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노예’된 靑春의 슬픈 울부짖음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뮤지컬 ‘시간의 사용’은 극단 사다리움직임연구소 특유의 무대와 동작을 가미, 독특하면서도 흥미로운 공연을 보여준다. 코르코르디움 제공

‘이 순간 이 장소를 단단히 기억하라. 미래는 남김없이 이곳을 지나쳐 과거로 몸을 던지나니.’

인생과 시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뮤지컬이 무대에 올랐다. 지난 17일부터 11월 13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센터K 세모극장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시간의 사용’이다. 지난 2006년 연극으로 공연돼 호평을 받았던 작품으로, 이번에 소극장 뮤지컬로 새롭게 단장했다.

노래와 안무를 가미한 만큼 훨씬 다이내믹하고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초연 때와 마찬가지로 작품을 쓴 이수연 씨가 연출을 맡았고, 드라마 ‘겨울연가’와 영화 ‘올드보이’ ‘건축학개론’의 작곡가 이지수 씨가 새롭게 합류했다.

뮤지컬 ‘시간의 사용’은 37세의 등장인물 네 명을 통해 ‘어떻게 시간의 노예가 되어 절망하고, 스스로를 매몰시켜가는지를’ 보여준다.

나름대로 빛나는 청춘을 보냈던 주인공들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자신의 재능을 잃어가고, 급기야 사회에서 잊혀가는 존재가 돼 버린다. 37세의 나이에 이들이 부닥친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고갈된 재능을 안타까워하며 화려했던 옛 시절을 돌아보지만, 그야말로 ‘아, 옛날이여…’일 따름이다.

주인공 4명은 각각 작가와 팝아티스트, 여행가, 노동운동가로 젊은 한때를 꽃피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은 점점 자신이 설 자리를 잃게 되고, 결국 극심한 초조감과 괴로움에 빠지고 만다. 별다른 기반을 마련하지도 못한 채 30대 중반을 넘긴 스스로에 대해 자기비하의 감정까지 갖게 된다. 성공한 다른 이들을 보며 너무나 작아져버린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해 술을 마시며 비굴해지고 초조해하는 것이다.

이들 4명은 자신이 20대에 추구했던 꿈이 결국 망상과 착각이었다고 여기기에 이른다. 더 이상 꿈에 집착하지 않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에 따라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아 자신의 시간을 사용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차츰 자신의 특이성, 즉 개성을 잃어간다.

극 중에선 이들 외에도 ‘죽지 않는’ 내레이터가 등장한다. 사막에서 뱀에 물려 죽었다 다시 살아난 내레이터는 영원한 생을 살고 있다. 불멸성을 얻어 오랜 시간을 살아온 내레이터는 자신의 시각으로 주인공 4명의 삶을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보여준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내레이터는 ‘시간의 노예가 되어 자신을 버리고 사는 삶이 얼마나 절망적인지를’ 일깨워준다.

무엇보다, 진중한 주제의 연극을 보다 역동적인 뮤지컬로 탈바꿈시킨 제작진의 노력이 돋보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쉬운 점도 한두 가지 눈에 띈다. 우선 출연배우들의 연기력은 흠잡을 데 없으나 가창력 부분에선 썩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보다 호소력 있는 노래를 들려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한 가지, 주인공 네 명의 젊은 시절과 ‘시간의 노예’가 된 상태를 연결하는 대목이 매끄럽지 않다.

화려한 청춘을 구가하다 몰락한 처지에 이르는 데까지는 설득력이 있으나, 네 명이 모두 하얀 색 유니폼을 입고 일률적인 동작을 반복하는 장면은 좀 급작스러운 느낌을 준다. 결국 ‘시간의 노예’가 됐다는 것인데, 그들이 현실적인 선택을 하게 된 과정이 제대로 그려져 있지 않다.

그럼에도 뮤지컬 ‘시간의 사용’은 젊은 청춘과 중·장년들에게 다시 한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이중현·심재선·장성원·임진주·이호철 등 출연. 02-889-3561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