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단편소설>가을의 자전거

아주 잠깐, 현관 밖이 좀 소란하고 왠지 불쾌한 느낌이 들었던 지진이 있었다는 것 외에 별다른 일이 없는 금요일 오후였다.

창밖으로 멀리 광장의 시계탑과 그 건너편, 대학 설립자의 동상이 서 있다. 하늘을 찌를 듯한 포플러 사이로 본부 건물이 언뜻 보이고 그 너머에 도서관과 문학부 건물 지붕도 보인다. 바로 길 건너 신호등이 명멸하고 공사장에 안전모를 쓴 사람이 철구조물 위를 오락가락한다. 창 아래 남학생 둘이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지난다. 하나는 자전거를 탔고 다른 하나는 아니다. 시간이 더디 가는 것 같았다. 지금부터는 더 그럴 것 같았다.

문득 밖에 나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료히 앉아서 시간을 보내기도 그렇거니와 내일 두 아이의 도시락 재료를 미리 준비해 두어야 했다. 서울 같으면야 마트에서 한꺼번에 배달시키거나 과일도 박스째 사곤 했지만 이곳에서는 차도 없고 배달이라는 것도 없었다. 물가도 좀 비싼가. 쌀도 봉지쌀을, 닭튀김도 날개 한 쪽, 다리 한 쪽 사다 먹어야 했다. 다행히 타임 세이루라고 해서 그때그때 싸게 파는 것이 있었다. 최근에 알게 된 일이지만 낮에는 우유, 계란, 채소 같은 것을 세일했고 저녁에는 이따금 고기, 생선 같은 것도 싸게 팔았다. 운이 좋으면 큼지막한 양상추나 파인애플을 100엔에 살 수도 있었다. 별달리 소일거리도 없는 내게 상점에 다녀오는 것은 어찌되었든 중요한 일과이기도 했다. 동네의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며 시간을 보내다가도 저녁 무렵, 부리나케 상점을 들르곤 했다.

그러나 나는 상점과 반대쪽에 있는 간다가와(神田川)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해가 머리 위를 지나고 있었다. 보도의 바닥돌이 햇볕을 받아 반짝거렸다. 아침과는 달리 좀 덥게 느껴졌다. 기숙사 옆, 둥근 유리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미용실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도시락집 앞 사거리에서 다시 신호등을 건넜다. 편의점과 인도 음식점, 구식 과자점, 100엔숍 등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골목 안으로는 주택가다. 오래된 집들과 깔끔한 현대식 주택이 뒤섞인 한적한 곳이다. 간혹 인쇄공장 같은 게 드문드문 섞여 있다. 가게 안쪽으로 종이두루마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윤전기가 휙휙 돌아간다.

회색 제복을 입은 공장 직원이 길에 서 있는 자판기 앞에서 음료수를 빼고 있다. 자판기에는 카우보이 모자에 콧수염을 붙인 여자가 커피를 마시는 캔커피 광고가 붙어 있다. 골목 끝, 다리 아래 퍼런 강이 누워 있다.

일본에 온 다음날 오전, 남편이 반바지 차림으로 나와 아이들을 데리고 온 곳이 바로 이 강이었다. 강가에는 철망으로 된 가드레일이 쳐져 있어 허리를 꺾고 강을 굽어볼 수도 없게 되었다. 게다가 자연스레 흐르는 물줄기가 아니라 양쪽에 견고한 콘크리트 벽 사이로 고여있는, 어쩐지 비밀스럽고 음습한 저수지 같았다. 그 날도 아침부터 날이 찌기 시작했다. 쓰유(우기)가 끝나고 폭염이 계속되고 있었다. 콘크리트 벽은 물이끼로 검푸르게 변색되었고 강은 햇빛을 받아 진득한 콜타르 위에 비닐을 척 덮어 놓은 것처럼 검게 번들거렸다.

“벚꽃들이 강으로 날려 그야말로 볼만했소. 그런 모습은 아직 본 적이 없어 꿈을 꾸는 것 같았다오. 강은 아예 꽃잎으로 하얗게 덮여 흘렀소.” 봄에 남편은 그렇게 메일을 보냈었다. 나는 나무 그늘이 있는 가드레일에 몸을 기대 철조망 아래, 물을 맥없이 내려다보았다. 톱밥 같은 부유물이 물 가장자리에 떠다녔다. 그때 서늘한 축축함이 내 종아리를 훑고 지났다. 지나가던 개의 혀였다.

그러나 여름이 물러가면서 강가의 나뭇잎들이 물들고, 강물이 제법 깊어지자 그곳이 꽤나 운치 있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노란 나뭇잎들이 드문드문 떠 흐르는 강물은 벚꽃보다는 못하겠지만 나름대로 보기 좋았다. 간다가와 길은 오후 산책 코스 중의 하나가 되었다.

나는 다리를 건넜다. 강 반대편 좁은 길이 호텔 담을 끼고 뻗어 있다. 도쿄 시내에서 유서 깊기로 손꼽히는 호텔이란다. 호텔 담 위에 고양이들이 게으르게 앉아 있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몹시 뚱뚱한 여자가 담배를 손에 쥔 채 지나갔다. 언제나 바닥을 내려다보며 걷는 여자다. 뒤를 돌아보니 그녀는 담에 난 쪽문으로 들어간다. 호텔 직원인 모양이다.

