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조총수 100여명 파병, 러 南進정책 막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도쿄대 사료편찬소가 소장한 ‘왜구도권(倭寇圖券)’ 중 왜구와 명나라 수군의 전투 장면을 묘사한 그림. 16세기 중국 해안에는 왜구가 자주 출몰했다. 조선뿐 아니라 명나라에서도 골칫거리였던 셈. 왜구도권은 이를 기록한 화첩이다. 알마 제공

조선의 대외정벌 / 임홍빈·유재성·서인한 지음 / 알마

조선과 대외정벌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니다. 삼국시대 이래로 2000년의 한국사를 통틀어도 공격이라든가 공세라는 적극적 개념의 ‘공(攻)’이란 용어는 별로 나오지 않는다. 내전과 외란 등 900∼1000번에 이르는 크고 작은 규모의 전쟁을 모두 합쳐도 말이다. 특히, 조선은 방어나 수비 개념인 ‘수어(守禦)’로 점철된 시대였다. 그러나 당시에도 ‘대외’ ‘해외’ 또는 ‘원정’에 해당하는 군사작전이 엄연히 존재했다. 책은 조선 왕조 500년간 단 3차례뿐인 대외 원정의 역사적 실체를 재구성하고, 그 의미를 묻는다. 이는 각각 왜구, 여진족, 러시아군을 상대로 벌인 ‘대마도 정벌’ ‘보주 강 야인토벌’ ‘나선정벌’인데,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연구원을 지낸 세 명의 공동 저자들은 본격적인 대규모 전쟁이 아닌 이 3번의 소규모 단기 토벌작전을 재조망·재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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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 두 차례에 걸친 대마도정벌은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를 끊임없이 침략해온 일본과 관련되어 있어서, 더욱 면밀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책은 5세기 전후부터 ‘왜인들로 구성된 도적 떼’ ‘왜인들로 구성된 약탈자’라는 특수하고도 고유한 의미로 사용된 ‘왜구(倭寇)’의 기원을 우선 살핀 후, 여몽연합군의 1·2차 일본 열도 공격과 고려·조선의 대마도 정벌의 과정과 결과를 살핀다. 우선, 고려-몽골 연합군의 침공은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일본 정국에 끼친 영향이 막중했다. “가마쿠라 바쿠후는 고려-몽골 연합군의 침공을 계기로 전국 무사 집단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던 반면, 막대한 전쟁 비용 지출로 국가 재정이 고갈 상태에 이르렀다.(중략) 이로 인해 무사 집단의 불평불만이 고조되었고, 마침내 가마쿠라 바쿠후의 호조 정권은 그들의 지지를 상실하고 쇠퇴일로를 걷게 되었다.”(79쪽)

그렇다면 고려의 1차(1389)·조선의 2차 대마도정벌(1419)은 어땠을까. 책은 1차 정벌 후, 고려에 대한 일본 본토 영주들의 자세에 변화가 생겼다고 말한다. “고려와 근거리에 위치한 규슈 일대의 영주 세력들은 그동안 은연중 왜구 집단을 비호하거나 그 활동을 조장하면서 약탈해 온 이득을 편취하는 정황이 컸다. 그러나 대마도정벌 이후로 태도가 일변하여 고려 측에 자청해서 사절을 보내고 지방특산물을 진상하는 등 우호적인 태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85쪽) 세종 1년에 단행한 2차 정벌 후엔 대마도를 경상도의 속현으로 편입시켰다. 한반도 역대 왕조와 대마도 왜구의 종래 관계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조선 세종대에는 왜구뿐 아니라 압록강과 두만강 연안 일대에 산재한 여진 부족들을 집단으로 토벌하기도 했다. 이른바 ‘보주 강 야인토벌’(1460)이다. 이 토벌로 인해 조선과 여진 부족들 사이에는 주종관계가 확립되었고, 이들의 침략과 약탈 행위도 크게 줄었다. 그러나 국가가 아닌 부락 단위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여진족과의 싸움에서 단기간의 속전속결이란 불가능했다. 방어 효과보다는 지나치게 많은 군사비를 해마다 지출하는 고질적 부담을 지게 된 것. 그러면서 세종은 여진족 세력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여 불씨를 남겼다. 이는 결국 동북방과 서북방 방어 인식을 해이하게 했고,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이라는 왕조 존폐 위기까지 직면하게 만들었다. “청군은 압록강을 건넌 지 불과 엿새 만에 도성 한양 근교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해 내려왔다. 조선군은 단 한 번도 변변히 싸워보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흩어졌다.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는 농성 45일 만에 성문을 열고 나와 청 태종에게 신하의 예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절하는, 이른바 ‘삼전도의 치욕’을 겪었다.”(322쪽)

‘나선정벌’(1654)은 앞선 두 대외 원정과는 성격이 다르다.

‘삼전도의 치욕’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긴 하지만 조선의 의지가 아니라 나선(러시아)을 치기 위한 청의 강요로 이루어진 파병이다. ‘보주 강 야인 토벌’이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은 것이 훗날 어떤 역사적 결과를 가져오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17세기 중반, 영토 확장을 꾀한 재정러시아는 청과 맞닥뜨리게 됐는데, 헤이룽 강 유역에서 러시아군과의 몇 차례 전투에서 패한 청나라가 조선에 지원병을 요청한 것. 아이러니한 것은 정예 조총수 100여 명이 러시아 원정대 400여 명을 기습 공격하여 청군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출정 80여 일 만에 전원이 무사히 귀국했다. 러시아의 남진정책은 좌절됐고, 약 사반세기 동안 헤이룽 강 중하류 서남 지역에 대한 청의 지배권은 안정적으로 확보되었다. 책은 이 나선정벌이 효종이 꿈꾼 ‘북벌’의 간접적인 시험 무대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