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모든 존칭 버리고 ‘브라더’라 부르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청빈과 겸손의 상징인 중세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인(聖人) 프란치스코(1181∼1226)에서 교황명을 따왔다. 선출 즉시 정해 공표하는 교황명은 직무 수행과 관련한 교황의 기본방침과 비전을 담고 있다. 프란치스코 성인(왼쪽 사진)과 프란치스코 교황(오른쪽). 문화일보 자료사진

익명의 독일어권 司祭가 프란치스코 聖人 입 빌려 ‘교회 개혁’ 담은 책 펴내

“그대가 교황명을 선택했을 때, 그때가 나는 가장 기뻤습니다. 나의 겸허한 삶을 기억하여 프란치스코란 이름을 선택한 교황이 처음으로 나왔으니까요. 교황명을 정하는 일은 어떤 임의적 선택이 아닙니다. 그대와 나의 생각이 일치하고, 또 신앙의 기초가 똑같다는 사실이 무척 기쁩니다.”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1181∼1226)가 살아있었다면 자신의 이름을 교황명으로 택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정말 이런 말을 했을까.

신간 ‘프란치스코가 프란치스코에게’(분도출판사)는 가상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보내는 14통의 편지를 담고 있다. 실제 저자는 익명의 독일어권 사제다. 그가 과거에도 가상의 바오로가 되어 베네딕토16세 교황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의 책을 낸 적이 있다는 점 외에 저자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없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가톨릭교회 안에서 일반 사제가 감히 성인 프란치스코에 ‘빙의’해서, 그것도 교황에게 조언의 편지를 쓰는 마당에 자신의 신상까지 드러내긴 어려웠을 터다.

하지만 편지는 이런 익명성 덕분에 ‘앞뒤 재지 않고’ 과감하다. 저자는 비록 허구이긴 하지만 과거 성인 프란치스코의 생각과 활동을 토대로 오늘날 세속화된 교회의 모습을 엄중히 꾸짖고 교황이, 그리고 교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전한 복음과 현대 그리스도인의 삶 사이에 놓인 모순도 낱낱이 드러낸다.

가상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초장(첫 편지)부터 교황에게 제안한다. “사랑하는 프란치스코 형제여, 우리 터놓고 말해 봅시다. 이 모든 존칭이 그대에게 정말로 쓸모가 있습니까? 전부 다 너무 거창하고 화려한 데다가 권력욕에 사로잡힌 자들이나 쓰는 그런 것들 아닙니까? (중략) 지난 수세기 동안 로마의 주교에게 붙여진 모든 존칭을 다 폐기해버리면 어떻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 ‘베드로의 후계자’, ‘바티칸시국의 국가원수’ 등 교황에게 붙여진 이름들을 공식적으로 없애고 ‘프란치스코 형제’라는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사제와 신자들에게 청하자는 것이다. 그는 “교회 안에서 다른 이들보다 떠받드는 스승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권력과 지배가 아닌 섬김, 이것이 예수님의 정신”이라고 설명한다. 저자의 말투가 다소 거칠지만, 13세기 당시 교회 개혁을 촉구하며 수도회에 상하 관계의 구분을 없애려 했던 프란치스코 성인이 했을 법도 한 말이다.

또 저자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입을 빌려 교황에게 교회의 일치가 필요할 때라고 일갈한다. 그는 “주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신데, 정작 그리스도인인 그대들이 서로 갈라져 있다는 것, 그대들이 여러 교파로 찢어져 있다는 것은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라며 “‘가톨릭’이란 말은 교파 간에 경계를 긋고 다른 교파는 배제한다는 뜻이 아니고, 일치와 다양성이 공존하는 곳에서만 실현된다”고 말한다. 나아가 종교 간의 일치도 요구하며 “그 목표가 하늘나라든, 하느님의 나라든, 낙원이든, 해탈이든, 열반이든 그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하느님을 믿지는 않지만 책임감 있는 삶을 위해, 그리고 다른 이들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꾸준히 성심껏 노력하는 이들과의 대화도 꼭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가상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교회의 과도한 재산 문제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비판을 날린다. 그는 “우리가 믿음을 진지하게 여기느냐 아니냐는 연대와 나눔으로 드러나는 법”이라며 “교회는 많은 재산을 쌓아놓았고, 국가에게 지원금 등을 받으면서 바람직하지 못한 의존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교황에게 고한다. “사랑하는 프란치스코 형제여, 그대가 로마에서 직무 초기에 해야 할 과제들 가운데 하나가 이것입니다. 소유와 자본에 대한 교회의 의존을 축소하십시오. 지난날 내가 과감히 결단을 내려 소유와 종속에서 벗어났듯이 말입니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