검은 양복저고리의 남자의 벤치를 지나친다. 녹차병을 쥔 채 삼각 김밥을 씹는 중이다. 그리고 덥수룩한 머리칼과 검은 수염을 가진 노숙자도 지나친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꼿꼿이 앉아 ‘문예춘추’를 읽고 있는 그를 보노라면 ‘날개’의 ‘이상’이 생각났다. 봉두난발 ‘이상’의 시간을 걷는 듯한 착각이 든다. 강을 배경으로 이따금 물살이 찰싹이는 소리만 낼 뿐 모든 것이 고요하다. 강물은 햇빛을 받아 천 조각 만 조각 파란 물비늘을 만들어내고 있다. 강 안쪽으로 뻗은 벚나무 가지의 이파리들도 다갈색으로 물들어 있다.

대학 정문쪽 신호등이 바뀌자 사람들이 떼를 지어 건너왔다. 시계탑은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다. 손에 쥔 것은 빵과 어묵과 감자 두 알이다. 갑자기 마음이 바빠진다.

“곤니치와.” 푸른 색, 중국옷을 입은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길을 건너 왔다. 키가 크고 훤칠해서 그런지 자전거 탄 모습이 멋지게 보인다. 같은 기숙사 건물에 사는 중국여자다. 그녀가 자전거를 내린다. 그녀의 남편도 이 대학에서 컴퓨터관련 기술을 공부하는 연구원이다. 이곳에 온 지 일 년이 넘었다고 했다. 그녀는 건물 뒤편 주륜장으로 들어갔다. 마침 얼굴이 유난히 붉은, 백인 남자도 자전거를 끌고 나온다. 여기 사람들은 모두들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나만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실은, 여름 내내 나는 자전거와 씨름했다. 일본에 먼저 가 있던 남편에게 자전거를 배워 오라는 메일이 왔지만 나는 어디서 어떻게 자전거를 배우는지도 몰랐고 또 내키지도 않아 들은 척 만 척했다.

일본에 오긴 왔지만 이곳에서 무슨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특별히 할 일도 없었다. 여름 방학이라, 모든 프로그램이 쉬고 있어 아이들도 일주일에 두 번 일본어를 배우러 가는 일 이외에는 하루 종일 에어컨을 켜 놓고 컴퓨터를 들여다보거나 만화책이나 보며 빈둥거렸다. 지하철을 타고 아이들과 도쿄 디즈니랜드, 박물관, 과학관 등을 찾아다녔지만 그게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일본에 막상 와 보니 물가도 그렇거니와 교통비는 상상외로 비싸서 밖에 나가는 것이 겁이 날 정도였다. 하긴 이미 일본에 오던 날부터 나는 공항 리무진비과 택시비에 질릴 만큼 질려 있긴 했다. 게다가 일본 전철은 서울과는 달리 복잡해서 도쿄역에서 길을 잃어 몇 시간 동안 헤맨 적도 있었다.

우리를 데려다 놓고 남편은 나 몰라라 하루 종일 연구실에 있다가 밤늦게야 돌아오는 일만 되풀이하였다. 그는 10년, 아니 15년, 대학에서 시간강사 노릇을 했다. 교수가 될 뻔한 적이 있었지만 이미 다 짜놓은 각본에서 밀리기 마련이었다. 대학측 공고도 눈속임일 뿐이었다.

“다들 패거리들이지.” 그는 분노했고 그리고 허탈해 했다. 그의 눈빛은 창살에 갇힌 짐승의 그것이었다. 낮과 밤을 거꾸로 살았고 소파에서 웅크리고 잠을 잤다. 그의 미간은 좁혀져 있었다. 그런 무기력은 전염성이 있는지 집안 구석구석 배었다. 전화벨이 오랫동안 울려도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일본에 온 것은 그러니까 그에게는 일종의 도피 같은 것이었다. 마침 도쿄의 한 사립대학이 그를 연구원이라는 애매한 신분으로 불러주었다. 그리고 몇 달 후 대학에 딸린, 모든 게 갖추어진 외국인 가족 기숙사도 배려해 주었다. 좀 비싼 게 탈이긴 했지만. 나와 아이들은 큰 짐 없이 옷가지만 들고 일본에 올 수 있었다. 공항에 마중나온 남편은 머리칼이 덥수룩해 그런지 낯설게 느껴졌다.

그런데 일본 사람은 물론이고 이따금 기숙사 앞집, 옆집 각 이방인들도 다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이제라도 홀로 서기 위해 자전거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저녁나절, 차도 끊기고 인적이 뜸한 골목길에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남편이 이따금 쓰는 기어도 없는, 값싼 은색 자전거였다. 그러나 안장에 걸터앉기도 전에 서지도 못하고 휘청거리다 자전거는 쓰러지고 말았다. 2, 3일 연습하면 되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이 주일이 지났다.

‘페달을 밟아 보라니까.’ 아이도 어지간히 지쳤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여간해선 땀이 안나는 체질인데도 얼굴에 땀이 비질거렸다.

