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내 인기 2~3년밖에 가지 않을 것”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바티칸행 기내 기자회견에서 4박5일간 한국 방문 소회를 솔직하게 밝혔다. 교황은 한국 국민을 ‘고난 속에서도 위엄을 잃지 않은 민족’으로 평가했고, 통일의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한국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전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을 여러 차례 만나 위로하는 등 고통받는 약자들에게 다가가 포옹하고 위로해줌으로써 많은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과 관련해서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가톨릭뉴스서비스, 라스탐파 등에 따르면 교황은 18일 바티칸행 대한항공 전세기 내에서 수행기자단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앞서 지난 14일 한국행 기내에서 기자회견을 마치며, 기자단을 ‘사자굴’에 유머러스하게 비유하면서 “로마로 갈 때 ‘사자굴’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 약 1시간 동안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교황은 직접 마이크를 잡고 한국 방문 소감부터 중국과의 관계 개선, 이라크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에 대한 미국의 폭격,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갈등, 전 세계적인 인기 신드롬 등 다양한 질문들에 대해 특유의 솔직함과 유머 감각으로 대답했다.

이날 기자회견의 첫 질문은 역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과의 만남에 대한 소감이었다. 교황은 “정치적 의도를 운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엄청난 재난으로 자식과 형제자매를 잃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느낌이 우선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위로의 말이 치료가 될 수 없으며 죽은 자에게 새 생명을 줄 수도 없다는 것을 안다”며 “그러나 인간적으로 가까이 다가가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고통받는 이들에게는) 힘과 연대감을 준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자신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추기경이었던 때 발생했던 대형 참사를 예로 들면서 “당시에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면서 “고통과 슬픔의 순간에 다가서면 정말 많이 돕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희생자 유가족으로부터 받은 노란색 리본 배지를 방한 기간 내내 달고 다닌 데 대해선 “배지를 받아 가슴에 단 후 반나절쯤 지났을 때 누군가 내게 중립을 지켜야 하니 떼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인간적 고통 앞에서는 중립적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의 만남을 언급하면서는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한국민들이 잃지 않은 ‘위엄’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교황은 염수정 추기경으로부터 받은 휴전선 철조망 면류관을 바티칸으로 가지고 간다면서 “두 개의 한국은 같은 말을 사용하는 형제이니 희망이 있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대해 특히 강한 의지와 관심을 나타냈다. “한국으로 향할 때 중국 영공을 통과하면서 아름답고 고귀하며, 지혜로운 중국 국민들을 위해 기도했다”는 것. 교황은 “마테오 리치 덕에 예수회가 중국 역사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었다”며 “내일 당장이라도 중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라크 등 분쟁지역 방문에도 큰 관심을 나타내면서, “부당한 압제자를 ‘막는 것(stop)’은 옳은 일”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미국의 이라크 폭격을 지지한다는 것이냐”란 날카로운 질문이 나오자, 교황은 “분명하게 질문해줘 고맙다”고 운을 뗀 뒤 “부정의한 침략자의 행동을 중단시키는 것은 정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렇지만 어떤 한 국가가 홀로 부정의한 침략자를 제어해야 한다고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의 합의로 만들어진 유엔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이 같은 언급은 미국이 이라크 수니파 무장조직 IS에 대한 단독 군사행동을 단행한 데 대해 우회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 것으로 해석된다.

6월 교황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도자를 바티칸으로 초대해 평화기도를 가졌지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침공을 단행한 것에 대해선 “(평화기도는) 절대 실패가 아니며 문은 아직 열려 있다”며 “지금은 폭탄 연기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일 뿐 분명 문은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교황의 일상생활에 대한 질문도 쏟아졌다.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교황은 “감사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어차피 2∼3년 정도밖에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 “나 자신을 대단한 사람(somebody)이나 되는 듯 과대평가하지 않으면서, 내가 저지른 죄와 실수를 반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겸손한 자세를 나타냈다.

지난해 3월 교황 즉위 이후 바티칸 생활에 대해선 “처음엔 죄수 같은 느낌이 들었고 밖에 나가고 싶었다”면서 “우스운 이야기 한 가지만 하면 요즘은 엘리베이터를 탈 때 수행원 없이 혼자 타는 등 좀 더 자유롭게 지내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밝혀 기자단의 폭소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78세 고령에도 엄청난 스케줄을 소화하는 것과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일 좀 줄이라고들 말하는데 1975년 이후로는 휴가여행을 떠난 적이 없다”고 공개했다. “그렇지만 숙소에서 독서와 음악감상을 하고 잠도 좀 더 자면서 휴식을 취하는 편”이라며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고 느낄 땐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처럼 (생존 시 퇴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교황은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남북 통일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스페인어로 “희망을 잃지 않겠다”고 말했다면서, 박 대통령의 스페인어 표현이 ‘완벽했다(perfect)’고 평했다.

오애리 선임기자 aer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