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고려정벌도 계획했다”

13세기 말 여몽(麗蒙)연합군의 일본 정벌이 실패로 돌아간 직후 일본이 고려 정벌 계획을 세웠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금까지 학계에서 고려의 대 몽고 항쟁에 대한 연구는 상당수 진행됐으나 이 시기 고려와 일본의 관계를 심도 있게 고찰한 연구는 드물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주장은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남기학 한림대 교수는 지난 25일 경북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서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용덕)과 한일문화교류기금(이사장 이상우) 주최로 열린 ‘몽고의 고려·일본 침공과 한일 관계’ 국제학술회의에서 “일본은 몽고의 침입을 격퇴한 뒤 오히려 ‘이국(異國, 즉 고려) 정벌계획’을 세워 고려와 몽고를 긴장케 했다”고 밝혔다. 남 교수는 특히 “몽고의 일본 침공은 남송(南宋) 정벌을 위한 사전 정비작업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며 “일본에선 몽고 침공 이후 ‘신국사상(神國思想)’이 고양되고, ‘신공황후의 삼한(三韓) 정벌 신화’가 다시 제기되는 등 고려를 비하하는 태도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남 교수의 논지를 따라 몽고의 일본 침략에 따른 고려·일본 관계의 재정립을 파악한다.

◆ 1차 일본 원정 = 1274년 10월5일 고려의 합포(合浦, 지금의 마산)를 출발한 제1차 일본원정군은 대마도 등을 점령하고, 10월20일 규슈(九州)에 상륙했다. 일본은 이에 항전했지만 고전을 면치 못했다. 몽고인을 비롯, 여진인·한인(漢人)·고려인 등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원정군은 혼성부대이면서도 통일적인 지휘체계하에서 조직적 집단전법을 구사했다. 아울러 ‘철포(鐵砲)’ 같은 화약무기까지 동원, 중장비의 개인전으로 맞선 일본군을 패퇴시켰다.

기상악화가 겹쳐 원정군이 물러간 이후 일본 막부는 몽고의 재침에 대비, 연안경비를 한층 강화했다. 이른바 ‘이국경고번역(異國警固番役)’을 정비, 1275년 2월에는 춘하추동 각 3개월씩 교대로 경비하는 체제를 만들었다. 같은 해 9월 일본은 몽고의 사신을 참수하고 ‘이국 정벌계획’을 수립했다. 일본 막부는 몽고의 재침에 대비, 경비 체제를 정비·강화하다가 사신의 처형이라는 강경책에 뒤이어 ‘이국’을 정벌한다는 공세로 선회했던 것.

남 교수는 “여기서 말하는 이국은 침략의 장본인 몽고가 아니라 침략에 동원된 인접국 고려를 가리킨다”며 “이 계획은 1276년 3월쯤을 실행 시기로 잡고 있었다”고 밝혔다. 남 교수는 이어 “실제로 1276년 3월을 전후한 시기에 일본은 군 동원을 독촉하는 등 정벌을 준비했다”며 “단 이 시기의 이국 정벌은 고려에 대한 전면 침공이 아니라 국지적 침공 기도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계획은 실행상의 곤란함에 부딪혀 중지됐지만 막부에 의한 일본국내 무사의 통제 효과는 충분히 가져왔던 것으로 여겨진다고 남 교수는 밝혔다.

◆ 2차 일본 원정 = 1281년 윤(閏) 7월 초부터 약 한 달 남짓한 시기 2차 원정군은 태풍에 의해 괴멸적 피해를 입고 철수했다. 이에 막부는 또다시 ‘이국 정벌’을 계획했다. 이 계획은 첫 번째 계획에 비해 규모가 작은 점 등으로 미뤄 전승의 여세를 몰아 침략국에 보복을 가한다는 대의명분에 입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계획 역시 실행된 흔적은 없지만 막부에 의한 일본국내 통제의 강화를 기도한 점에서 첫 번째 기도와 기본적으로 일치하고 있다.

남 교수는 “몽고의 1, 2차 일본 침략 후에 각각 대두한 ‘이국 정벌계획’은 고려 침공을 전기로 삼아 국내 무사의 통제를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대몽고 방어 체제를 구축하려고 한 것”이라며 “고려와 일본 관계에서 보자면, 이 계획은 양국이 교전국으로서 쌍방의 침공에 항시 대비해야 하는 정면 대치상태에 돌입한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이어 “몽고의 일본 침략은 전례 없던 대규모 외침을 받은 일본의 대외의식, 특히 대 고려관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며 “일본 측에서 볼 때 고려는 몽고와 일체화한 ‘적국’으로 비쳤으며. ‘이국 정벌’은 바로 그러한 인식이 바탕에 깔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 1·2차 원정이 남긴 것 = 고려와 일본은 몽고의 유라시아대륙 지배와 동서통합이라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각각 그 체제로의 편입과 이탈이라는 상이한 길을 걷게 됐다. 몽고제국의 등장과 고려, 일본의 상이한 진로는 양국 간의 무력 충돌과 심각한 군사 대치를 가져왔다. 고려의 대일교섭 거점이었던 금주(金州, 지금의 김해)는 그 관할 내의 합포가 일본원정군의 발진기지가 됐으며, 고려와 긴밀한 교류지역이었던 일본 북부 규슈는 원정군과 일본군의 격전지가 되고 말았다.

이후 반세기 동안 양 지역은 상대국에 대해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는 방어기지로 변했고 교류는 단절됐다. 비교적 평온했던 양국 관계는 극도로 악화돼 예부터의 제한적인 통교조차 단절됐으며 더욱이 지리적 인접 요인도 작용해 일본과 대륙 사이보다 더욱 강한 적대적 긴장 관계가 형성, 지속됐다.

남 교수는 “그러나 원나라의 개방적인 무역정책과 일본의 대륙 문물에 대한 왕성한 의욕을 배경으로 일본은 13세기 말부터 원과의 교역에 나서고 있다”며 “일본은 몽고제국 지배하의 세계질서 속에서 일정한 고립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에의 적극적 참여라는 이중의 모습을 보였다”고 결론 내렸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