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픽 = 송재우 기자 jaewoo@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정치인들이 금품 수수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혈세’인 특수활동비를 사적으로 사용했다고 밝히면서 ‘눈먼 돈’이란 지적을 받아온 특수활동비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특수활동비는 영수증 첨부가 필요 없고 구체적인 사용 내역에 대한 검증 없이 총액 결산만 하기 때문에 감시·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예산이다. 특수활동비는 원래 돈의 용처나 시간 등이 드러나면 정보원의 신상 등이 공개돼 기밀 유지가 힘든 경우에만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기타 그에 준하는 국정수행 활동’에도 쓸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 올해 19개 기관에 편성된 특수활동비 예산은 8800억 원이 넘는다.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최소한의 범위’라는 단서 조항은 오래전에 사문화된 셈이다.
1 특수활동비란
기획재정부가 지난 4월 내놓은 ‘2016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세부지침’에 따르면 특수활동비란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말한다. 기재부는 특수활동비를 편성할 때 적용되는 세부 지침으로 “사건 수사, 정보수집, 각종 조사활동 등을 위해 타 비목(費目)으로는 원활한 업무 수행이 곤란한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요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기재부는 “업무추진비·기타운영비, 특정업무경비 등 타 비목으로 집행이 가능한 경비는 계상을 금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유관기관 간담회 개최 △화환 및 조화 구입, 축·조의금 △단순한 계도·단속, 비밀을 요하지 않는 수사·조사 활동 등은 특수활동비로 편성할 수 없다는 뜻이다.
2 업무추진비와 특수활동비 차이는
기재부에 따르면 업무추진비는 ‘사업추진비’와 ‘관서업무비’로 나뉜다. 사업추진비에는 외빈 초청 경비, 해외출장지원 경비, 공식 회의 및 행사 경비, 사업 추진에 특별히 소요되는 연회비 등 제 경비 등이 포함된다. 관서업무비는 대민·대유관기관 업무협의, 당정협의, 언론인·직원 간담회, 체육대회, 종무식 등 관서 업무 수행에 소요되는 경비를 말한다. 기재부는 △기관 간의 비공식적인 섭외·접대 △업무와 관련 없는 각종 후원금 지급 △개인 명의의 불우이웃돕기 성금 △재해의연금 등 기타 갹출성 성금 △법령에 근거하지 않은 현금 지급 등에는 업무추진비를 쓸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과거에 판공비(辦公費)라는 용어가 쓰인 적도 있으나,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다. 특수활동비는 영수증을 첨부할 필요가 없지만, 업무추진비는 지출 증빙을 반드시 해야 하기 때문에 특수활동비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3 특수활동비 年규모와 사용부처는
올해 정부 예산 중 8810억6100만 원이 특수활동비 명목으로 편성됐다. ‘부처별 특수활동비 예산편성 현황’을 분석한 결과, 전체 19개 기관 중 국가정보원이 4782억3600만 원으로 가장 많았다. 국방부(1793억7500만 원)와 경찰청(1263억8400만 원)이 그 뒤를 이었고, 청와대는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실, 경호실 등에서 총 266억7500만 원을 특수활동비로 사용했다. 국회도 83억9800만 원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수활동비는 모든 정부 부처에 편성되는 것이 아니라 국정원, 국방부, 법무부, 경찰청, 국세청 등 정보수집 및 사건 수사 기관이 주로 사용한다. 이외에 미래창조과학부(77억9100만 원)와, 감사원(38억5400만 원)이 상위권에 위치했다.
4 안보기관에 절반 이상 배정 이유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는 2013년 4672억 원, 2014년 4712억, 2015년 4782억 원 등 매년 증가하고 있다. 기밀 유지가 필요한 정보와 수사 활동이 주요 업무이기 때문이다. 역시 정보수집, 수사 활동을 하는 국군기무사령부를 둔 국방부와 경찰도 마찬가지다.