“잘 좀 잡아봐.” 나는 아이 탓을 했다. 아이는 투덜거리며 다시 뒤에서 잡아주었다. 2, 3미터 전진하는가 싶었는데 그만 핸들이 제멋대로 비틀비틀하다 공사중인 가건물 벽에 곤두박질쳤다. 우당탕, 천둥이 치는 듯했다. 아이가 달려왔다. 간신히 일어나보니 기숙사 맞은편 2층집 남자가 불빛 속에서 러닝차림으로 무슨 일인가 내다보고 있었다. 혹시 그 사람이 뭐라고 할까봐 겁이 났다. 남한테 피해를 주는 것은 이 나라에서는 거의 죄악에 가깝다. 운동신경이 둔한데다 나이도 나이니만큼 이제서 자전거를 배운다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았다. 두 개의 얇은 바퀴가 휘익휘익 굴러가는 것은 나에게는 무슨 조화 같았다. 간혹 내리막에서 애기 엄마가 아이를 앞뒤 바구니에 앉히고도 쏜살같이 미끄러져왔고 젊은이가 태연스레 손을 놓고도 달렸다. 또 언덕을 오르는 자전거. 아예 뒷자리에 다른 사람을 세운 채 달리는 자전거, 비올 때 우산을 받고 달리는 자전거, 내게는 모두 기이한 풍경이었다. 그에 비하면 자동차 운전은 주행에서 4번이나 떨어졌지만 자전거보다는 쉽게 배운 것 같았다. 나는 자전거 타기를 포기했다.

9월이 되어 생각다 못해 마루노센역 근처에 있는 일본어 학교(일본은 학원을 학교라고 한다)에 등록을 했다. 사실 집에서 학교까지 걷기는 좀 먼 거리였다. 헌책방과 고서점 거리여서 한가롭기는 했지만 그러나 역 근처에 갈수록 출근길 인파에 묻혀 횡단보도를 몇 번이나 건너야 했다. 또 집에 올 때는 아직도 한낮의 폭양이어서 그늘로 다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게다가 여느 도시가 그런 것처럼 흙 한 줌 밟을 곳이 없어 숨이 턱턱 막혔다. 비가 오거나 늦었을 때 버스나 전철을 탄 적도 있지만 한국 돈 ‘원’으로 바꿔 생각하면, 또 지갑에서 술술 빠져나가는 엔화를 생각하면 걷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집에 올 때 상점에라도 들렀다오면 두어 시간이 걸리는 것은 예사였다. 무나 배추 등을 사서 들고 온 날은 그야말로 팔이 빠져나갈 것 같았다. 서울선 그렇게 흔하던 수박을 여름 내내 한 통도 사먹지 못하고 보내고 말았다.

밖은 이미 어둠이 내려앉고 있다. 점점 해가 짧아졌다. 아이들 저녁은 대충 지어 놓았다. 나는 화장대 뚜껑을 열고 거울을 세웠다. 서울에 있을 때 따로 화장대 없이 살았건만 이곳은 수납장과 속이 시원하게 큰 사각거울이 달린 유럽풍의 화장대가 딸려 있다. 이 기숙사는 시설이 좋은 만큼 월세가 비싸서 나는 그런 가구들이며 전자제품들이 편치 않았다. 남편은 일본 문화 장학재단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나도 매일같이 기숙사 1층 로비에 있는 우편함을 확인하였다. 만일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집세가 싼 곳으로 옮기든지 어쩌면 일본어 학교의 젊은 유학생들처럼 광고가 적힌 휴지나 전단지를 돌리는 일이나 건물청소 같은 일을 해야 할 것 같기도 했다. 아직은 그럴 용기가 없지만 언젠가는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축축한 머리칼에 손가락을 넣어 머리를 털었다. 파마기가 다 풀려 단발머리가 볼품없이 착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다. 로션을 아끼지 않고 얼굴에 듬뿍 찍어 바른다. 내 얼굴이 많이 변했을까. 볼이 훌쭉 들어가 있고 광대뼈 부근의 기미도 보기 싫다. 선생은 어떻게 변했을까. 남자들이야 늙었다 해도 오히려 그게 멋이 될 수도 있는 것 같은데. 하기야 늙어가는 것이 뭐 어떠랴 싶다. 나는 하루빨리 늙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차례로 돌아왔다. 큰 애는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다. 친구들과 무얼 마시고 온 모양이다.

며칠 전 후배를 만나러 후배의 대학에 갔다 온 남편이 집에 와서는 히죽히죽 웃었다.

“오늘 누구 만났는지 알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하자 계속 맞혀보라고 한다. 나는 짐작할 수도 없었다.

“종수랑 연구실 밖에서 담배 피우고 있는데 바로 그때 한 사람이 우릴 쳐다보고 있더라구. 꼭 한국사람 같아 종수에게 물어봤지. 바로 박선생이래. 니가 좋아하는.”

나는 좀 놀랐다. 세상이 좁다더니.

“교환교수로 오신 모양이구먼. 알은 체는 좀 했남?” 심드렁히 말하자 남편은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주었다.

“니가 안사람 된다고 하니까 매우 반가워하시더라. 한번 같이 만나자던데?”

