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설특집-설 연휴 읽어볼 만한 책>인생의 사막 지날때 ‘우물같은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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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 정호승 지음 / 비채

설을 쇠고 나면 누구든 한 살씩 나이를 먹는다. ‘나이듦’을 맞이하는 자세는 저마다 다르다. 젊은이들에게는 희망으로, 때로는 그보다 더 큰 불안으로 다가오는 것이겠고, 중년 이상에게는 삶에 대한 성찰이 더 깊어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건 삶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누구엔가 기대서 묻고 싶을 때도 있고, 도움의 손을 내밀고 싶을 때도 있다. 저 스스로 답을 찾아가야 하는 것임을 다 알고 있지만, 한 마디쯤의 짧은 위로로 새삼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그걸 왜 마다할까.

이 책은 아예 제목부터 그런 용기가 되어주겠다고 자처하는 책이다. 시인 정호승의 산문을 모은 이 책은 두툼하다. 본문만 480쪽이 넘는다. 모두 76편의 글은 금언이나 격언에 가까운 말들로 그득하다. ‘엎질러진 물 때문에 울 필요는 없다’거나 ‘걱정은 돌 하나도 옮길 수 없다’는 식의 도식화된 도덕교과서의 경구 같은 제목들은, 의외로 저자의 생생한 체험과 소박한 기도처럼 풀어가는 글솜씨에 힘입어 친근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책 속의 이야기 한 토막. 저자가 일본의 1000년이 훨씬 넘은 절집 건물 앞의 수백 년 된 소나무를 보고 감탄하자 누군가 ‘절집은 1000년 된 소나무로 지은 것’이라고 알려 준다. 자연적 생명으로서의 수령과 목재로 사용된 뒤부터의 생명 연수가 같다는 것이다. 이어 고통스러웠던 20대 초반 군복무 시절의 아득했던 제대 이야기로 옮아가고 저자는 이런 경험을 빌려 젊은이들에게 ‘뒤틀린 나무 같은 존재라 할지라도 쓰일 데가 있다’는 따스한 위안의 말을 건넨다.

이야기 끝에 더러 곁들여지는 저자의 시를 읽다 보면, 한 편의 시가 탄생하기까지 지나갔던 사유의 깊이나 폭이 들여다보인다. 시인은 책머리에서 “고단한 인생의 사막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는 것이 ‘말씀의 우물’이 있기 때문”이라며, “이 우물에서 인생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지혜와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해 왔다”고 썼다. 그러나 늘 문제는 한마디의 말보다 그 말을 통해 어떻게 실천해 가느냐 하는 것들. 이를 모를 리 없는 저자는 “삶의 용기는 거창하게 시작되지 않고 소박한 데 있다”고 강조한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