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호수 ‘찰랑’, 발밑 낙엽 ‘바스락’…한걸음 한걸음 차오르는 가을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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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12-10-1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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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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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내륙의 한려수도’라는 대청호를 가장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자리. 그게 여기 충북 청원의 구룡산 삿갓봉 정상이다. 삿갓봉 정상에는 나무로 깎은 용 한 마리가 머리를 내밀고 있는데, 그 뒤로 만수위를 이룬 대청호의 물줄기가 펼쳐진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청남대의 산책로 ‘노태우 대통령길’ 초입의 음악분수 주변의 메타세쿼이아 산책로. 아직 푸른빛이 청청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대청댐 아래 금강이 합류하는 수변에 놓인 ‘로하스해피로드’ 주변에는 이즈음 만수위의 호수에 무릎이 잠긴 수몰나무들이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로하스해피로드는 대전 땅에 있지만 청원에서 자그마한 다리를 건너가면 닿을 수 있다.


만수(滿水). 가을 대청호에 물이 가득 찼습니다. 찰랑거리는 호반에 하루하루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이면 차가워진 가을 호수의 수면 위로 어김없이 물안개가 피어올랐습니다.

물안개 속에서 물에 잠긴 버드나무들이 머리를 헝클고 서 있고, 이따금 생각난 듯 고요한 수면 위로 물오리떼가 날아올랐습니다. 일찍 깨어나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고 물가로 들어가 이런 풍경 앞에 섰습니다. 호수의 수면에는 작은 물살 하나 그려지지 않아 마치 정물과도 같았고, 대기는 촉촉했습니다. 문득 어디선가 첼로의 선율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거기서 눈치챘습니다. 대청호는 지금 한 해 중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건너가고 있는 중이라는 걸 말입니다.



# 가을 대청호를 가장 아름답게 굽어보는 자리

충북 청원이 아름다운 것은 대청호가 있기 때문이고, 대청호가 올가을에 유독 아름다운 것은 물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가을의 호수가 만수위를 이루는 건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저수지며 댐은 늦여름이면 집중 호우에 대비하느라 물을 뺀다. 그래서 해마다 이즈음이면 저수지며 댐은 물이 빠져 만수위를 이뤘던 자리를 마치 화물선의 흘수선처럼 거칠게 드러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지금 대청호는 호안(湖岸)에 줄지어 서 있는 나무의 밑동까지 물이 가득 차 찰랑거리고 있다. 아마도 늦여름에 연거푸 내습해 많은 비를 뿌리고 간 두 번의 태풍 때문이리라.

가을빛으로 물들어 출렁이는 대청호를 찾아 나선 길. 대청호를 내려다보는 가장 아름다운 전망대가 그곳에 있다고 했다. 충북 청원의 구룡산(九龍山·373m). 아홉 마리 용이 모여 있는 산세라고 아홉(九) 용(龍)의 이름을 가진 산이다. 구룡산은 대청호에 딱 붙어서 솟아 있어 최고의 전망을 자랑한다. 산은 절집 현암사가 있는 호반의 벼랑 쪽으로도, 반대편의 진장골 장승공원 쪽으로도 오를 수 있다. 원점으로 회귀하는 산행이라면 현암사 쪽에서 오르는 편이 더 낫겠다.


# 현암사를 타고 넘어 구룡산 삿갓봉까지

현암사 아래 호안도로의 주차장에서 구룡산 삿갓봉 정상까지는 1시간 남짓이면 족하다. 굳이 등산이랄 것도 없어, 운동화 차림으로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순한 산길이다. 먼저 제법 가파르게 놓인 철제계단을 올라 빗질 자국 정갈한 마당을 가진 현암사부터 딛는다. 가파른 절벽에 위태롭게 앉은 절집 현암사는 전망이 압권이다. 현암사 마당에서는 대통령 별장이었던 청남대가 대청호 건너편에 정면으로 보인다. 현암사가 장쾌한 경관을 지니고 있다는 건 한때 절집에 정부 기관원들이 상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사연인즉 이렇다. 청남대가 대통령 별장으로 쓰이던 시절, 정부 부처에서 절집 철거 압력이 끊이질 않았단다. 그러나 스님들은 ‘좋은 자리로 이전해주겠다’는 제의를 완강히 거부했다. 그러자 대통령이 청남대에 내려올 무렵이면 기관원과 형사 8명이 현암사에 올라와 아예 상주하면서 신도들을 감시하기도 했단다.

