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충효당 주인의 걱정

TV 탤런트 류시원이 태어난 고향집 대문 옆 담에 당호(堂號)인 ‘담연재(澹然齋)’를 새겨 박은 돌에 나 있는 작은 주먹 하나가 겨우 드나들 만한 크기의 구멍이 이채롭다. 경북 안동 하회마을의 단체 탐방객 대다수는 그 앞에서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학예사나 문화해설사로부터 “근거가 확실하지는 않다”고 덧붙이는 이런 설명을 듣기도 한다. “조선시대에 과거를 보러 상경하다 노자가 떨어진 젊은 선비들이 손을 넣어 담 안쪽으로 매달아놓은 항아리의 엽전을 집어갈 수 있게 한 것이다. 당시 양반가의 넉넉했던 인심과 세심함을 확인시켜준다. 경기도 이천 지방에 있던 것을 옮겨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통과 현대를 접목해 고풍스러운면서도 세련미 있게 만든 우편함에 해당한다. 2005년에 79세의 나이로 타계한 조각가 김영중이 만들었다. 조선시대의 전통 한옥 양식인 담연재는 경복궁·창덕궁·광화문 등 적잖은 궁궐 건물을 복원한 도편수 신응수가 고택을 원형대로 재현한 것이다. 당호 역시 류시원의 부친이 생전에 한국의 마지막 선비로 일컬어진 한학자 임창순과 논의해 지었다. 우편함에 양반가의 인심을 끌어다붙이는 식 등은 관광객의 흥미를 더 끌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을 해설 당사자들도 부인하지 않는다.

역사 유적지나 전통문화 명소를 찾는 관광객 역시 경승지 탐방객과 마찬가지로 화려하거나 특이한 자연 경관이나 건물·시설 등의 외관, 유명 인사와 얽힌 일화 등에 큰 흥미를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담연재에 대해서도 그렇다. 전통 한옥의 양식이나 양반가의 고택을 재현한 장인들의 예술혼 등에 대한 소개보다 ‘1999년 4월11일 하회마을을 방문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73회 생일상을 받고 하회별신굿탈놀이 공연을 관람한 집’이라거나 ‘류시원의 생가’라는 설명에 더 귀기울이는 식이다.

흔히 ‘살아 있는 고건축 박물관’ 또는 ‘한국 선비문화의 상징’이라고 표현하는 하회마을의 충효당(忠孝堂) 주인이 하는 걱정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보물 제414호인 충효당은 조선 중기에 최고위직 문신이었던 서애(西厓) 류성룡 집안의 종택이다. 서애의 형인 겸암(謙菴) 류운룡 집안의 종택으로 보물 제306호인 양진당(養眞堂)과 함께 풍산 류씨 동성촌인 하회마을 600여년 역사의 가장 중심에 서왔다고 할 수 있다. 서애의 14대 종손으로 1972년부터 객지의 교직을 떠나 충효당을 지켜오고 있는, 올해 83세의 류영하 옹은 최근 선비문화의 관광 자원화를 추진 중인 경상북도 주관의 한 행사에서 이런 요지로 말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탐방객 대부분이 고택의 겉모습만 보고 가는 것이 안타깝고 걱정스럽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와 함께 임진왜란의 배경·과정 등은 물론 역사적 교훈까지 담은 ‘징비록’의 저자 서애를 비롯해 하회마을이 낳은 걸출한 선비들의 발자취와 문화적·역사적 향기 등을 제대로 느끼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러자면 현장 탐방에 앞서 우선 관련 역사에 대한 교육부터 할 필요가 있다. 충효당만 해도 외관을 둘러보는 일에 그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일이 백성 곧 국민의 기본이라는 당시 선비들의 인식을 담은 당호라는 사실 등과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수 없다는 점 또한 되새길 수 있어야 한다.”

서울에서 의학 공부를 하던 학창 시절에 항일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르기도 한 그는 효의 방식과 형태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게 마련이지만 충은 그럴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하회마을을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된 유형 문화재로만 여겨 찾게 할 것이 아니라 지식인의 자세나 국가관 등을 새로이 다지는 사회·역사 교육의 장으로도 삼게 해야 한다는 취지일 것이다.

그의 지적이 하회마을 탐방객에게만 해당할 리 없다. 국가에 충성하기보다 특정 정파나 소속 집단의 보스에 충성하고, 대한민국 미래를 오도하는 일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사적(私的) 이익에 집착해 이를 외면하는 일이 다반사인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김종호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