엷은 미색 바탕에 한문으로 서울과 도쿄 집, 대학 연구실의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 번호가 적혀있고 뒤쪽은 영문이다. 나는 그걸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날 저녁, 과연 선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처음에는 너무 오랜만이어서 다소 얼떨떨했는데 금방 선생의 목소리며 이야기에 익숙해졌다.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꽤 오랫동안 통화를 하였다. 20년의 세월이 거짓말 같았다. 그 기나긴 시간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하긴 종종 선생 생각을 하기는 했다. 종종 그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아니 어디서건 선생과 불쑥 마주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실제로 선생과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다. 대학 답사 시절, 여관방에서 모여 놀다 다들 졸려서 뿔뿔이 흩어졌는데 한 선배와 나는 벽에 기대어 슬슬 미끄러지면서도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틀 무렵이 되어서야 우리는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을 알았다.

“그런데 왜 선생님이 꼭 존대를 하시지? 나 같으면 제자한테 꼬박꼬박 반말 쓸 것 같은데.”

전화를 끊고 내가 상기된 채 종알거리자 남편은 “원래 권위적인 사람은 그런 거야” 했다.

“권위적? 선생은 권위하고는 관계없는 사람이야”라고 대꾸를 하면서도 조금은 자신이 없었다. 세월도 세월이려니와 선생은 그간 우리와는 너무 동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선생은 내가 졸업하던 해, 자신의 모교로 옮겨 갔고 내가 결혼할 무렵에는 대학 처장이 되었다는 풍문이 들렸다. 대학 동문회 때 다른 교수들은 얼굴을 비쳤지만 선생은 번번이 나오지 못했다. 너무 바쁘기 때문이란다. 대신 텔레비전이나 여성 잡지 같은 데서 가끔씩 선생을 뵌 적은 있다. 그후 선생이 학장을 하기도 했으니 그런 자리에 있다 보면 사람이 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도쿄생활이 너무 무미건조하고 재미없어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니까 선생은 전화상 근엄한 소리로 “그러면 안 되지.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흔들리면 절대 안 되지.”하고 말했었다. 제자 앞에서 선생은 누구라도 바른 길을 안내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단지 투정을 좀 한 것뿐인데……. 선생은 이번 주는 한국에서 손님들이 와서 바쁘니 다음 주말쯤 보자고 했다.

“학교 근처나 시내에서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는 게 좋겠지? 술도 좀 마시고.” 남편은 별 대꾸가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선생은 술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었다. 답사에서 돌아오는 날 다들 저녁을 먹고 헤어졌는데 그중 몇몇은 아쉬움이 남아 근처 술집으로 몰려가곤 했다.

“내가 우리 아파트에서 제일 늦게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이라는군.” 누군가 늦지 않냐고 걱정하면 선생은 오히려 호기있게 2차, 3차를 끌곤 했다. 그러니 따끈한 니혼슈를 마시며 지난 일을 얘기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술을 좋아하는 남편과 한통속이 될지도 몰랐다. 내가 결혼할 생각을 한 것도 남편이 어딘지 선생과 닮았기 때문이었다. 웃는 표정이라든가 걸음걸이라든가. 또는 목소리라든가.

“오는 게 좀 복잡하긴 하지만…….” 다음날 선생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당신이 살고 있는 집으로 오라는 전화였다. 나는 급한 마음에, 혹시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전화기 옆에 놓인 선생의 명함에 선생이 불러주는 대로 메모를 했다. 명함은 제멋대로 갈겨쓴 메모 때문에 지저분해졌다.

옷을 갈아입은 채, 창문 밖, 신호가 명멸하다 바뀌곤 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6시가 넘었다. 다시금 한 떼의 학생들이 횡단보도를 바쁘게 건너왔다. 드디어 현관벨이 울렸다.

“초행길인데 헤맬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오랜만에 만나는데 선생님을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막 들어서는 남편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30분이면 가.” 머리칼이 덥수룩하고 수염도 깎지 않아 얼굴이 꺼칠해 보였다. 오늘따라 왜 저런담.

집 근처, 주류 판매점에서, 포도 넝쿨로 글씨를 꾸민 상표의 포도주를 고를 때에도 그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인 듯 굴었다. 금요일 저녁 지하철 퇴근길의 혼잡한 승객들 틈에서도 그는 딴 생각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역 밖으로 나가자 벌써 사위는 컴컴해져 있었다. 어두워져 선생의 집을 찾기가 더 어려울 것 같았다.

“어디로 가야하지?”나는 어둠을 휘휘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여기 와 본 적이 있어. 한때 종수가 그 기숙사에 살았거든.” 잠시후 남편은 길 아래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편의점에서 길을 꺾어 한참을 올라가려니 딴 세상이 펼쳐졌다. 우리가 사는 대학 기숙사 근처는 좁고 오래된, 희미한 불빛의 음식점이 즐비해 저녁이면 찌개 냄새, 튀김 냄새, 장어 굽는 냄새가 거리로 스미는데 이곳은 깔끔하고 휘황찬란한 서구식 레스토랑들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이미 주변에는 고급스러운 흰 파라솔이 펼쳐져 있고 여기저기 테이블에 끈달린 티셔츠를 입은 금발 여자와 이국남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치 유럽의 야외 식당가를 연상시켰다. 서양인이 많이 모이는 거리인 모양이었다. 한국인이나 중국인, 몽골인이 아닌……. 환한 불빛과 음악, 사람들의 옷차림, 종업원들의 깍듯한 태도가 그곳을 지나치는 우리를 주눅들게 했다. 선생도 가끔 사모님과 함께 이곳에 와서 저녁을 먹거나 와인을 한 잔 할까. 선생은 몇 년 전에도 미국에 교환교수로 갔다온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인 것 같은데?” 음식점 거리 끝, 어둑한 주택 단지가 이어졌고 갑자기 3층짜리 아파트가 막아섰다. 팻말을 보니 선생이 말한 ‘인터내셔널 라운지’였다.

