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선행학습은 法으로 규제할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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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한국교원대 교수·교육행정학

교육과학기술부는 15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인 ‘선행학습금지법(法)’ 추진과 이를 위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선행학습심의위원회’(가칭)를 설치, 운영하는 방안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행학습금지법의 취지는 학원이 학교 진도보다 앞당겨 가르치기 때문에 사교육이 조장되고 있어 이를 법으로 막겠다는 것이다. 선행학습금지법에는 학교교육 과정을 벗어나는 출제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학교장과 교사까지 처벌하겠다는 구상까지 담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교육비 지출은 국민경제와 가계에 큰 부담을 주고 있어 사교육비에 대한 국민의 우려는 매우 크다.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민적 공감대와 열망은 과외금지 조치, 학원 심야교습 시간제한 등과 같은 다양한 사교육 규제 조치들로 현실화돼 왔다. 2월 25일 출범할 차기 정부 또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대로 사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선행학습금지법 마련이라는 형태로 가시화하고 있으나 다음과 같은 우려가 있다.

첫째, 호기심과 학습능력이 우수한 학생의 학습열을 선행학습 금지라는 이유로 제한하는 것은 일종의 개인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 앎에 대한 추구는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이며 개인의 자유 의지에 속한다. 따라서 법과 규제를 통해 선행학습을 막겠다는 생각은 다소 과장해서 말하면 ‘국민정서법’을 통해 헌법에 있는 개인의 자유권을 제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둘째, 공교육 정상화의 해법은 규제와 처벌보다는 공교육 여건의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공교육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학생들의 능력 차이를 무시한 채 다양한 수준의 학생이 한 학급에 모여 공부하는 것과 같은 현재의 평등 또한 이미 불평등이다. 즉, 선행학습에 대한 규제보다는 학급당 학생 수의 적정화, 교과교실제 운영을 통한 수준별 수업의 내실화 등과 같은 노력을 통해 공교육의 질적 제고를 위한 노력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셋째, 선행학습금지법의 시행은 학교 현장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선행학습금지법(안)에는 학교에서 선행학습과 관련된 내용의 시험 출제를 금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문제는 선행학습의 기준과 범위를 어떻게 정할지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즉, 학교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이 잘 하겠지만, 수업 시간의 학습 내용과 시험 친 내용이 교과 내용의 심화인지 심화를 넘어선 선행학습인지의 구별이 쉽지는 않을 뿐만 아니라, 시험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 오는 학생들 또한 늘어날 우려가 있다.

넷째, 선행학습금지법(안)은 학파라치 제도, 사교육 기관의 교습시간 총량제 등과 같이 규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규제는 또 다른 규제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인적·물적 자원과 또 다른 비용 문제를 유발한다. 규제를 통한 문제 해결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피상적인 대처 방식으로 장기적인 해결책이 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과 규제는 현장의 교육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고, 교육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교육’ 자체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문제는 사교육이 대학입시와 맞물려 또 다른 많은 파생적인 문제를 양산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사교육 문제의 해결은 비록 그 과정이 더디더라도 공교육 정상화라는 해법을 통해 풀어나가야 한다. 아울러 우리는 이 과정에서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자기 변명(辯明)의 구실을 만들기 위한 성급한 행동’보다 ‘공교육 제자리 찾기를 위한 합리적인 방안’ 마련을 위해 보다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신중하게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