현암사까지만 해도 만족할 만한 풍경이지만 내처 삿갓봉까지 오르면 그야말로 ‘일망무제’의 호수 풍경을 볼 수 있다. 삿갓봉 위에 서면 대청호와 호수를 둘러싼 산자락들이 모두 발아래다. 해발 400m에도 못 미치는 높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시야가 장쾌하다. 대청호에 왜 ‘내륙의 다도해’란 별명이 붙었는지 금세 이해가 된다. 물이 그득한 대청호를 구불구불 들고나는 호반이 마치 서남해의 리아스식 해안처럼 펼쳐진다. 이제 막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하는 지금의 풍경도 이럴진대, 울긋불긋 단풍이 호수까지 내려온다면….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저릿저릿해진다.

삿갓봉 정상에는 통나무로 잘 깎은 흑룡이 한 마리 있다. 꼬리부분을 돌로 돋워놓은 땅에 묻고 있어 마치 산 정상의 땅에서 솟아 승천하려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산정(山頂)의 용이 대청호의 물길을 허리 아랫부분으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수많은 물의 꼬리를 가진 용 한 마리. 그 용이 화창한 가을 햇살 속에서 서늘한 바람이 지나는 구룡산에 있다.


# 물길을 따라 수몰나무를 끼고 걷다

구룡산의 현암사 아래쪽에는 대청댐이 있다. 댐 아래로 흘러내린 물은 청원 땅과 대전 땅을 가르며 금강에 합류한다. 물 이쪽이 청원이고 건너편이 대전이다. 지도 위의 행정구역은 선명하게 단절돼 있지만, 실제의 경계는 희미하다. 대청댐 아래 물길을 가로질러 놓은 짧은 다리 하나만 건너면 바로 대전이니 말이다.

예까지 와서 ‘전국 최고의 수변산책로’로 꼽히는 대전의 ‘로하스 해피로드’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영문으로 붙여진 길 이름이 못내 못마땅하긴 하지만, 대청공원에서 호반가든까지 이어지는 1.5㎞ 남짓의 수변 덱은 떨어진 낙엽들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려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길이다. 덱이 지나가는 물가에는 무릎까지 물에 잠긴 수몰 버드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수몰나무의 실루엣이 수면에 반영돼 데칼코마니처럼 찍히는 모습은 ‘황홀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이런 풍경 위로 순백의 왜가리와 백로들이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오르고 오리떼 일가족은 물 위에 동심원을 그리면서 내려앉더니 점잖게 미끄러진다.

이 길을 걷는 것이 어찌나 낭만적인지 아무리 무뚝뚝한 사람일지라도, 그 길에 데려다 놓는다면 금세 가을의 색감에 젖어 마음이 촉촉해질 게 틀림없겠다 싶다. 수변길을 걷다 보면 곳곳에 나무로 세운 정자와 벤치가 있고, 안쪽에는 너른 잔디밭도 펼쳐져 있다. 강이 바라다보이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혹은 잔디밭 위에 돗자리를 펴고 둥글게 모여 앉아서 가을 소풍을 즐긴다면 이 짧은 가을을 보내는 데는 더할 나위없겠다.


# 대통령의 별장을 산책하는 맛

소개가 좀 뒤로 미뤄지긴 했지만 사실 대청호를 끼고 있는 청원의 최고의 명소로는 당연히 대통령 전용별장이었던 청남대가 첫손가락에 꼽힌다.

남쪽의 청와대라 해서 청남대라 이름 붙은 별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이던 1983년 ‘영춘재’란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연 뒤 역대 대통령의 전용휴양지로 사용됐던 곳이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 지자체로 소유권이 반환되기 전까지 다섯 명의 대통령이 도합 366박 471일을 이곳에 머물렀다.