희부옇게 현관이 빛났다. 벨을 누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금세 문이 열리고 선생의 웃는 얼굴이 있었다.

여느 일본집이 그렇듯이 실내는 다소 비좁고 책이며 자료들로 빽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선생이 실내화를 권하였다. 입구에 실내화가 두 개 나란히 놓여 있었다.

“걱정했는데 잘 찾아 오셨네.” 앞치마를 두른 부인이 반색을 하였다

“자 어떻게 앉으면 될까?” 선생은 20년의 세월답게 머리숱이 성글고 희끗희끗했다. 거실의 여기저기에 작은 장식품이 진열되어 있고 아들인 듯한 장성한 젊은이와 산을 배경으로 찍은 선생 내외의 사진도 보였다.

“자 이쪽으로.” 식탁에는 생선찜과 전 등이 차려져 있다. 순 한국식 콩나물무침도 있다.

텔레비전에서는 오늘 일어난 지진에 대한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뉴스에 나올 정도면 오후의 지진이 제법 컸던 모양이다. 화면에 정유시설이 벌겋게 타오른다.

“오늘 지진 난 것 아셨어요?”

“그럼, 같이 있던 일본인 조교가 문을 열어두더니 얼른 방석을 들고 책상 밑으로 피하더라고. 나도 무척 놀랐지. 도쿄가 이 정도면 저쪽은 대단할 거야. 여기 사람들 살이가 빡빡한 게 다 이유가 있어.” 밖은 9월인데도 한참 걸어온 탓인지 실내가 매우 덥게 여겨졌다. 남편과 내가 웃옷을 벗자 선생이 덥지? 하며 창문을 열었다. 갑자기 거리를 질주하는 차소리가 달려들었다.

“차라리 에어컨을 켜세요.” 부인이 조개회를 내왔다. 손바닥만한 조개껍데기 안에 두툼한 조갯살이 반질거렸다. 싱싱해 보였다.

“아 이것 참,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사모님한테까지 이렇게…….” 남편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실은 우리도 밖에서 만나려고 했는데 어제 홋카이도에서 누가 이걸 보내주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우리끼리 먹기도 그렇고 해서.” 역시 선생다웠다. 답사 마지막 날, 다들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 나는 속이 좀 나빴던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여관방에 남아 있었다. 선생은 돌아오는 길에 군밤을 사들고 왔었다.

“와아, 도쿄 와서 이런 것 처음 먹어봐요.” 사실 이곳서 외식이라고 해봐야 여행지에서의 덴푸라우동, 라면집에서 돼지 냄새가 역한 미소라면, 회전 초밥집의 초밥 정도였다. 나도 언제 귀한 것이 생기면 선생 내외를 초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부인도 자리를 잡았다.

“진수성찬이네요.” 남편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다시 고마움을 표했다. 손님을 많이 초대해본 솜씨인가.

“우린 여기서 그저 만만한 것이 삼마(꽁치)인데.” 한국이나 일본이나 꽁치는 제일 싸다.

“삼마요? 정말 맛있죠. 일본인들도 좋아하는데. 이 동네는 왜 그런 게 없나 몰라. 이 동네 부촌이에요. 저 안으로 들어가면 그야말로 저택들이 밀집해 있는데 다들 외제차이고 마트에도 수입품이 반이에요. 우리 같은 가난뱅이 교수집은 좀 그렇죠.”

남편 후배 종수에 의하면 선생은 대학에서 꽤 많은 월급도 받고 있고 지금 살고 있는 기숙사도 전기료 수도료나 낼 뿐 거의 무료라고 했다. 우리가 아무 대책도 없이 와 있는 걸 얘기하면 선생은 또 뭐라고 하실까.

선생이 술을 들고 와, 잔에 따라 주었다. 남편이 선생에게 따라주려 하자 부인은 이제 선생은 술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보직 맡았을 때 회식 때마다 직원들이 술을 돌리는 걸 양반이 거절하지도 못하고. 건강이 말도 아니었죠. 아마 그때 미국에 가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지도 몰라요.” 부인이 선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선생은 어딘가 아픈 사람 같기도 했다.

“그래도 한 잔은 마셔야지.” 선생은 술을 받았다.

“이 양반이 그래도 제자 왔다고 좋은가 봐요. 그래도 나중 일 생각해요…….” 선생이 조금 마셨다.

“지난 번, 이 양반이 집에 오자마자, ‘여보 여보 오늘 신기한 일 있었어’ 하고 신이 난 거예요. 학교에서 제자의 남편을 만났다나요? 점심 먹고 바람 쐬러 잠깐 밖에 나갔는데 벤치에 두 남자가 앉아 있어 속으로 한국 사람인가 보다 라고 생각했데요. 근데 그 중 한 사람이 걸어와 인사를 하더라는 거예요. 이 사람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요. 사실 서울에 있을 때 우리집에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왔어요. 명절에는 정신이 없을 정도죠. 전 10년 이상 거의 손님 뒤치다꺼리하며 세월을 보낸 셈인데. 근데 여기선 그렇지 않으니 이젠 누가 오는 게 좋아요. 여기 기숙사에도 제자가 한 명 있어서 가끔 놀러 와요.”

