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효율성 무시 ‘과잉 과세’… 정상경영 위협

특수목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A사는 사업부문별로 2개의 자회사를 두고 있다. 생산공정의 효율성과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다. 자회사와 거래물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최근 국세청으로부터 오는 7월 말까지 거래비중이 30%를 넘는 부분에서 발생한 영업이익(세후)에 대해 증여세를 산정해 신고하라는 통지서를 받았다.

이 회사의 김모 사장은 15일 “내부거래에 대한 증여세 문제가 대기업에 국한된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정말 황당하고 난감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다른 회사에 부탁해도 만들어주지 않는 소재나 시급성을 요하는 자재, 보안이 필수적인 부품을 자회사에서 조달하고 있는데 여기에 세금을 물린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성토했다.

이처럼 경영의 효율성 차원에서 생산 공정을 자회사로 분리했다가 증여세를 물게 된 중소·중견기업의 원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순익 규모가 작은 중소·중견기업들로선 증여세액도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중소기업인은 “1970년대에는 생산기술의 전문화와 계열화를 촉진한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부도덕한 기업행위로 매도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울며겨자먹기로 ‘세금·규제 회피용’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상호출자제한을 받는 대기업집단(자산 5조 원 이상)들은 계열사간 내부거래에 대한 증여세 부과뿐만 아니라, 지난 6월 개정된 ‘공정거래법’의 제재도 피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내부거래가 많았던 계열사 간 시스템통합(SI), 물류, 건설분야의 합병이 주로 이뤄지고 있다.

동부그룹 계열의 동부CNI, 동양그룹 계열 동양네트웍스, CJ그룹 계열 CJ시스템즈 등이 모두 모회사와 합병을 추진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태광그룹은 내부거래 비중이 80%를 넘었던 정보기술(IT) 서비스 회사인 티시스와 동림관광개발, 티알엠 등 3개 계열사를 지난 5월 합병했다. SK그룹은 중고차판매업체 엔카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매드스마트를 흡수 합병해 계열사에서 제외시켰다. KT도 소프트웨어자문 및 개발업을 하는 레블릭스를 청산해 계열사에서 제외했다. 지난 6월에만 대기업집단의 계열사 가운데 9개사가 제외됐다. 당초 내부거래에 대한 증여세 과세는 편법상속이 문제가 된 일부 대기업이 타깃이었다. 하지만 대·중소기업을 막론하고 생산공정 합리화를 위해 수직계열화가 이뤄진 산업 현실을 도외시한 채 모든 수혜기업과 그 기업의 지분 3% 이상을 보유한 대주주·친척에게 무차별적으로 부과되면서 대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국세청이 지난 4일 증여세 신고를 통보한 대상은 6200개 수혜기업과 1만여 명의 주주들이다. 정상경영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제도의 부작용이 대기업을 넘어 중소·중견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오승훈 기자 oshu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