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경제, 사회적 기업 1000개 시대>‘쉐어타이핑’ 앱 개발… 청각장애인들 자막으로 듣는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회적기업 관계자들이 강연 내용을 실시간으로 자막 서비스해 주는 ‘쉐어타이핑’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서울 용산구 동자동 상상캔버스에서 열린 포럼에 참여하고 있다. 에이유디 제공

“중학교 때 학급회장을 맡아서 반 회의를 열었어요. 반 친구들과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걸 잘 알아들을 수 없더라고요. 그때 말하는 게 글자로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난 10월 28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아스피린 센터의 사무실에서 만난 박원진 에이유디(a.u.d.:auditory universal design)사회적협동조합 대표는 “그간 청각장애인으로서 제가 겪었던 애로사항에 비춰 우리나라에 사는 26만 청각장애인들이 꼭 필요로 하는 서비스일 것으로 생각해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사회적협동조합 인가를 받은 에이유디는 각종 세미나와 콘퍼런스, 포럼에 청각장애인들이 언어적 어려움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쉐어타이핑(share-typing)’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쉐어타이핑은 속기사나 문자통역사가 인터넷의 쉐어타이핑 플랫폼에 접속해서 강연 내용을 받아 치면 그 내용이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으로 시시각각 전달되는 시스템이다. 영문 그대로 ‘문자를 나눈다’는 의미가 있다. 이를 통해 청각장애인들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통해 강연 내용을 실시간 자막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청각장애인들은 장애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보통은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가 이뤄질 경우 어렴풋한 소리와 입 모양을 통해 말을 알아듣는다. 하지만 화자가 멀리 떨어져 있는 콘퍼런스와 세미나, 강연 등에서는 입 모양을 읽을 수 없고, 화자와 청자 사이에 잡음이 많아 음성을 듣는 것이 무척 어렵다. 이렇듯 언어장벽이 높다 보니 강연 등에서 청각장애인들은 소외당할 수밖에 없다. 박 대표는 “청각장애인이라면 누구나 ‘저 사람이 말하는 게 글자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이런 생각을 실제로 구현한 것이 쉐어타이핑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가 청각장애인들의 언어장벽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으로 수화가 아니라 쉐어타이핑을 고안한 이유는 뭘까. 보통 사람들은 청각장애인의 소통 수단으로 수화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는 청각장애인들의 의사소통을 돕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수화가 아니라 자막이라고 이야기한다. 보건복지부 통계로는 청각장애인 중 수화 사용자는 6% 전후에 불과하다. 청각장애인들이라고 해서 수화를 할 줄 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편견이라는 것이다. 박 대표는 “청각장애인들이 자막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많은데 수화통역센터는 있어도 자막을 지원해 주는 센터는 없다”며 “에이유디의 서비스를 통해 청각장애인들이 더 많은 분야에서 어려움 없이 활동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일반 초·중·고등학교를 나온 뒤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했다. 졸업 후 초등 특수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사회적기업을 알게 되면서 교직을 떠났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좋지만, 더 많은 청각장애인들에게 이바지하는 길을 걷고 싶었던 까닭이다. 그는 “학창시절에 공부를 따라가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며 “중학교 때까지는 예·복습을 열심히 하면 선생님 말씀을 다 알아듣지 못해도 친구들보다 뒤처지지 않았는데 고등학생이 되니 선생님 말씀을 잘 알아들어야 이해가 가능한 학습 내용이 많아 점점 공부를 따라가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불편함은 이어졌다. 청각장애학생 지원제도 덕분에 속기사가 강의시간에 교수의 말을 노트북으로 기록했고, 박 대표는 그 노트북을 보고 수업 내용을 이해했다. 하지만 강의 내내 속기사와 붙어 앉아 노트북만 봐야 한다는 점이 매우 불편했다. 친구들과 어울릴 새도 없고, 교수님의 얼굴을 바라보기도 힘들었다. 이런 경험에 비춰 그는 속기사 한 명이 치는 자막이 실시간으로 스마트폰으로 전달되는 쉐어타이핑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을 개발한 것이다.

지난 2012년부터 이런 사업을 구상한 박 대표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소셜벤처 경연대회’, ‘3기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등에 참가해 사회적기업 창업팀 중 단연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2년 가까운 창업 준비 기간을 거쳐 에이유디는 지난 6월 복지부로부터 생산자, 판매자, 직원, 자원봉사자, 후원자 등의 조합원이 함께 이끌어 나가는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인가를 받았다. 현재 6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고, 38명이 조합원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소비자 조합원은 청각장애인들이 가입 대상이고, 포럼이나 세미나·교육·콘퍼런스 등 에이유디의 서비스가 제공되는 다양한 장소에서 플랫폼을 저렴하게 또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생산자 조합원은 청각장애인에게 필요한 기기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재능을 기부하는 이들이다. 에이유디는 현재 세미나나 콘퍼런스를 중심으로 플랫폼을 공급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청각장애인이 참석하는 다양한 장소에 서비스를 확산시킬 계획이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