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딱후딱 이데올로기’가 우리사회의 병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식인 / 박호성 지음/ 글항아리

“지식인으로서 오늘과 같은 중대 고비에서 지적 삶의 궤적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없을 수 있겠는가. 내면적인 자성의 촉구, 외부적인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 보겠다는 생각에서 책을 냈다.”

계급문제와 민족문제에 천착하며 학술단체협의회, 역사문제연구소, 한국정치연구회 대표 등으로 활동해온 박호성(정치외교학) 서강대 교수는 정년퇴임을 앞두고 책을 내게 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우리 시대와 지식인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지식인의 ‘지향’과 ‘지양’에 대해서 깊게 성찰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요구라는 것이다.

그는 사회학자의 소명을 ‘길거리 청소’에 비유했다. 투박한 작업복을 입고, 사회에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국가적 오물을 처리하는 방안을 탐구하는 것이 그들의 책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식인의 행보는 궁전이나 왕관이 있는 쪽보다는 오히려 단두대가 있는 곳을 향하는 것이 순리에 부합한다고 했다.

‘나는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지금껏 과연 어떻게 살아왔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는 책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갖가지 문제와 근본적인 원인을 지적한다. 해방 이후 일관되게 우리사회를 강제해온 ‘후딱후딱 이데올로기’. 박 교수가 지목한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이다. 빨리빨리, 대충대충, 결국 아무렇게나의 정신인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의 지적 풍토는 겉은 당당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맹수의 겉과 새우의 속’이라며 이와 함께 형식주의, 소집단 애국주의, 사익 절대주의, 정치색뿐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까지 연결하는 우리 사회의 색깔론을 비판한다.

오랫동안 강단에 서 온 그는 요점과 급소만을 중시하는 교육철학, 특권 계급에 대해 주장을 펼치기만 해도 정치교수로 치부되는 대학의 현실, 인문학의 위기에 이어 우리 사회가 영혼 없는 기계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도 전한다.

이에 저자는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정신을 한마디로 거인주의라고 규정했다. 개인주의가 자유주의의 철학적 토대이지만, 우리사회에서 ‘자유주의가 표방하는 개인’은 힘 있는 거인으로, 오직 거인만이 자유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대 지식인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이상으로 연대, 자연살이, 공동체 민주주의 등을 제시한 그는 대학생활을 막 시작한 신입생과 졸업생에게 당부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낸다.

신입생에게는 학문의 장에 새롭게 들어오면서 지식보다는 지혜를 갖추기를, 졸업생에게는 도전에 한계를 두지 말고, 한계에 도전하는 삶을 살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21세기 시민사회의 구호로, 참여, 복지, 통일을 제시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