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왜 ‘無’ 아닌 ‘有’ 인가… 과학자·철학자·소설가에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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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 짐 홀트 지음, 우진화 옮김 / 21세기북스

흥미진진한 책이다. 저자는 ‘왜 세상은 무(無)가 아니라 유(有)인가(Why is there something rather than nothing at all)?’라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이 문장은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의 저서 ‘형이상학 입문’ 첫 장에 나오는 질문이다. 1970년대 초, 고등학생이었던 저자는 이 문장을 접하고선 강한 충격을 받았다. 그 뒤로 저자의 머릿속엔 ‘존재에 대한 의문’이 자리잡았다. 이 책의 여정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왜 세상은 무가 아니라 유인가’라는 의문에 대해 세 가지 입장이 있다. 첫째는 ‘낙관주의자들’로, 그들은 이 세상의 존재에 대한 이유가 있어야 하며, 언젠가는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비관주의자들’은 세상의 존재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결코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마지막으로 ‘거부주의자들’은 세상의 존재에 대한 이유가 있을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 의문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세 부류 중 어떤 입장에 있든 나름대로 존재의 문제에 대해 답변을 내놓는 철학(신학)자나 과학자, 작가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터뷰했다. 그들의 육성과 함께 자신의 견해를 곁들이고 인터뷰 당시의 분위기도 생생하게 전달한다.

따라서 책은 진지하면서도 어떤 땐 코믹하거나 패러독스가 번득인다. 예컨대 신의 존재를 믿는 영국의 종교철학자 리처드 스윈번과 대화한 뒤 저자는 ‘만족감에 휩싸여’ 거리를 정처없이 걷는다. 하지만 저자는 이에 대해 “그 만족감은 스윈번과 헤어진 후에 옥스퍼드 맥줏집에서 들이켰던 시라즈 포도주와 더 관련 있을 것”이라며 시치미를 뚝 뗀다.

저자의 첫 대화 상대는 현존하는 최고의 과학철학자 중 한 명인 아돌프 그륀바움 피츠버그대 교수. 그는 “의식의 다양성과 인간의 정신이 제시하는 여러 종류의 문제들에 매력을 느끼지만 의식의 존재 자체가 어떤 수수께끼가 될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 저자가 이 ‘위대한 거부파’를 만나면서 얻은 사실은 ‘빅뱅은 존재의 수수께끼를 분명하게 풀어주지 못한다는 것’. 우주는 기존에 존재하던 무의 상태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방법으로 ‘존재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연 신학’의 창시자인 리처드 스윈번은 그륀바움과 달리 유신론적 방식을 취한다. 세상의 존재를 설명해줄 수 있는 가장 단순한 가설은 바로 모든 것의 배후에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스윈번은 신의 존재를 받아들임으로써 세상의 존재 문제를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그도 신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신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해 명확하게 답할 수 없는 것이다. ‘가장 자연스러운(most natural)’ 상태는 절대적인 무의 상태, 즉 우주도 없고 신도 없는 세상이 아닌가라고 저자는 반문한다.

이어 저자가 만난 사람은 양자역학의 실질적인 작동 원리를 고안한 과학사상가 데이비드 도이치. 그는 양자이론이 빅뱅이 왜 일어났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존재 문제에 대해서는 답해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존재의 진짜 개념은 분석이 필요한 복잡한 내용이고, 어떤 단계에서 답할 수 있더라도 여전히 다음 단계가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밖에도 수리물리학자 로저 펜로즈, 우주학자 존 레슬리, 철학자 데릭 파핏 등 저자는 다양한 이들을 찾아다닌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작품 속에 존재의 문제를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드러내는 소설가 존 업다이크(1932∼2009)를 만나기 위해 미국 매사추세츠 해안가로 향한다. 업다이크는 ‘왜 신은 우주를 창조했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나는 과학적 상상력을 존경합니다. 솔직히 납득은 못하겠더군요. 그런 공간은 신만 존재할 뿐 아무것도 없는 공간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신이 그런 지루함이라는 궁지에 몰려 고통스러워하다가 우주를 창조했다고요? 그런 말은 ‘실체’를 풍자시의 한 구절처럼 보이게 하는군요.”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