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부닥친 공안수사… 디지털 채증 제도·기법 개선 필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 선고를 받은 유우성 씨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돼 1년 8개월째 공판이 진행되고 있는 전교조 내 ‘변혁의 새시대를 열어가는 교육운동 전국준비위원회’ 관련 증거,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왼쪽부터)

대남간첩을 포함한 대공사범들의 범죄수법이나 방식은 기술적으로 진화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공안당국의 수사방식은 여전히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특히 디지털 관련 물증에 대해 증거력을 부여하는 세부적인 법적 근거가 없어 공안사건 공판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공안사건의 수사와 공판 전반에 대한 법적·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원과 공안당국에 따르면 북한 대남공작 요원 및 안보사범들의 범죄는 날로 지능화되고 있지만 공안당국의 수사 방식은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북한은 1990년대 이후 국적과 신분을 세탁해 외국인 혹은 탈북자로 위장해 제3국을 통해 간첩을 침투시키는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이들의 간첩활동도 각종 디지털 수단을 통해 첨단화됐다. ‘왕재산 간첩단 사건’의 경우 조직원들은 암호화 프로그램을 활용해 북한으로부터 지령을 전달받고 보고를 했다.

또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사건의 조직원들은 수개월 단위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교체하는 한편, 수신 전용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최근 공안사범들은 카카오톡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신저를 적극 활용해 지령전달과 활동 등을 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처럼 대남간첩 및 공안사범들의 활동 방식은 첨단을 걷고 있지만 공안당국의 수사 방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법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카카오톡과 같은 SNS모바일 메신저의 실시간 감청은 불가능하다. 또 현행법상 공안사범의 변호인 접견권에 제한이 없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공안사범의 법정대리인으로 나서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을 전면 부인하게 하거나 진술을 거부하도록 종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이를 제지할 방안이 없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재판부도 피의자가 수사과정에서 한 진술을 법정에서 부정할 경우 이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거나 과거 판례에 따라 증거를 제한적으로 인정해 공안사범에 대한 당국의 수사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돼 1년 8개월 동안 공판을 끌어온 전교조 내 단체 ‘변혁의 새시대를 열어가는 교육운동 전국준비위원회’(새시대교육운동)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법원은 지난 8일 이 사건의 선고를 예정했지만 검찰 측은 증거확보 등의 문제로 불가피하게 변론 재개를 신청했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피고인들이 북한체제와 주체사상을 찬양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주고받은 사실을 확인하고 관련 한글파일 2500건을 확보했다.

하지만 이 증거물들이 재판부로부터 증거력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피고인들은 주로 이메일을 사용해 문서를 주고받았는데 이 문서에 서명날인이 없어 재판부가 증거로 인정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이는 형사소송법 313조에 근거해 서명날인이 된 문서만 증거로 인정이 된다는 과거 판례로 인한 것으로, 재판부는 이메일을 주고받은 사실만 인정할 뿐 이들이 파일을 작성하거나 내용을 공유한 사실은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김상겸(법학) 동국대 교수는 “개인정보보호 관련법은 강화돼 있고, (공안수사와 관련한)전기통신 관련법들은 자꾸 제한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이런 법제의 불균형을 입법을 통해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정민·김동하 기자 bohe0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