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삶을 바꾼다>아픈 청춘·지친 중년, 인문학으로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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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과 그의 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 일명 ‘세종사랑방’(사진). 2013년 7월부터 시작된 사랑방은 마지막 수요일에 모인다는 뜻으로 ‘막수회’라고도 한다. 20대 대학생부터 70대 퇴직 교수까지 연령과 직업군은 다양하지만, ‘세종’이라는 공통분모가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다.

이 모임은 박현모 한국중앙연구원(이하 한중연) 책임연구원이 지도하며, 주축은 40∼50대 남성 직장인이다. 보통 20∼30명씩 모여서 한글, 천문학 등 다방면의 ‘세종 전문가’에게 강연을 듣고, 관련서적을 읽고 서평도 쓴다. 가장 인기 있는 건 ‘자신이 만난 세종’을 발표하는 시간. 이른바 ‘세종 간증’이다.

“거듭해서 책을 읽고 숙독하는 것이야말로 성의정심을 다하는 공부이다” “공을 쌓고 어짊을 얹으며 덕을 깊이 하는 게 나라 세우고 후손을 윤택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등 마음에 울림을 준 ‘주옥’ 같은 세종의 어록이 펼쳐진다.

세종사랑방은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에서 세종실록강독 수업을 받았던 회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실록강독에는 보통 1년이 걸리는데, 이를 바탕으로 세종의 시대를 보다 다각도로 조명한다. 공부하고 책 보고 발표 준비까지. 언뜻 빡빡하고 피곤하게 보이지만 회원들이 이를 숨가쁜 자기계발의 시간이 아니라 일종의 취미, 그리고 ‘힐링’시간으로 여긴다는 게 흥미롭다. 특히, 일터에서 가장 지쳐서 돌아오는 40∼50대 중년 남성 회원이 최근 부쩍 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박현모 연구원은 “회원들이 세종을 알아가면서 느낀 점들을 서로 공유하고, ‘아, 세종도 힘들었구나. 그런데 어려움을 이렇게 극복했구나’하면서 위로를 받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런데, 왜 하필 역사 공부일까. ‘힐링’과 공부는 어딘지 상충되는 듯 보인다. 박 연구원은 이에 대해 “사람은 ‘몰입’할 때 큰 기쁨을 느낀다”며 “‘내가 만난 세종’ 발표 시간에 회원들은 굉장한 집중력을 보이는데, 이를 통해 직장에서 필요한 통찰력도 얻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세종사랑방처럼 자생적인 모임은 아니지만,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과 교보문고(대표 허정도)가 이달 3일부터 시작한 ‘교보 인문학 석강’도 절반 이상을 40∼50대 남성 직장인이 채운다. 퇴근시간대에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진행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팍팍한 직장생활을 위로해줄 도구로서 인문학 강연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네이버문화재단에서 기획한 인문학 강연 프로젝트 ‘문화의 안과 밖’은 애초 인터넷 신청을 받았기 때문에 20∼30대의 참여율이 상당히 높다. 그러나 재단 관계자에 따르면 의외로 40대 이상 신청자도 많다. 이 관계자는 “장소가 협소한 탓에 40명 정원을 60명까지 늘렸는데, 이중 20%가 40대 이상이다”고 말했다.

이밖에,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푸른역사아카데미(푸른역사), 다중지성의 정원(갈무리)을 비롯해, 수유너머N, 수운잡방, 대안연구공동체, 파이데이아 등 크고 작은 인문학 모임이 생겨나 취업준비를 하는 젊은이들 뿐 아니라 순수하게 ‘인문학 스터디’를 갈망하는 중년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