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담고 세상을 꼬집는 ‘저항의 펜’ 漫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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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눈 / 장크리스토프 빅토르 지음, 조홍식 옮김 / 문학동네

‘만평은 산소를 공급한다.’ 프랑스 지리학자 장크리스토프 빅토르의 말이다. “만평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강력하고 날카롭고 신랄한 효과적인 무기이다. 민주 국가에서 만평가는 사실을 폭로하고,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웃음을 선사하며, 산소를 공급한다.”

권력과 부조리를 비판하는데 만평만큼 효과적인 무기는 드물다. 세상을 보는 예리한 시각, 풍자와 유머, 예술적 감각까지. 핵심을 정확히 찌르면서도 풍부한 배경 설명이 가능케 한 ‘메시지 능력’은 풍자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을 참을 수 없게 만든다. 이는 때론 만평과 만평가를 위험에 빠트린다.

지난 1월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이슬람 테러리스트 공격은 대표적인 예이다. 벽에 무아마르 카다피의 캐리커처를 그려 유명해진 카이스 알힐랄리는 2011년 3월 벵가지 총격전에서 죽임을 당했다. 몇 달 뒤 시리아 만평가 알리 페르자트는 몽둥이질을 당해 손가락이 으스러지기도 했다.

“(비겁한 권력과 테러리스트 위험 때문에) 다양한 생각들은 공공의 장에서 추방되고, 논의 대상일 수조차 없게 됐다. 매우 심각하다. 자유의 영역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우리는 정치 만평가와 그들의 작품, 그리고 그 영향력에 책을 헌정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현대사에 의미 있는 만평들을 묶은 책이 나오게 된 이유다. 만평에 대한 헌사이다.

프랑스 외무성 국제관계 분석가로도 활동했던 엮은이는 전 세계 대표적 만평가 86명의 230여 작품을 묶고, 이에 대한 위트 있는 설명을 더한다. 서구, 특히 유럽 중심이어서 우리로선 결정적으로 아쉽지만, 이 부분만 양해하면 만평으로 엮은 현대사 교과서이자 지난 20여 년간 격동의 세계사이다.

그 시작은 1989년 가을이다. 세계적으로 거대한 지정학적 움직임이 시작된 결정적 해, 지금의 글로벌 체제를 만든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옛 소련은 내분하는가 싶더니 사라졌다. 이 제국의 종말은 또 다른 커다란 국제적 결과를 초래했다. 이같은 1989년, 세 사건을 다룬 만평이 묶여있다. 1989년 2월 14일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신성모독을 이유로 살만 루슈디를 죽이라고 내린 종교적 명령, 6월 4일 톄안먼(天安門)사건과 그 뒤 베이징(北京)의 봄, 11월 9일 베를린 철의 장막이 무너진 역사적인 밤이다.

이어 넬슨 만델라 석방, 독일 통일, 유고슬라비아 전쟁, 르완다 인종학살, 홍콩반환, 시애틀 반세계화 시위, 9·11 테러, 아프가니스탄 전쟁,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 아랍혁명, 일본 후쿠시마(福島)원전사고, 유로와 국채 위기, 시리아 사태로 이어진다.

광우병,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붐, 마이클 잭슨의 죽음 등을 다룬 만평도 실렸다. 책은 2012년 현지에서 출간됐기에, 그해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당선과 시리아 내전까지 담겼다. 엮은이는 작품을 고른 기준은 단순하다고 했다. 의미와 영향력, 역사적 순간을 표현하는 능력, 그림의 효율성과 미적이고 시적 감각. 나열해보니 결코 단순하지 않은데, 이것들을 모두 갖춰야 비로소 ‘만평’이라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사실 이런 긴 설명은 필요 없다. 책장을 넘겨 만평들을 보는 순간 이 모든 것들을 알게 된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