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1인당 7705억 굴리는 펀드 매니저 해고되면 ‘매미’ 전락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픽 = 김연아 기자 yuna@

등록된 637명 중 577명만 활동
3년이상 마이너스 수익 땐 ‘前科’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직업은 수익률 좋은 펀드매니저, 가장 불행한 직업은 수익률 나쁜 펀드매니저입니다.”

H자산운용 김모 펀드매니저는 자신의 직업을 이같이 평가했다.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수익률에 대한 중압감은 늘 펀드매니저들을 짓누른다. 요즘같이 정보의 대중화 속에서 남들보다 자료를 더 본다고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각종 수익률 지표로 펀드매니저를 평가하는 잣대만 늘었기 때문이다. 단기간 높은 수익률을 원하는 투자자의 입맛을 맞추다 보면, 남들이 찾지 못한 기업의 옥석을 가리는 일이 때론 사치로 느껴진다고 토로한다.

한때 전도유망한 직업이었던 펀드매니저는 사회적 조롱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됐다. 최근 개봉한 영화 ‘부산행’에선 펀드매니저를 개미(개인투자자) 피(투자금)를 빨아먹는 ‘개미핥기’로 묘사했을 정도다. 영화 ‘공공의 적’에서 배우 이성재가 맡은 친부모를 살해한 엽기 패륜아의 직업도 펀드매니저다. 심지어 영화 속 단골인 어딘가 모자란 조폭(조직폭력배)의 빈자리를 펀드매니저가 메우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유명 연예인과 아나운서들과 줄줄이 화촉을 밝히며 배우자감으로도 인기가 좋았던 시절은 이제 옛말이 됐다.

현직 펀드매니저들 모두 “개미를 도왔으면 도왔지, 개미 피를 빨아먹는 개미핥기라는 조롱은 우리 직업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며 씁쓸함을 드러냈다. S자산운용의 김모 펀드매니저는 “주식부터 채권, 대체투자까지 개미들이 혼자 할 수 없는 영역에서 수익을 낼 수 있게끔 돕는 게 우리 직업”이라며 “펀드매니저를 개미핥기로 묘사하는 건 현실을 너무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익률 압박 속에 사회적 외면까지 더해 짐을 싸는 펀드매니저는 증가하는 추세다. 10일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금융투자협회에 등록된 펀드매니저는 637명이다. 이 기간 자산운용사에 속한 펀드매니저는 577명으로 전체 90.6% 수준에 불과하다. 놀고 있거나 업무와 관련 없는 직종에서 일하는 펀드매니저가 9.4%(60명)라는 의미다. 면허를 놀리고 있는 펀드매니저는 2014년 5.6%(35명), 지난해 7.02%(44명)로 매년 증가세다.

신동준 금융투자협회 집합투자서비스 본부장은 “펀드 운용 규모가 커진 것에 비해 펀드매니저 수는 오히려 줄었고 유휴(遊休) 인력도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펀드매니저 수가 647명으로 정점을 찍었던 2012년 말 펀드 수탁액은 319조5854억 원이다. 펀드매니저 1명당 펀드 운용규모는 4939억 원이다. 펀드 수탁액은 증가했지만, 펀드매니저 수는 감소해 지난달 말 기준 펀드매니저 1명당 운용규모는 7705억 원으로 뛰었다. 신 본부장은 “수익률로 평가받고 업계 간 피를 말리는 경쟁에서 낙오되면 알아서 짐을 쌀 수밖에 없는 게 펀드매니저의 삶”이라고 설명했다.

펀드매니저가 회사를 떠나는 경우는 대개 두 가지다. 높은 수익률로 자신감이 붙어 개인 회사를 차리거나 낮은 수익률로 회사에서 쫓겨나는 경우다. 대부분 후자인데 이들 대다수는 ‘매미’(펀드매니저 출신 개인투자자)가 된다. 장기간 마이너스 수익률은 ‘전과기록’과 같아서 이직도 쉽지 않다.

“수익률이 낮아도 회사에선 1∼2년까지는 봐줍니다. 하지만 가시방석입니다. 3년까지 봐주는 회사는 없어요. 회사가 해고통보나 재계약을 하지 않더라도 펀드매니저가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고 회사를 먼저 떠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의도를 맴도는 ‘매미’가 되는 거죠.”

또 업계에선 ‘인성’보다는 ‘메사끼(めさき)’를 더 쳐준다. 메사끼는 ‘직관력’을 뜻하는 일본어다. 증권가에선 ‘감(感)’과 같은 말로 쓰인다. 자산운용업계에선 버릇없는 펀드매니저보다 메사끼 없는 펀드매니저가 오히려 퇴출 대상 1호로 꼽힌다.

때로는 ‘반성문’도 써야 한다. 외국계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거액의 투자금을 맡긴 일부 기관에선 펀드 수익률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왜 나빠졌는지 이유와 앞으로 대응 방안을 작성해 가져오라고 한다”며 “우리끼리는 이를 반성문이라고 부르는데, 때로는 단기 성과에 집중한 투자자의 무리한 요구가 펀드매니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보통 펀드매니저는 오전 6시를 전후로 하루를 연다. 첫 일과는 밤사이 미국과 유럽 등 해외증시 상황과 신문에 나온 뉴스를 챙기는 것에서 시작한다. 9시 장이 열리기 전까지 회의와 애널리스트들이 쏟아낸 보고서를 선별해 확인한다. 막상 주식을 사고 파는 시간은 하루에 길어봤자 10분도 채 안 걸린다. 또 다른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주식 시장이 돌아갈 때 펀드매니저가 주식을 사고, 파는 시간은 매우 짧다”며 “하지만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셀 수 없는 미팅과 기업탐방, 보고서 확인 등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학창 시절 외교관이 장래희망이었다던 한 펀드매니저는 “투자자와 회사에 기여한 만큼 성과급을 챙길 수 있어 이 직업에 만족한다”며 “하지만 무엇보다 세계 곳곳의 기업과 국가 재무상황 등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이를 통해 낸 성과로 믿고 따라와 준 투자자에게 금전적 수익을 돌려줄 수 있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N자산운용의 한 펀드매니저는 “CEO처럼 주도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게 펀드매니저의 최고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윤정선 기자 wowjot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