“예전부터 선생님이 인기가 많았으니까요.” 나는 식탁 밑에서 발을 까닥거렸다.

선생이 부드럽게 웃으며 남편의 빈 잔을 다시 채웠다. 부인이 말했다.

“남편이 밖에서 인기가 많으니 내가 좀 속상해야 되겠죠? 하지만 이 양반이 밖이나 안이나 똑같이 하니까 뭐라고 할 수도 없죠.”

부인은 다시 일어나 부엌에서 밥과 국을 내왔다. 앉아서 받아 먹는 것이 내게는 습관이 되어 있지 않다.

“이 국 좀 먹어봐요. 시원하죠. 우리집 국 한 번 먹어본 사람은 그 맛을 잊지 못한다고 해요.”

일본식 국그릇에 분홍 새우와 팽이버섯이 떠 있었다.

“이렇게 큰 새우로 국 끓이는 건 몰랐어요.”

“블랙타이거를 사야 해.” 선생이 가볍게 대답했다.

대화는 주로 남편과 선생이 이어갔다. 주변 사람들 이야기. 그리고 이곳에 있는 재일 교포나 몇몇의 일본 사람들. 놀랍게도 선생과 남편이 같이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내가 들어본 사람도 있었다. 나는 새우 껍질을 조심스레 뜯어냈다.

“선생님은 한참 윗사람인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네요.”

내 말에 선생이 ‘그렇지 뭐’ 하며 핫하 웃었다. 참 좋은 시간이구나. 나는 선생의 얼굴을 자세히 올려다보았다. 커다란 얼굴 골격에 웃는 표정 그리고 빈틈없는 그러나 부드러운 목소리는 여전하였다. 남편이 거푸 잔을 비웠다. 선생은 우리 쪽의 생선을 먹기 좋게 뒤집어 주었다.

들길 따라서 나 홀로 걷고 싶어 / 작은 가슴에 고운 꿈 새기며.

사철 녹색 진바지를 입고 다니는, 고등학생 티도 벗지 못한 여자애가 울먹울먹하다 간신히 노래를 시작한다. 목소리가 탁한데다 음폭이 좁아 음악시험 빼고는 남 앞에서 노래해 본 적이 없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입술마저 실룩거린다. 언젠가 양수리로 과 엠티를 갔을 때이다. 방갈로 차일에 연둣빛 햇살이 통과해서 사람들 얼굴이 빛과 그림자로 얼룩덜룩 했다. 목소리는 자꾸만 잠겨든다. 사람들은 다시 먹고 마시며 떠들어댄다. 선생만이 좌우로 몸을 흔들며 여자애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나는 한 마리 파랑새 되어/ 저 푸른 하늘로 날아가고파.

사랑한 것은 너의 그림자/ 지금은 사라진 사랑의 그림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하철이 끊길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자주 봅시다.” 선생이 현관에서 말했다.

“동북지방 특산품인 간장 과자예요. 따님 갖다 주세요.” 부인은 미리 준비해 놓은 듯, 종이 가방을 건네주었다. 남편은 머뭇거리다 가방 속에서 자신의 책을 꺼내었다.

“별로 필요하시지는 않겠지만.” 선생은 그 책을 받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선생님도 책 많이 내셨지요?” 내가 신발을 꿰면서 말했다

“아니.”

“서점에서 본 것 같은데…….”

아주 오래 전이긴 하지만 서점에서 선생의 책을 본 적이 있었다.

“대학 교재 같은 거나…….”

나는 잘 알지도 못하고 괜한 말을 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바보같이. 선생내외는 길까지 나왔다. 남편은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셨기 때문에 다소 휘청거렸다. 나는 조금 떨어져 걸었다.

그 동안 길가의 레스토랑들은 더 화려해지고 과감해진 것 같았다.

“우리도 저기서 한 잔 하고 갈까?” 남편이 호기있게 소리쳤다. 세상은 가끔씩 우리 편이 되기도 한다.

늦은 시간의 전철은 텅텅 비어 있었다. 내가 물었다.

“예전에 내 소원이 뭐였는지 알아?”

“미국 가서 사는 거?”

“그게 무슨”

“…….”

“박선생님 후처 되는 것.”

“지금이라도 가라구. 안 잡을 테니까.” 그가 내 몸을 휙 밀쳐냈다. 나는 킬킬거리며 그의 팔을 잡았다.

“흥, 아까 왜 학장인지 처장 같은 걸 했느냐고 물어보려다 말았지. 그런 건 공부 안하는 사람이 하는 거거든.” 갑자기 싹 변한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나는 그런 건 아무나 하는 줄 아냐고, 항변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남편은 가방과 웃옷을 흔들며 걸었다. 5층짜리 기숙사 불빛은 다 꺼져 있었다. 나도 약간의 취기 때문에 몸이 떨렸고 빨리 집안으로 들어가 드러눕고만 싶었다. 그는 짐을 팽개치고 엉뚱하게 건물 뒤편에서 자전거를 번쩍 들고 왔다.