일반 개방 직후 청남대에는 욕조와 수도꼭지, 침대가 다 금으로 돼 있는지와 지하실에 수중터널이 있다는 얼토당토않은 소문을 확인하려는 호기심 어린 관광객들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청남대 본관 건물은 넓고 방이 많기는 하지만, 소박하다 싶은 정도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침대시트만 바꿨기 때문에 침대, 커튼, 벽지 등은 지어졌을 당시 그대로다.

한때 북새통을 이루던 청남대를 찾는 관광객들이 근래 들어 급감한 것은 어쩌면 ‘진시황의 아방궁’ 따위를 상상하고 왔다가 실망하는 이들이 적잖았기 때문이었을 터다. 게다가 과거 관리자들이 관람객들에게 자못 위압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도 발길을 돌리게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청남대는 여전히 앉은 자리만큼은 최고다. 대통령이 낚시를 하는 경우에 대비해 매일 밑밥을 주고 낚시를 하며 그날그날의 조황을 보고하는 ‘낚시병(兵)’이 있었다든가, 대통령과 가족들을 위한 볼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뿔피리를 불면 모여들도록 오리를 길들였다든가 하는 이야기들도 흥미롭고 전직 대통령의 손때 묻은 물건들에도 눈길이 가긴 하지만, 대청호의 물굽이 깊은 곳에 들어선 청남대에서는 이런 것보다는 잘 가꿔진 숲과 아름다운 경관을 더 오래 보아야 한다. 대청호가 가을빛으로 물들어가는 이즈음이라면 더 그렇다.

청남대에서 가장 경관이 빼어난 곳으로 꼽히는 곳이 바로 본관 뒤편의 오각정과 골프장을 끼고 있는 호안의 그늘집이다. 청남대를 갔다면 이 두 곳은 꼭 들러봐야 한다. 가을 단풍과 어우러지는 호반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 걷기도 놓칠 수 없다.

청남대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이곳 별장을 이용했던 다섯 명의 대통령 이름을 딴 산책로가 있다. 그중 가장 추천할 만한 코스가 본관에서 나와 양어장 음악분수를 지나서 대청호를 끼고 대통령역사문화관까지 이어지는 ‘노태우 대통령길’이다. 2㎞ 남짓으로 편도 40분 정도 소요된다. 가을로 물들어가는 호수를 바라보며 즐기는 고즈넉한 산책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는 가보면 안다.


# 작은 용굴 앞에서 옛 코끼리의 위용을 떠올리다

청남대로 드는 길에 ‘작은 용굴’이 있다. 자그마한 매점을 끼고 있어 그저 그런 사설 관광지로 착각해 그냥 지나치기 쉽다. 기묘하게 생긴 동굴은 폭이 2.6m, 높이가 3.5m에 달하고 깊이도 60m로 제법 깊다. 작은 용굴에는 네 마리의 용이 승천한 굴이란 전설이 전해지는데, 그보다 선사시대 주민들의 기거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의미 깊은 곳이다. 청원에는 유독 구석기시대 유적이 많다. 그러나 무관심에 따른 훼손과 방치로 수만 년 전의 구석기시대 유적은 죄다 훼손되고 말았다. 작은 용굴도 채석업자의 발파작업으로 일부가 무너졌지만, 그래도 이나마 남아 있는 것이 다행일 따름이다.

충북 청원군이 제 땅 자랑을 하며 늘 앞세우는 게 ‘살기 좋은 곳’이란 얘기다. ‘살기 좋다’는 걸 어찌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청원군이 근거로 내세우는 것이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다’는 것이다. 학창시절 역사책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을 소개할 때 빼놓지 않고 거론하는 것 3가지. 두루봉 동굴과 흥수아이 그리고 소로리 볍씨다. 그게 모두 청원 땅에서 발견된 것들이다.

먼저 두루봉 동굴. 청원군 문의면 노현리의 마근이마을. 여기에 석회암 채석광산이 있었다. 광산인부들이 발파작업을 하다가 짐승의 뼈가 나왔다. 현존하는 어떤 짐승과도 다른 뼈였다. 제보에 따라 학계의 발굴이 시작됐다. 그게 1976년의 일이었다. 여기서 20만 년 전 구석기시대의 유물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1983년에는 부근의 동굴에서 4만 년 전 현생인류인 ‘흥수아이’의 화석이 발굴되기도 했다. ‘흥수’란 동굴에서 사람 뼈가 나온 것을 제보한 한흥석회 김흥수 전무의 이름에서 따서 붙인 것이고, ‘아이’란 발견된 뼈로 추정해보건대 5∼6세쯤으로 추정돼 붙여진 것이다.

