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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키워드로 읽는 책 게재 일자 : 2014년 04월 25일(金)
걷는다, 고로 사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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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 프레데리크 그로 지음, 이재형 옮김 /책세상

육상경기 ‘경보’는 언제봐도 좀 어색하다. 많이 접하지도 않지만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어색함은 ‘걷기의 속성을 완전히 무시한 걷기’라는 이율배반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걷기에 달리기의 룰과 규칙을 적용한 이율배반.

걷기는 그런 것일 수 없다. 같은 결승점을 향해 모두가 뛰는 승부나 에너지를 탈진시키는 전력질주가 아니다. 특별할 것 없는 우리들이야 이른 아침부터 직장과 교문을 향해 뛰고, 대입 레이스와 승진경쟁에 시달리고, 산더미 같은 문제에 둘러싸여 마음마저 달린다. 정신없이 지내다 꽃이 피는가 싶어 고개를 들면 벌써 꽃은 지고 있다.

하지만 걷기는 어떤가. 걷기는 특별한 기술도, 장비도, 돈도 필요 없다. 그저 몸과 공간 그리고 시간만 있으면 된다. 일단 걷기 시작하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대화를 나누고, 주변을 둘러보며 우리가 이런 풍경 속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속도전에서 벗어나 자유를 즐기는 것. 그래서 걷기는 아름답다.

미셸 푸코 연구자인 철학자 프레데리크 그로 파리12대학 교수는 이 같은 걷기의 아름다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걷는다. 고로 철학한다.”

스스로 걸으며 사유한다는 그는 책에서 걷기가 우리 몸과 마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를 경험과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섬세하게 고찰한다. 걷기라는 인간적 행위에 대한 철학적 사색으로 걷기의 인문학, 걷기의 감각학, 걷기의 감정학이라 할 만하다.

저자는 걷기란 “하루 혹은 여러 날에 걸친 일상과 일의 속박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멈춤의 자유”이며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걷는 인간의 몸은 태곳적에 시작된 생명의 흐름에 연결되며, 걷다보면 안과 밖이 뒤섞이며 풍경 속에 사는 동시에 그 풍경을 천천히 소유하는 순간을 맞는다고도 한다. 그래서 걷기는 우리의 공간 인식에 변화를 가져온다고 저자는 말한다.

걷기가 얼마나 철학적인가라는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저자는 걷기에서 얻은 통찰력, 감수성과 영감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사상과 작품 세계를 만든 철학자와 작가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만성적 두통 속에서도 알프스의 질스마리아를 걸으며 ‘차라투스트라’와 ‘영원회귀’를 착상한 니체, 프랑스 샤를빌과 파리, 마르세유와 아프리카 사막 등지를 쉴 새 없이 오가며 ‘바람구두를 신은 인간’으로 불렸던 시인 랭보, 걸어야만 진정으로 생각하고 구상할 수 있다고 믿었던 장 자크 루소, 안전한 집을 벗어나 길 위에서 무한한 자유를 누리려 했던 비트 제너레이션의 작가 케루악, 스나이더와 긴즈버그. 자연 문학가이자 실천적 지식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 그리고 바깥으로 떠돌며 날것의 사유를 폈던 고대 그리스 견유학파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렇다고 걷기가 항상 한적한 산책이나 영감을 주는 사책의 길만은 아니다. 역사 속에서 체계화되고, 목표와 과정, 시간이 정해진 걷기도 있다. 바로 순례이다. 그리고 육체적 고통을 동반하는 고행, 탐험, 뚜렷한 목적을 가진 정치 행진, 가두 시위도 있다. 반대쪽에는 달콤한 경험이나 이성을 만나기 위한 파리 튈르리 공원에서의 걷기도 있다.

걷는다는 행위는 이처럼 복합적인 의미와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걷기는 걷기 하면 떠오르는 자유로움, 충족감, 신선함, 자극, 깨달음뿐 아니라 때로는 고통, 고독, 우울 등 갖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저자는 그렇기에 걷기야말로 사유의 근육을 키워주는 철학이라고 말한다.

“천재지변이 일어나 모든 게 파괴되고 문명도 사라져버리면 인류의 폐허 위에서 내가 할 일이라고는 걷는 것밖에 없을지 모른다”는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걸어라. 삶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말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을 잊어버려라. 그러면 얼마 안 있어 자기가 걷는 것을 보게 되고 자기 자신의 몇 m 뒤에 서서 자신을 뒤따라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차가운 달빛 아래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내딛기만 하면 된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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