“자전거 타야지.” 술을 마시면 그는 영화 속 울트라 슈퍼맨이 되었다. 모든 게 자신의 뜻대로 되고 즐거웠다. 그는 자전거에 올라타 보란 듯이 골목을 휙휙 돌았다. 좀 위태위태하다 싶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빠르게 턴을 하다가 그만 몸이 자전거 밖으로 튕겨져 나오고 자전거가 저만치 나동그라졌다. 그가 ‘어이쿠’ 하며 과장된 신음 소리를 내었다. 맞은 편 2층집 사람이 불을 켜고 내다 볼까봐 걱정되었다. 그는 여전히 킬킬거리면서 자전거를 세웠다.

“타보라구.”

“못 타, 나는 못 탄다니까.” 나는 고개를 흔들며 뒷걸음질을 쳤다.

“바보같이, 페달만 밟으면 동력이 생겨서 저절로 나간다니까.” 할 수 없어 나는 왼쪽 다리를 땅에 디딘 채 자전거 안장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리고 조심스레 오른발을 페달에 올려보았다.

그 순간 그가 뒤에서 내 등을 세게 밀었다. 그 힘 때문인지 자전거는 공사장 벽 근처의 플라타너스 나무 둥치까지 빠르게 밀려 내려갔다. 자전거가 저 홀로 굴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두 발로 땅바닥을 긁었다. 자전거 앞바퀴가 제멋대로 흔들렸다.

“브레이크 잡앗.” 남편이 등 뒤에서 소리쳤다.

다음 날부터 나는 매일, 자전거를 꺼내었다. 처음에는 무겁기만 하고 다루기 힘든 쇳덩어리 같더니 하루 이틀 끌고 다니다보니 힘들이지 않고도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자전거 손잡이는 내 손안에 쏙 들어왔고 안장도 적당한 높이였다. 인적이 없는 골목길에서 자전거에 올라타 보았다. 쓰러질 듯 쓰러질 듯하면서도 자전거는 어떻게든 앞으로 나갔다. 학생들이 빠져나간 밤, 대학 정문 앞 텅빈 시계탑 광장은 연습 장소로 안성맞춤이었다. 가끔 배낭을 멘 학생들이 답사라도 다녀온 듯 빙 둘러 서서 구호를 낮게 외치기도 했고 또 며칠째 광장 구석에서 대학 축제 때문인지 까만 교복을 입은 대학생들이 응원 동작을 몇 시간째 되풀이하는 일도 있긴 했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외곽을 빙빙 돌았다. 가로등만이 묵묵히 내려다볼 뿐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핸들을 꺾는 것이 다소 불안했지만 좌로도 돌고, 우로도 돌았다. 그러다 브레이크를 잡지 못해 나무 둥치의 울퉁불퉁한 곳에서는 넘어지기 일쑤였다. 어쩌다가는 자전거 밖으로 몸이 휙 튕겨나가기도 했다. 흘끗 보니 응원부 학생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선배에게 꾸중을 듣는 모양이었다. 이상하게도 전에는 몸에 조금만 상처가 나도 큰일 난 것처럼 엄살을 부려대곤 했는데 여기서는 무릎이 갈려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털고 일어났다. 단지 자전거 바구니가 찌그러져 그걸 펼 일이 걱정이었다.

남편은 서울에 갔다. 그는 나름대로 도쿄와 서울을 오갈 일이 생겼다. 국가 관련 연구단체에서 연구자를 모집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 문화재단에서 연락도 없어 그는 내심 초조해하던 차였다.

나는 선생에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했고, 사모님께 폐를 끼쳤다는 메일을 보냈다. 선생에게는 별달리 답장이 없었다. 서울서 또 손님들이 왔는지도 몰랐다. 아니면 내가 한 말에 불쾌함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우유나 계란, 생선, 과일을 핑계 삼아 나는 수시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바퀴가는 대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언덕에 오를 때는 페달을 세차게 밟았고 내리막에서는 브레이크 잡는 연습을 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나 싶더니 가로수마다 나뭇가지가 앙상하게 드러났다. 바퀴가 구를 때마다 길바닥에서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뜻밖에, 집에서 좀 떨어진 상점에서 기숙사의 중국 여자를 만났다. 흰 앞치마와 머릿수건 차림의 그녀는 과일 코너에서 토마토를 조심스레 비닐에 넣는 중이었다. 그녀는 수줍게 웃었다. 그곳에서 아르바이트 삼아 파트타임제로 일을 하는 모양이었다. 나도 여기서 일을 할 수 있을지 물을까 망설였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이 나라 말도 서툴다.

날이 쌀쌀해졌다. 찬바람이 불기 전에 아이들의 보온 도시락 통도 마련해 두어야 했다. 한국 거리에 일상용품을 싸게 파는 마트가 있다는 것을 들었다. 게다가 거기에는 한국 미용실도 있다고 했다. 어지간히 멀어도 이제 자전거를 타면 못 갈 곳이 없었다.

