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중·일 샌드위치 공방전

  • 문화일보
  • 입력 2010-08-06 14:02
프린트
이신우 논설위원

일본 도쿄의 아키하바라는 일본의 꽃, 전자산업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상징적 거리다. 전세계의 관광객이 몰리는 이 거리에는 자기네들끼리 제품 및 가격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는 전자제품 양판점들이 즐비하다. 이들 가운데서도 양판점 ‘라옥스’ 본점은 매장 분위기부터 독특하다.

116명의 점원 중 60% 정도가 중국인이며 이밖에도 러시아·브라질 등 외국인이 다수를 이룬다. 정작 일본인 점원은 소수에 불과하다. 글로벌화한 점원 구성 덕분에 접대 가능 언어는 무려 23개에 이른다. 이같은 매장 운영 방식을 도입한 이후 경영이 크게 호전됐고, 축소경영 일변도의 몇년간의 흐름도 완전히 역전됐다고 한다.

매장의 성공 변신은 라옥스가 중국 난징(南京) 소재의 수닝(小寧)전기집단에 팔리고부터. 수닝전기가 일본 산업계에 ‘융합 경영’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수닝뿐이 아니다. 중국 기업들의 연쇄적인 일본 기업 인수·합병(M&A) 붐이 일면서 일본쪽에서도 과거와 달리 적극적인 러브 콜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기업과 일본기업이 이렇듯 연합전선을 펼친다면? 그야 당연히 한국기업 쪽이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또다시 한국경제의 샌드위치론이 제기되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다.

샌드위치론을 처음 제기한 경영인은 사실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었다. 지난 2007년초 회장 취임 20주년을 맞이한 이 회장은 “앞으로 20년이 걱정”이라며 “일본은 앞서가고 중국은 쫓아오는 사이에서 (한국이) 샌드위치로 끼어 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참 고생을 많이 할 위치에 있는 게 우리 한반도”라고 걱정했다. 한국제품은 품질경쟁력에서는 일본에 떨어지고 가격경쟁력에서는 중국에 밀리고 있어 국제시장에서 좀처럼 설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 2년 후 조환익 KOTRA 사장은 ‘역(逆)샌드위치론’을 통해 한국경제가 처한 위치가 오히려 국제무대에서 강점이 되고 있다며 전혀 새로운 주장을 폈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 소비자들이 적정 가격에 적정 품질을 갖춘 한국 제품으로 눈을 돌리면서 오히려 수출기회를 늘릴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됐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품질에서는 중국보다 낫고 가격에서는 일본제품보다 싸다는 게 새로운 강점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놀라운 역발상이고, 장군에 멍군식이었다.

어허라? 그런데 그런 주장이 겨우 1년을 못버틸 조짐이다. 최근 들어 중저가 제품의 대량 생산과 이를 통한 세계 시장 정복에 성공한 중국기업들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위해 기술력과 브랜드 가치를 갖추고 있는 일본 기업에 대한 적극적 M&A에 나서면서 한·중·일 경영삼국지의 균형 관계에 일대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양적 성장 방식의 한계에 봉착하면서 일본기업이 보유한 첨단 기술력과 마케팅·생산관리 능력의 확보에 눈을 돌리고 있으며, 일본은 일본대로 신흥시장의 중저가 상품 수요가 급증하면서 중국의 저비용 생산기술이 절실해진 동시에 중국 내수시장 진출을 위한 동등한 협력자로 여기는 인식 변화가 일고 있다.

한마디로 중국과 일본의 강점끼리 융합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그동안 중국과 일본을 각개격파하면서 상대적 이점을 누리던 한국쪽으로서는 일거에 수세로 몰릴 수밖에 없다. 즉 가격과 기술 양측면에서 동시에 약점을 노출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역샌드위치에서 또다시 샌드위치 신세로 복귀하는 셈이다.

하긴 한국기업이 자신의 강점을 앞세워 치고 나가는 마당에 중·일 기업들이 가만히 당하리라고 생각했다면 착각이다. 마찬가지로 이번엔 한국이 재반격을 가할 차례다. 한국기업의 강점을 재구축하기 위한 새 연합전선을 모색하든가 아니면 이왕 이렇게 된 바에 본격적으로 기술이면 기술, 가격이면 가격 양 측면에서 한판승을 다투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해야 할 때다.

주요뉴스
기사댓글
AD
count
AD
AD
AD
AD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