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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리즈 (3권) / 김우창, 유종호, 최장집, 이정우 외 지음 / 민음사

나는 누구인가 / 강신주 외 지음 / 21세기 북스

강연의 시대, 정확하게 대중 강연의 시대다.

석학·저자 강연부터 개인 경험을 나누려는 일반인의 강연까지 말 그대로 ‘붐’이다. 강연이 대학과 학자들의 이너서클을 넘어나간 것은 한두 층위로 묶일 수 없는 변화와 이유들이 결합한 결과다. 자기계발의 필요와 삶에 대한 성찰이 촉발한 공부 열기, 전문가의 1, 2시간 강연으로 몇백 페이지의 책을 읽는 것 같은 효과를 얻으려는 지식 획득의 편의성, 학자들의 소통 욕구와 문화운동 차원의 시도들, 여기에 인터넷 확산, 공공 인프라와 공공 예산 등 여러 요인들이 시너지를 일으켜, 오늘 하루도 도서관, 대형서점, 학교, 방송과 인터넷 등 곳곳에서 대중 강연이 ‘진행중’이다. 강연자와 청중에 따라 그 수준은 달라지지만 기본적으로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인데다, 대중의 반응에 다시 반응해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강연은 근본적으로 대중적이다. 이 같은 강연이 다시 책으로 묶여 나왔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유종호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등이 이끄는 대형문화과학 프로젝트 ‘문화의 안과 밖’과 매회 2000명 이상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플라톤 아카데미의 대중강연 ‘나는 누구인가’가 그것이다.

‘문화의 안과 밖’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과제에 가려진 우리의 사회 문화적 위상을 검토하는 강연 프로그램으로 지난 1월에 시작해 매주 토요일 주 1회 진행중이다. 오는 2015년 1월까지 50회 강의가 이뤄져 8권의 책으로 나올 예정인데, 이번에 ‘풍요한 빈곤의 시대-공적 영역의 위기’ ‘인간적 사회의 기초-공적 영역의 구성’ ‘예술과 삶에 대한 물음-문화예술과 현실’ 등 3권이 먼저 출간됐다. 다양한 주제를 다뤘지만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압축성장’으로 인한 외적 발전과 정신세계 간의 괴리다. 경제발전으로 개인 삶을 구성하는 사회 경제적 조건, 문화적 외양은 비약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내면의 정신세계는 오히려 소외됐다는 지적이다. 최장집 교수의 표현대로라면 ‘문화의 외양은 풍요롭고, 정신세계는 빈곤하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 ‘풍요한 빈곤의 시대’는 삶의 조건으로서의 공적 영역을 점검하고 이를 논의할 수 있는 소통과 대화의 조건을 살펴본 여섯 편, ‘인간적 사회의 기초’에는 과학, 교육, 예술, 정치, 공공윤리, 언론 관련 학자들이 이들 공적 공간이 어떤 조건으로 구성돼야 하는지를 검토하고 인간적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길을 모색한 여섯 편이 묶였다. ‘예술과 삶에 대한 물음’은 예술과 현실의 관계에 집중한 7편이 수록됐다. 대중 강연이지만 ‘학문적 엄밀성’을 내건 프로젝트답게 일반적인 대중 강연보다는 상당히 학술적이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대표 지식인들이 사회의 구체적 현안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가감없이 드러낸다는 점이 날카롭고도 흥미롭다. 예를 들어 유종호 회장은 한국 정치의 최대 문제로 꼽히는 좌우 혹은 보수-진보 간 이념 갈등의 원천으로 세대 갈등을 들었다. 그는 세대 간 갈등은 사회적 관점으로 볼 때 부정적 결과를 낳았다며 386세대를 포함해 젊은 세대들이 객관적 현실 인식과 판단력의 균형감각이 부족해 큰일과 작은일의 경중을 구분하지 못함으로써 건강한 에너지를 낭비했다고 지적한다. 최장집 교수는 학자·지식인의 현실 정치 참여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학자의 정치 참여가 가져온 효과는 대체로 부정적이며, 학자는 정치 참여보다는 학문 작업에 매진하는 것이 사회에 기여하는 길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와 함께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북유럽형 사민주의와 유럽 복지국가를 제시하는 등 우리 시대의 현안들이 총망라돼있다.

‘나는 누구인가’는 플라톤 아카데미가 지난 2013년 가을에 진행한 동명의 인문강좌 강연을 정리한 것이다. 철학자 강신주, 슬라보예 지젝, 고전연구가 고미숙 씨 등 7명의 지성인이 자기 삶을 어떻게 꾸려가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전해준다. 대중 강연답게 각 분야 고수인 학자들이 쉬운 언어와 깊은 통찰로 그 지점을 명확하게 짚어낸다는 점이 뛰어난 미덕이다. 강신주는 자본주의와 부자를 비판하지만 실제로는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속물성을 돌직구로 지적해 우리를 움찔하게 한다. 고미숙은 ‘스마트’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라고, ‘덜어내는 삶’으로 순환과 생명의 가치를 보라고 이야기한다. 슬라보예 지젝은 사회가 성장한 만큼 인간은 소외된다는 문제 의식을 통해 한국 사회를 분석하며 개인의 작은 변화가 올바른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역설한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