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후반 행복찾기 ‘45+45’ 프로젝트-은퇴이후의 사랑>性은 당당하게… SAT지수 높여라

10일 개봉된 와타나베 겐 주연의 일본 영화 ‘내일의 기억’은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던 중년의 남편이 어느날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무기력해지면서 어려움에 봉착하는 가족의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부인 에미코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남편을 포기하지 않고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남성팬들로부터 ‘전통적인 일본 여성상의 전형’이라며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일본의 상당수 부부는 영화와 딴판이다. 이혼하면 퇴직연금액의 절반까지 아내에게 떼줘야 하는 ‘노령후생연금분할제’가 4월부터 시행된 일본에선 요즘 황혼이혼 ‘대란’ 일보직전이다. 더구나 올해는 일본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團塊)세대’의 정년퇴직(60세)이 본격적으로 시작돼 ‘참았던’ 황혼이혼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에서 이혼의 75%는 여성들이 청구한다. 하지만 ‘황혼이혼’은 바다 건너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도 ‘황혼이혼’이 주류인가?

지난달 우리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06년 우리나라의 전체 이혼 건수는 줄었으나 50세 이상 고령층의 ‘황혼이혼’만 늘어났다. 특히 남자의 50~54세 7.3%, 55세이상 7.8%로 고령층으로 갈수록 이혼 증가율이 높았다. 지난해 서울가정법원이 협의이혼을 신청한 부부 3354명을 대상으로 벌인 상담 사례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결혼 후 ‘26년 이상’이 전체의 18%로 가장 비율이 높았다.

2006 한국종합사회조사(KGSS)에선 ‘이혼하고 싶어도 자녀가 다 클 때까지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남성이 59.4%로 여성(53.6%)보다 높았다. 좋게 보면 ‘남성이 더 가정을 지키려 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중년 이상의 여성들이 더 이상 ‘자신을 힘들게 하는’ 남편과 살기보다 이혼을 선택하려 한다는게 맞는다. 우리의 경우 이혼청구를 약 80%가 여성이 한다는 통계도 있다.

경희대 오윤자(생활과학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부부들은 가족주의적 가치관과 체면의식 등으로 살면서 문제가 있더라도 참고 살아왔다”며 “그러나 근래에는 자녀들이 일정연령이 지나 출가·독립해 부부만 남게 되면 그 때 비로소 자신의 삶의 질에 대해 돌이켜보고 황혼이혼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경우에서 보듯, 황혼이혼은 남편이 직장을 그만둘 무렵 이혼을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자료 등 경제적으로 안정을 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대입 이혼’이란 용어도 등장하고 있다.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이혼을 결정한다는 의미인데, 우선 자녀 양육권 문제에서 자유로워진 점이 이혼을 결정하는 사유 중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혼상담기관 등에 따르면, ‘대입이혼’의 경우 자라면서 아버지의 폭력과 외도 등을 지켜본 자녀들이 대학에 입학한 뒤 어머니에게 이혼을 권유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또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진데다 남성의 조기 퇴직·실직이 일반화되면서 남편의 위자료를 기대하느니 조금이라도 빨리 이혼을 하는게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성은 물론 특히 여성에게 있어 황혼이혼은 심각한 경제적 곤란을 안겨주기 때문에 사회적 관심이 절실한 실정이다.



◆늙기 전에 싸우는 연습을 하라!

최근 매스미디어에서는 황혼이혼이 마치 하나의 ‘유행’이며 중년 이후 여성이 쟁취해야 할 ‘해방’인 양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인기가 높은 TV드라마가 심한데, 그 근저에는 한국적 가족주의가 ‘타파’돼야 할 대상인 것처럼 치부해온 여러 문화적 흐름의 영향도 없지 않다.

오 교수는 “황혼이혼의 대부분은 결혼생활 중 불륜이나 폭력 등 남성의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렇다고 한국적인 가족주의 자체의 문제로 확대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남편이 건전하게 가족을 부양했다면, 설사 그 때문에 부인에게 소홀했다 해도 그것이 황혼이혼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우리사회에서 극히 적다”며 황혼이혼이 켤코 ‘유행’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어쨌든 이제 황혼이혼의 문제는 당사자들만의 문제로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적 부담이 됐다. 황혼이혼의 문제는 막상 당사자들이 변화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인생의 막바지 상황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오 교수는 “황혼이혼과 관련해 이혼 후 지원 프로그램과 함께 이혼으로 가기 전에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며 “젊은 시절부터 부부생활중 어려움을 당했을 때 참지 않고 감정을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는 훈련과 분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현재 지자체의 사회복지관, 노인복지관, 평생교육기관을 비롯해 사회단체 등이 연계해 장년기 부부갈등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들이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