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 신인 작가 그리고 소지섭의 선택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배우 소지섭이 돌아왔다. 2013년 작인 ‘주군의 태양’ 이후 2년 만이니 그리 오랜 공백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2004년 ‘미안하다, 사랑한다’와 ‘발리에서 생긴 일’로 정상을 밟은 후 2013년까지 열두 작품을 선보였다. 4년 단위로 간간이 신작을 선보이는 소위 ‘월드컵’ ‘올림픽’ 배우와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2년의 공백이 그에게는 꽤 길게 느껴졌을 법하다.

그렇다면 그의 신작은 왜 KBS 2TV ‘오 마이 비너스’(극본 김은지)였을까? ‘로맨틱 코미디=안전한 선택’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봐도 전작인 ‘주군의 태양’을 제외하곤 로맨틱 코미디를 찾아보기 어렵다. 성공을 위해 쉬운 길을 택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게다가 방송가는 ‘로코의 무덤’이라 불린다.

소지섭의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팬들과 대중의 바람이었다. 올해 선보인 로코는 ‘그녀는 예뻤다’를 제외하곤 신통치 않았다. 뻔한 이야기는 외면받는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빡빡한 세태 속에 대중은 웃고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찾는다. 그가 ‘오 마이 비너스’를 선택한 이유다.

게다가 ‘오 마이 비너스’는 신인인 김은지 작가의 작품이다. 단편은 선보인 적이 있지만 장편 드라마는 처음이다. 통상 ‘영화는 감독의 예술,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라 한다. 드라마에서 작가의 중요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김은숙, 박지은, 홍자매 작가의 작품에 스타들이 몰리는 이유다. 하지만 소지섭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신인 작가의 작품을 택했다.

소지섭 측은 “이름값과 지명도보다는 기획의도와 대본 자체에 집중했다”며 “대중을 설득시킬 수 있는 대본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소지섭이 어필할 수 있는 캐릭터라 판단했다. 이 작품을 통해 김은지 작가가 장편 드라마 작가로서 인정받게 된다면 이 역시 의미 있는 일이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드라마를 성공시키기 위한 소지섭의 노력은 곳곳에서 포착된다. 극 중 스타 헬스 트레이너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촬영 몇 개월 전부터 철저한 식단관리와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매를 가다듬었다. 캐릭터 분석, 연기 연습과는 별개로 땀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제작진과 출연진이 소지섭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는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성실함과 배려 때문이다. 소지섭은 현장에 늦게 오는 법이 없다. 항상 남들보다 먼저 와 촬영을 준비하고 마음을 다스린다. 촬영 스케줄이 빡빡해 다른 배우들이 ‘나 먼저’를 외칠 때 소지섭은 뒤로 한 발 물러선다. ‘오 마이 비너스’의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헨리는 “소지섭을 처음 만났을 때 10분 일찍 도착했는데 벌써 앉아있더라. 그래서 다음에 만날 때 20분 전에 도착했는데도 와있더라. 30분 일찍 왔을 때도 스트레칭을 하고 있길래 50분 정도 일찍 왔더니 같이 도착했다”며 “소지섭 때문에 좀 힘들다”는 엄살은 소지섭의 성실함과 성품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스포츠가 ‘멘털 게임(mental game)’이듯 드라마도 ‘멘털 게임’이다. 상대방과 합을 맞춰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연기뿐만 아니라 마음을 맞춰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분위기는 통상 주연 배우가 만든다. 스타일수록, 인지도가 높을수록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출연진, 제작진을 넘어 작품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소지섭이 출연하는 작품의 타율이 높고, 현장의 공기가 따뜻한 이유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