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 같은 하루[유희경의 시:선(詩:選)]

  • 문화일보
  • 입력 2024-04-1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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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과 동시에 떠나야 하는/ 한 송이// 누군가 그를 세고 또 센다/ 건네기 위해 하루를 다 쓴/ 한 송이// 받으세요/ 받으시고/ 영원히,/ 받으소서// 우리와 우리 아닌 것/ 사이에 낀// 한 송이// 지나쳤지?/ 지나쳤지// 셀 수 없는, 여름이 오면 좋겠다’

- 박연준 ‘택배, 사람’(시집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갈래? 가자. 간단하게 주고받은 다음 새벽부터 아버지를 뵈러 간다. 세상을 떠나신 지 벌써 스무 해. 산소에 가도 아버지는 없는데, 알고도 간다. 동생과 매부와 그들의 아이들과 나와 아내와 어머니가 한 차에 실려 아버지께 간다. 봄이 왔으니까.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길은 참 지루하다. 그러니 온갖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간 있었던 일, 날씨와 경제 걱정. 이야깃거리는 한도 없다. 누군가 목소리를 높이면 누군가는 화제를 돌리고 같이 웃고 혀를 차고 그렇게 한 시간 동안 ‘가족’이라는 감각을 되찾는다. 차는 입구에서 잠시 멈춰 선다. 온갖 빛깔의 조화가 전시되어 있다. 나는 그게 싫다. 올해는 생화로 하지. 환경에도 좋지 않고. 어머니는 도리질 친다. 그걸 누가 관리하니.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결국, 수긍하고 만다. 구름이 걷히고 산소 곁에는 아직 벚꽃이 요란하다. 술을 올리고 절을 하고 그런 것도 잠깐이고, 묘표에 새겨진 이름과 날짜를 보며 애처로운 상념에 빠지는 것도 순간이고 우리는 벚나무 주변에서 깔깔거리며 논다. 순간 어머니 위로 꽃비가 쏟아진다. 눈이 부시구나. 나는 카메라를 들어 그 장면을 찍는다. 알고 보니 벚나무를 흔드는 동생이 있다.

올 때와는 달리 갈 때는 말이 없다. 자꾸 말과 말 사이가 멀어지고 봄볕은 따뜻하다. 나는 아까 본 꽃비를 떠올린다. 아뜩하다. 이 또한 잠시일 뿐이리라. 운전하는 매부의 어깨에 꽃잎이 묻어 있다. 나는 모른 체하고, 깜빡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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