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도 현실정치인 …‘과거사’ 원칙지키되 퇴로 열어줘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피해자처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3일 오키나와 전투 종결 70주년을 맞아 오키나와현 이토만 시 소재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전문가 제언
“역사문제 선악구도 벗고 타협안 정치적 결단 필요”
“경제·안보 분야는 협력 투트랙 대일외교 펼쳐야”
“전략부재 2년4개월 허송 외교정책 전면재검토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현실 정치인이다. 그에게 퇴로를 주지 않고 우리 입장만 강요해서는 안된다.”

박근혜정부 출범 후 사실상 처음으로 찾아온 한·일 관계 해빙 무드를 실질적 성과로 이어가기 위해 전문가들이 24일 우선적으로 내놓은 주문이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그동안 정부의 대일 접근법에 잘못은 없었는지 살펴보고 과감하게 수정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지난 22일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에 교차 참석한 게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게 하려면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장은 이날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대화와 압박이 항상 공존해야지 우리 원칙만 계속 얘기한다고 우리 의도대로 협상이 흘러가거나 관계 개선이 이뤄지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진 소장은 “아베 총리도 한·일 관계 개선이 일본에 이익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우리 원칙을 말하면서도 아베 정부가 퇴로를 가질 수 있도록 타협책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기호(일본학) 성공회대 교수도 “한국은 선(善)이고 일본은 악(惡)이라는 식의 구도에서 벗어나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일본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박철희 국제대학원 교수도 “아베 총리가 일본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일 관계가 최악의 늪에 빠진 원인인 과거사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이런 역지사지의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왔다. 이원덕(국제학부) 국민대 교수는 “특히 역사 인식의 문제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수준까지 일본의 정치 지도자나 국민들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걸 목표로 해서는 결코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100점이 아니라 70점도 좋으니 타결 짓고 넘어갈지 결단하는 게 대통령의 몫”이라고 말했다. 송화섭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연구위원도 “일방적으로 일본의 양보를 얻어내기 힘들기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서 우리 쪽에서도 어느 정도 타협안을 만들어 내기 위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일본 국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냄으로써 아베 총리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진 소장은 “정부는 ‘원칙 외교’의 측면에서 일관성 있는 주장을 펴 왔지만 일본 국민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고 일본 내 여론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며 “일본 국민들에게 우리 입장을 설명하는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투 트랙 전략’ 강화에 대한 주문으로 이어진다. 박 교수는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협상해 나가면서 협력 가능한 분야는 그것대로 해 나가는 정책 기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최근 가시화하고 있는 정부의 투 트랙 정책의 동력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 역시 “역사 문제는 한국과 일본이 당면한 여러 가지 현안 중 하나로 봐야 한다”면서 “과거사 문제가 해결 안 되면 다른 것도 안 된다는 시각은 한국 외교의 손발을 묶는 것으로, 진정한 외교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제 협력의 막힌 곳을 뚫어내는 것뿐 아니라 북한 핵·미사일 대응을 위한 한·일 정보보호협정 체결 등 안보 협력 강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이 이처럼 대일 외교의 과감한 변화와 전략적 접근을 촉구하는 이유는 기존의 정책 기조로는 한·일 관계 개선을 이룰 수 없을 뿐 아니라 국익을 관철하는 데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여기에는 지난 2년4개월여 동안 한·일 갈등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정부의 전략 부재로 인해 아베 총리의 외교술에 철저히 밀렸다는 질책이 담겨 있다. 양 교수는 “아베 총리는 미·일 동맹강화뿐 아니라 동남아 국가들과 공조해 중국의 팽창에 대응하는 등 적지 않은 성공을 거뒀다”며 “반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박근혜정부가 내세운 외교정책에서 제대로 된 성과가 하나도 없어 국민 불안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교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며 “실종된 한국의 리더십을 회복하는 전환점으로 만드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한·일 관계가 좋아진다고 한·중 관계가 나빠지지 않으며, 한·미 관계에는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남석·유현진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