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현실과 따로 노는 정책[뉴스와 시각]

  • 문화일보
  • 입력 2024-06-11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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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동 경제부 부장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9일 방송에 출연해 “종합부동산세(종부세) 폐지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최근 대통령실과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종부세 폐지 또는 완화 주장에 찬성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권에서는 “이번 기회에 상속·증여세 부담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종부세는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값을 잡겠다면서 무분별하게 세 부담을 강화한 측면이 있고, 상속·증여세도 세 부담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종부세나 상속·증여세를 개편할 필요성이 있다는 뜻이다.

종부세나 상속·증여세 부담 완화가 그동안 왜곡된 조세 현실을 바로잡는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시점에서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재정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혼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국 재정이 나아갈 방향은 ‘수입은 늘리고, 지출은 가급적 줄이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면 재정이 급속도로 무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더 이상 고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조세수입이 급격히 늘 것이라고 예상할 수 없다. 반면, 지출 측면에서는 쓸 곳이 너무 많아 열거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가장 큰 지출처는 저출생·고령화 대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악화하고 있는 우리나라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으로 300조 원이 들지, 500조 원이 들지, 그 이상이 들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3월까지 누적 국세수입은 84조9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조2000억 원 감소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2년 연속 ‘국세수입 펑크’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추진된 국민연금 개혁은 ‘국민 부담을 늘리거나, 혜택은 줄이는’ 개편이 얼마나 지난(至難)한 일인지 다시 한 번 보여줬다. 계산법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국민연금은 대개 2050∼2060년이면 기금이 모두 고갈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건강보험(기본 전망)은 올해부터 적자로 전환한 뒤 2028년에는 준비금이 모두 소진되고, 2032년이면 누적 적자액이 61조6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외 다른 사회보험도 대부분 국고 지원이 없다면 앞으로 계속 유지가 어려운 실정이다. 결국, 한국의 재정은 향후 30∼40년 정도의 시간 동안 생존 자체에 대한 혹독한 시험에 들게 될 것이다.

앞으로 상당 기간 한국의 재정은 수입을 최대한 늘리고, 지출은 최대한 억제해도 큰 폭의 적자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시점에서 종부세나 상속·증여세 개편에 바람직한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에게 잘못된 ‘감세 시그널(신호)’을 줄까 봐 걱정하는 이유다. 한국의 재정 현실은 엄중하지만, 경제총괄 부처이자 ‘재정 당국’인 기획재정부의 리더십은 갈수록 약해져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 경제·사회 정책을 가장 폭넓게 보고 판단하는 자리 중 하나인 기재부 차관보(1급)까지 공직을 떠나 민간 기업으로 간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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