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광장>나를 울리는 너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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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리/서양화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최초의 가요는 곽순옥이 부른 라디오 드라마 ‘남과 북’의 주제가 ‘누가 그 사람을 모르시나요’이다. 아마 다섯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전기 요금을 아끼느라 캄캄하게 불을 끄고 들었던 ‘남과 북’은 내 기억 속 최초의 드라마다.

이후에 만들어진 영화 ‘남과 북’을 텔레비전에서 처음 보았을 때, 기억 속의 노래 때문에 감회가 더 새로웠다. 가요는 늘 우리를 울린다. 어느 나라에나 있는 그 나라의 가요는 그 시대 그 정서를 공유한 사람들을 울린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인 나는 가끔 가수가 부러울 때가 있다. 그 아무도 그림을 보면서 울지는 않는다. 살아온 날들 동안 우리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 그 시대 그 노래들을 들으면 눈물이 날 것 같다.

올 초에 선풍을 일으켰던 프로그램 ‘세시봉’은 7080세대들에게 행복한 우수에 젖는 귀한 시간을 선물했다. 정말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고, 세월은 가도 노래는 남는다. 나이든 우리 시대 가수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거짓말처럼 사라진 지나간 세월을 떠올린다. 하지만 공평한 건 누구나 늙는다는 것이고, 언젠가는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다. 목소리처럼 변하지 않는 것은 없기에 옛날 노래를 부르는 옛날 가수를 텔레비전에서 다시 만나는 일은 지나간 시간을 오늘에 되살리는 일이며, 그래서 언제나 행복한 일이다.

우리 세대가 좋아하는 ‘콘서트 7080’이 있다면, 더 나이든 세대에는 ‘가요무대’가 있을 것이다. 나는 ‘콘서트 7080’도 ‘가요무대’도 빠뜨리지 않고 보는 가요 팬이다. 어쩌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황금심이 부르는 ‘애수의 소야곡’을 들으며 눈물짓기도 한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마는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차라리 잊으리라 맹세하건만 못생긴 미련인가 생각하는 밤∼ 가슴에 손을 얹고 눈을 감으면 애타는 숨결마저 싸늘하구나.’ 황금심의 ‘알뜰한 당신’, 남인수의 ‘청춘고백’ 등 그 옛날의 잊지 못할 노래들을 들으면 요즘 인기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의 원조가수들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반갑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그 시대에 반짝반짝 빛났던 잊히고 사라진 옛 가수들을 오늘에 되새기는 일이 아쉽다는 생각도 절로 든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나가수’들이 있는 것이다. 어디 노래뿐이랴? 어쨌든 ‘나는 가수다’라는 제목을 보고 무릎을 쳤다. 노래방 문화가 팽배한 대한민국에서 국민 대다수가 ‘나는 가수다’라고 외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요즈음 ‘나는 가수다’를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면서 관람석에 앉아 노래를 들으며 울먹이는 청중의 얼굴을 볼 때 새삼 노래의 힘을 깨닫는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가수들끼리 목이 터지도록 경쟁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누가 누구보다 더 잘 부르겠는가? 선택된 노래가 자신의 목소리와 딱 맞아떨어졌을 때 그는 운 좋게 1위가 될 것이다. 아니 ‘나는 가수다’는 이 시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쇼다.

그림 경매에서 비슷비슷한 수준인 그림들 중 어느 화가의 그림이 더 비싸게 낙찰되는지를 지켜보는 거나 ‘나는 가수다’에서 어느 가수가 1위고 누가 탈락하는지를 손에 땀을 쥐고 바라보는 거나 화가인 내게는 비슷한 현상으로 보인다. JK 김동욱의 열성 팬인 우리 어머니는 제일 잘 부르는 가수가 왜 자진 탈락하느냐고 아쉬워하신다. 그림도 그렇듯 노래를 좋아하는 취향도 사람마다 신기할 정도로 다르다. 그 다름을 인정하는 일이 나는 즐겁다. 자진 탈락하는 가수는 어쩌면 자신의 노래를 평가하는 사람은 청중도 평론가도 아니고 자신의 노래는 곧 자신과의 싸움임을 아는 사람이 아닐는지….

이 땅의 모든 예술가들이여 힘내라. 남이 알아주든 말든 자신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자만이 마지막에 웃는 자가 아니겠는가? 아니 이기고 지는 것도 없고 이 한 생 노래하고 춤추다 가노라, 그래서 아무런 한도 없으니 이 아니 좋은가? 그리고 당신이 죽은 뒤에도 그 노래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으리니 그 또한 좋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