등의 호사스러운 혜택을 누린다. 스웨덴에선 개별 의원 보좌진을 둘 수 없으나 한국 국회의원들은 의원실별로 보좌진 9명을 둘 수 있다. 출판기념회 등을 통한 자금 조달 관행은 스웨덴 등 다른 나라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인터뷰 도중 미심쩍어 “스웨덴에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죠?”라고 물었다. 최 교수는 “스웨덴 역시 이런 정치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며 “정치 문화는 바뀔 수 있고 정치인 의식도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식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시민 자발적 국민협의회 같은 조직을 만들어 정치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의 주장은 다소 이상적인 것 같지만 비(非)현실적이진 않다. 정착되긴 쉽지 않아 보이지만 스웨덴에서 법제화돼 작동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시행되지 못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번 총선에 뛰어든 정당 중 한 곳이 최 교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이를 선제적으로 공약화하는 건 어떨까 한다. 조직을 결성하고 여론을 조성,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더욱이 이를 실행에 옮기는 정치집단은 총선에서 보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여론은 압도적으로 국회의원들의 특혜 폐지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 인터뷰 기사에 달린 온라인 댓글들을 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특권에 중독돼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비난을 쏟아낸 뒤 권한 폐지를 거세게 요구하고 있다.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자발적으로 축소하겠다고 나서는 정치집단을 비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설사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도 대놓고 반대하긴 힘들 것이다. 자기희생을 전제로 한 발언은 일정한 도덕적 무게감을 갖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의 감동이 여전한 것은 절대 반지의 유혹 속에서도 이를 품고 모르도르 화산까지 가서 임무를 완수한 반지 운반자 ‘프로도’의 진정성과 자기희생이 작품 전체를 휘감으며 아우라를 뿜어내는 덕이다. 국회의원 특권 폐지 주장의 근원을 보면 르상티망(강자에 대한 약자의 반감)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르상티망은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최 교수 제안은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느닷없이 나왔는데, 어쩌면 이러한 제안이 혼탁하고 살벌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 정치판에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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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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