유리문 안쪽으로 지지미, 순대 등이 쌓여 있었고 먹음직스러운 떡볶이 국물이 졸아들고 있었다. 고구려식당, 경복궁 가든, 장터, 하나로마트, 신나라노래방, 직업소개소, 이 내과, 한일여행사 등 한글 간판들도 즐비했다. 마치 70, 80년대의 서울 변두리를 지나는 느낌이었다. 한국 미용실에서 머리도 잘랐다. 미용실에 뜻밖에 한국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다. 어설픈 오락프로였다. 알 만한 연예인인데도 그들이 매우 낯설게 여겨졌다. 그래서 목이 메어왔다.

그날 저녁 컴퓨터 앞에 앉아 안부삼아, 선생에게 한국 거리까지 갔다 온 이야기를 적어 보냈다. 밤늦게 수신 확인을 해 보았다. 확인은 되었는데도 여전히 답은 없었다. 대신 그 사이에 남편에게 메일이 하나 와 있었다.

“서울은 무척 날이 차갑소. 엊그제 소위 면접이라는 걸 보았소. 당신같이 바쁜 사람이 이런 데서 일을 할 수 있느냐고 소장이란 사람이 빈정거리더군. 모멸감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왔소…….”

다음날 하루 종일 비가 왔다. 밤에, 작은 아이는 갑자기 내일 학교 준비물로 가방을 만들 헝겊과 고무줄이 필요하다고 징징거렸다. 집에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하였다. 나는 생각다 못해 100엔숍에 가보기로 하였다. 자전거를 타지 않는 날은 하루도 없으므로 내 자전거는 언제나 주륜장 바깥쪽에 두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넣고 꺼내야 하기 때문이다. 비는 어느 새 그쳤고 길은 말라 있었다. 기숙사 옆 미용실은 불이 꺼져 있었다. 도시락집 주인은 흰 가운을 입은 채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 편의점 안에는 남자 몇몇이 거리를 향한 채 서서 만화책을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 인도 레스토랑 안, 요리 모자를 쓴 검은 피부의 아시아인이 거리를 물끄러미 내다보고 있었다.

강가의 나무들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가로등 때문에 몇 개 남지 않은 나뭇잎들이 붉게 빛났고 불어난 강물도 불빛으로 번들거렸다. 담 위로 고양이 한 마리가 빠르게 지나갔다. 강가에 있는 집들은 뒤편이었으므로 어둑어둑하였는데 베란다 쪽으로 빨래가 널려있었다. 어둠 속에 늘어진 옷가지들은 처량맞았다. 담 아래 붉은 동백이 고개를 떨구었다. 이상을 닮은 봉두난발의 남자도 보이지 않았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거처를 옮겼는지도 모른다. 바닥에 수북한 나뭇잎이 바퀴 안으로 휘감겨오다 떨어져 나가곤 했다. 바퀴가 구를 때마다 자전거 불이 잉잉잉 소리를 내었다. 늦은 귀갓길인 듯, 가방을 멘 남자가 어둠 속에서 재빨리 지나쳐갔다. 밤에 혼자 이 길을 걸으면 다소 무서운 생각이 들겠지만 자전거를 타고 있으니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다 해도 나는 쏜살같이 달려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창문으로 엷은 속옷을 입은 늙은 여자가 한 쪽 손을 허리에 얹은 채, 강쪽을 내다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또 다른 창문으로는 머리칼이 없는 남자가 책상에 앉아 무얼 쓰고 있었다.

문득 강의 끝은 어디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을 끼고 어둑어둑한 길을 달려 나갔다. 손잡이에 손이, 페달에는 발이 붙어 버린 듯 자전거와 나는 한 몸이 되었다. 손을 움직이지도, 발을 움직이지도 않은 것 같은데 저절로 굴러가는 것 같았다. 어느덧 나는 자전거가 되어 있었고 그리고 검은 강물이 되어 흘렀다. 얼마간을 달려가니 길은 포장도 잘 되지 않아 울퉁불퉁한데다 젖은 풀이 우거진 풀숲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전철역 안내 표지판과 큰 전자회사 로고의 빨간 불빛이 마주 보이는 곳에서 강은 드디어 끝나버렸다. 머리 위 복개 대로로 차들이 질주하고 있었다. 경찰차가 연달아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가까운 데서 무슨 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며칠 전처럼 아파트 베란다에서 누군가 자살극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 왔다. 집에 왔더니 바짓단이 젖어있었고 끈끈한 액체로 지저분했다. 그리고 그곳에 뭔가 붙어 있었다. 손톱만한 작은 달팽이였다. 아마 강가의 수풀에 있던 놈이 엉뚱하게 바짓단에 붙어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창을 열고 그것을 메마른 1층 화단으로 떨어뜨렸다. 놈이 간다가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신호등을 건너 다시 느릿느릿 횡단 보도를 지나 골목, 인쇄소 그리고 다리를 건넌다. 아마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빈 택시 한 대가 명멸하는 신호등 앞에 고요히 서 있었다. 창밖, 길 건너 대학 정문이 굳게 닫혀 있고 시계탑과 하늘 높이 솟은 빈나무들, 그리고 대학 설립자는 어둠에 묻혔다. 어느새 높이 올라간 공사장 철구조물도 굳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 별다른 일이 없는 하루가 느리게 지나고 있다. 나는 창을 닫았다. 아이들은 어느새 침대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나는 바지를 벗어 빨래통 속으로 집어던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