두루봉 동굴에서 발견된 것들 중 가장 놀랍다고 생각됐던 것은 바로 옛 코끼리와 쌍코뿔이, 하이에나, 큰 원숭이의 뼈였다. 한반도에 공룡이 살았다는 이야기는 뭐 그러려니 하지만, 우리 땅에 코끼리와 하이에나가 살고 있었다는 건 대부분 금시초문이리라. 수십만 년 전 이곳에서 코끼리와 코뿔소의 조상들이 쿵쿵 지축을 울리며 뛰어다니고, 한밤중에 하이에나가 인광을 반짝이며 어슬렁거렸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소중한 유물들이 발굴됐음에도 사유지라는 이유로 두루봉 일대에서는 무분별한 채석작업이 계속됐다. 유적지 보전에 별로 관심이 없던 시절이었으니 관청의 제지도 받지 않았다. 두루봉 유적지는 결국 동굴이 있었던 자리를 도무지 짐작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폐허가 돼버렸다. 잘 보존됐더라면 내로라할 명소가 될 법한 곳이었음에도 까짓 돌 몇조각 캐낼 욕심에 다 없애버리고 만 것이다. 작은 용굴 앞 안내판의 말미에는 ‘이미 사라져버린 청원 두루봉 동굴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이곳을 보존하자’는 내용이 다짐처럼 씌어 있다.


# 후추처럼 매운 물을 맛보고 화가의 정원을 거닐다

청원에 어디 이것뿐일까. 세종이 안질에 걸려 117일 동안 머물며 치료했다던 초정약수가 청원 땅에 있다. 후추나무 초(椒)에 우물 정(井)을 쓰니 후추처럼 매운 물이라는 뜻이겠다. 말 그대로 초정약수는 탄산이 섞여 알싸한 매운맛이 난다. 같은 탄산약수지만 강원 일대의 약수 등에 비하면 철분 함류량이 적은 탓인지 철 비린내는 훨씬 덜해 마시기에 편했다.

세종은 한글 창제 이듬해에 초정리 약수터에 행궁을 짓고 약수로 눈을 치료하다가 한양의 궁궐로 돌아갔다. 그해 가을 신하들은 다시 치료를 위해 가자고 했으나 가을가뭄이 심해 허락하지 않았다. 연말이 돼서 다시 신하들이 강권하자 그때 세종의 대답이 이랬다. “내가 가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효험이 없기 때문이지 민폐가 있다고 해서가 아니다. 내가 먹고 입는 것은 모두 백성에게서 나온 것인데 폐가 없다고 할 수 없고, 내가 그 폐를 알면서 부득불 먹고 입는 것인데 이 일에서만 어찌 내가 민폐를 헤아려 가지 않겠는가.” 세종은 초정약수에 다시 가지 않으려는 이유를 ‘치료에 효험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절대군주시대에 ‘내가 먹고 입는 것이 백성에게서 나오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품성을 짐작하게 한다. 초정에는 탄산약수 목욕탕이 있다. 차가운 약수탕에 들어가면 온몸이 따끔거리며 몸에 작은 기포가 맺힌다.

이밖에도 청원의 미원면 일대에는 달천천을 따라 명승이 펼쳐지는 ‘옥화 9경’이 있다. 물길이 바뀌면서 풍광은 흐려졌을 것이지만, 1경 청석굴과 3경 천경대, 4경 옥화대는 그윽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고 운보 김기창 화백이 1976년 아내와 사별하고 내려와 말년을 보낸 ‘운보의 집’도 빼놓지 말아야 할 명소. 화가의 눈썰미로 짓고 가꾼 한옥과 정자, 연못 등의 정취가 뛰어나고, 조형미 넘치는 거대한 수석과 소나무 분재도 볼 만하다. 고택 뒤편의 기념관에서는 김 화백과 아내 우향 박래현 화백의 그림도 감상할 수 있다.

청원 = 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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