이들 기관의 특수활동비는 사용처를 확인할 수 없고 정치적인 활동이나 고위 간부들의 개인적인 용도로도 쓰일 수 있다는 점에서 ‘검은 예산’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국정원은 본예산 외에도 ‘예산회계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기재부로부터 규모가 공개되지 않는 예비비도 배정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 기관의 예산 규모가 세세히 공개되면 국정원 조직 규모와 시설, 역량 등을 다른 나라가 추정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자세한 사항은 비공개 대상이다. 미국, 영국 등의 다른 나라 정보기관들도 예산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5 영수증 첨부 못하는 이유 있나
특수활동비가 일반 예산과 달리 사용 내역을 생략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두는 이유는 사용 목적의 특수성 때문이다. 특히 사정기관에서는 보안 유지를 가장 큰 이유로 들고 있다. 정보수집 및 수사를 하면서 영수증을 남기게 된다면 접촉 장소나 시간 등이 드러나 중요 정보원의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영수증 등 증빙자료 첨부를 의무화하게 되면 정보원 등 주요 인사들이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게 돼 접촉 자체도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감사원의 특수활동비에 대한 계산 증명지침에도 특수활동비는 사용처가 밝혀지면 경비집행의 목적 달성에 현저히 지장을 받을 우려가 있을 경우에 한해 집행내용확인서를 생략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6 개인적 사용 처벌할 수 있나
홍준표 경남지사와 신계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생활비와 아들 유학비 등으로 썼다고 밝힌 특수활동비는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공금이기 때문에 이를 사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면 업무상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다. 하지만 용도 자체가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아 어느 선까지를 사적 이익을 위한 사용으로 볼 것인지는 다툼의 소지가 있다. 홍 지사는 공금유용 논란이 일자 특수활동비 중 직책수당 성격의 돈은 사적으로 사용 가능하다는 자체 해석을 내리기도 했다. 지난 14일 경남지역 시민단체가 홍 지사를 업무상 횡령 혐의로 창원지검에 고발하면서 수사 결과에 관심이 모아진다.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2004년부터 3년간 자신이 관리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특수활동비 12억5000만 원을 차명계좌를 통해 횡령한 혐의 등이 인정돼 징역 6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7 대통령 특수활동비 규모와 용처
2015년 청와대 예산 1687억9300여 만 원 중 특수활동비는 266억7500만 원으로, 전체의 약 15.8%에 달한다. 대통령비서실 및 국가안보실이 147억9200만 원, 대통령경호실이 118억8800만 원이다. 노무현정부 마지막 해였던 지난 2007년 215억9600만 원 수준이었던 청와대 특수활동비는 이명박정부 마지막 해였던 2012년에는 256억9600만 원 수준으로 늘었고, 재정 절감을 강조해 온 박근혜정부 들어서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청와대 특수활동비는 실제로 누가 어디에 얼마만큼의 돈을 썼는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일부 정권에선 국정원 등의 특수활동비를 청와대가 상납받아 ‘통치자금’으로 썼다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8 국회 특수활동비 규모와 용처
정부가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2013년도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국회가 사용한 특수활동비는 87억7900만 원이다. 매년 80억∼90억 원가량 비슷한 액수가 책정된다. 특수활동비는 국회의장 및 부의장, 여야 원내대표, 상임위원장 등에게 매월 지급된다. 상임위원장이나 각종 특위 위원장은 대략 한 달에 600만 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운영위원장을 겸하는 여당 원내대표는 위원회 활동 지원과 원내 활동 지원 명목으로 매달 5000만 원에 육박하는 특수활동비를 지원받는다.
원내대표는 특수활동비를 상임위 여야 간사나 원내부대표단·정책위의장단의 활동비로 나눠주는가 하면, 동료 의원들과의 식사대금, 경조사 부의금, 상임위 운영비 등으로 주로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 지사는 원내대표 시절 특수활동비를 생활비에 보탰다고 했지만 전·현직 여당 원내대표들은 특수활동비가 부족해 자기 돈을 더 쓰는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9 지방자치단체도 특수활동비 있나
지방자치단체에는 특수활동비라는 명목으로 사용되는 예산은 없다. 다만 광역자치단체장의 경우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연간 1억∼4억3000만 원 정도의 업무추진비가 책정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무추진비는 행정자치부의 예산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 수립 기준에 따라 전년도 업무추진비 결정액에 최근 3년간 정책사업 평균 증감률 등을 고려해서 결정된다. 즉 사업이나 예산이 많은 곳은 업무추진비 한도액이 많다는 것이다. 지자체장은 영수증을 첨부해 매달 해당 자치단체 홈페이지를 통해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 이는 지자체별로 제정한 행정정보 공개조례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일부 지자체장의 경우 연간 사용 총예산을 공개하지 않고, 매달 쓴 내역만 공개하거나 식사비를 카드 영수증이 아닌 일반 영수증으로 처리하는 등 부당 집행 의혹을 받기도 한다.
10 특수활동비 투명화 방안
최근 사적 유용 논란이 일고 있는 국회 특수활동비와 관련, 국회는 사적 유용 방지책 마련에 본격 착수했다. 국회는 기재부와 협의해 특수활동비의 사적 유용 금지 규정을 국회 등 공공기관 내부 규칙에 넣고, 영수증 첨부를 최대한 의무화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국회의장실과 국회사무처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지시에 따라 특수활동비 대책회의를 열어 △기재부를 통한 관리·감독 프로세스 마련 △공공기관 규칙 내 공적 목적 사용 명문화 △선별적 영수증 첨부 등을 논의했다. 국회는 자체적으로 대안을 모색한 뒤 부처 특수활동비 예산을 배정하는 기재부와 함께 세부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의장이 중심이 돼 제도 개선안을 내놓으면 여야가 협력해 따르겠고, 운영위원회에서 할 일이 있으면 제가 앞장서겠다”고 여야 정치권 개선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민병기·박수진·김동하·박천학·유현진 기자 mingm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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