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팀장의 북레터>세상을 향한 또다른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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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뒤늦게 도착한 편지 같은 책이 나왔습니다. 소설가 스티븐 킹의 ‘롱 워크’(황금가지).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매년 2편 이상의 신작을 발표하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1966년, 열여덟에 쓴 첫 장편소설이기 때문입니다. ‘롱 워크’가 정식 출간된 것은 1979년이고, 킹의 공식 데뷔작은 1974년에 나온 ‘캐리’이지만 말입니다. 실제로 킹은 최근 출간된 중편집 ‘별도 없는 한밤에’의 ‘닫는 글’에서 “열여덟 대학교 기숙사 방에서 첫 소설 ‘롱 워크’를 쓴 이후 줄곧 나는 내 일을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밝혔듯이 이를 작가의 출발점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해적판으로 나오다 이번에 정식 번역된 책을 받고 보니 오랫동안 감춰졌던 킹의 민얼굴을 만나는 듯합니다. 작품은 열여덟이 썼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깊은 문제의식을 보여줍니다. 가상의 전체주의 미국에서 10대 소년 100명이 마지막 승자가 나올 때까지 달리는 롱 워크에 참가합니다. 최저 제한 속도(시속 6.5㎞) 밑으로 떨어지면 경고, 경고가 3번이면 즉결 총살됩니다. 어리석은 시민들이 열광하는 가운데 소년들은 출발 합니다. 반전 시위가 소용돌이 치던 1966년 미국 사회를 바라보는 열여덟 킹의 시선이 녹아든 작품은 출간 당시 화제가 됐을 뿐 아니라 ‘헝거 게임’ ‘배틀 로얄’ 등 디스토피아를 다룬 청소년 소설에 큰 영향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킹의 첫 장편 소설이라는 것과 함께 이 작품이 리처드 바크먼이라는 필명으로 출간된 것도 흥미롭습니다. 킹은 1970∼80년대 또 다른 정체성을 갖기 위해 바크먼이라는 이름으로 ‘분노’(1977), ‘롱 워크(1979)’, ‘로드 워크(1981)’, ‘러닝맨(1982)’ 등을 출간했습니다. 1985년 ‘시너’출간 후 킹 마니아인 서점 직원이 바크먼이 킹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기 전까지 말입니다.

이번에 나온 ‘롱 워크’에는 1999년 킹이 쓴 서문이 붙어 있습니다. “낮게 깔린 분노, 성적인 좌절, 미친 것 같은 유머, 끓어오르는 절망. 나는 바크먼인 채로 이 작품을 썼다.” 킹은 바크먼의 정체가 탄로 난 것을 아쉬워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좋은 사람들이 대체로 이기고 용기는 보통 공포에 승리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러나 폭우가 쏟아지고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고 괴물들이 가득찬 숲 속 어느 장소가 우리들 대부분의 내면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두운 어조를 쓰고 웃고 있을 때조차 절망적인 바크먼은 내가 늘 되고 싶은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지. 세상에 난 그런 창문을 가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세상을 향한 또 다른 창. 누구나 킹이 될 순 없지만 누구에게나 세상을 향한 또 다른 창이 필요하겠지요. 킹은 바크먼이라는 창이 삶을 활기있게 하고, 게으르지 않게 한다고 했습니다. 삶을 더 여유롭고 풍성하게 만드는, 때로는 그 창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그런 창, 각자의 ‘바크먼’이 필요합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