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즘 낳은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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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12-09-2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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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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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험한 책 / 크리스토퍼 B 크레브스 지음, 이시은 옮김 / 민음인

2000여 년 전. 로마 제국을 숨막히는 공포정국으로 몰고갔던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암살되고 시민들이 비로소 ‘말할 자유’를 찾았을 때, 로마의 집정관이자 역사가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가 자신의 두 번째 책을 펴낸다. 고작 30쪽도 안 되는 분량의 책이었다.

필사로 전해지다가 수세기 동안 사라졌던 이 책은 1425년 로마 장서 수집가에 의해 독일 수도원에서 발견됐다. 남아 있던 단 한 권의 필사본에 의지해 게르마니아는 1300년의 시간을 건너와 다시 읽히게 된 것이다.

이 책이 바로 ‘역사상 가장 위험한 책’ 중의 한 권으로 꼽히는 ‘게르마니아’였다. 게르만 민족의 영토와 각 부족의 특징을 다룬 수천 년 전의 소책자 한 권. 필시 로마의 게르만 지역 정벌을 위해 쓰였을 이 책이 무슨 연유로 마치 위험한 폭발물 취급을 받게 됐을까. 그건 바로 이 책이 500여 년에 걸쳐 재해석되고 오독(誤讀)됐으며 정치적인 목적으로 인용되고 때로는 조작됐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은 이 책에 강인하고 자유롭고 도덕적으로 그려진 자신들의 조상에 열광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꾸준히 게르만 민족의 혈통적 우수성이나 국수주의와 연결했다.

급기야 게르마니아는 20세기 나치 독일에 이르러 독일 혈통의 순수성과 우수성을 증언하고 나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수단이 됐다. 책은 상징적으로 읽힌 것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부도덕하게 인용됐다. 책의 내용을 근거로 독일인과 유대인 사이의 결혼을 금지하는 ‘독일인 혈통 및 명예수호법’이 제정됐고, 책 속에 등장하는 경구는 다른 인종을 증오하도록 교육하는 교재와 역사서에 인용됐다.

이 책의 저자는 타키투스가 게르마니아를 써내는 로마시대의 장면부터 차곡차곡 역사와 사건을 복원한다. 저자는 이 과정을 통해 타키투스가 실제로 게르만의 영토에는 한번도 발을 디딘 적도 없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상상력과 뜬소문 따위로 게르마니아를 썼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또 로마 시대에 쓰여진 책이 어떻게 유통됐으며, 필사본으로 떠돌던 책이 수도원으로 어떻게 흘러들었는지, 또 그 책이 먼지 덮인 서고에서 어떻게 발견됐는지 등의 이야기들을 마치 추리소설처럼,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게 풀어 나간다. 그리고 이 책이 어떻게 민족주의자와 인류학자, 음악가 등에 의해 오독됐고, 그게 어떤 비극으로 이어졌는지를 상세하게 짚어 낸다.

역사에 대한, 혹은 텍스트에 대한 오독과 왜곡이 잘못된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급기야 현실에도 영향을 미쳐 예상치 못한 참극을 낳게 되는 과정을 추적한 저자의 결론은 “‘가장 위험한 책’은 타키투스가 쓴 것이 아니라 그의 독자들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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