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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核에는 核” 목소리 확산
북한의 5차 핵실험 성공에 따른 핵무기 실전배치 가시화로 국내에서 ‘핵에는 핵’을 외치는 목소리가 갈수록 확산되면서 핵무장이 한국 군사·안보·외교의 핫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의 핵무장은 63년 동안 유지됐던 한·미동맹의 와해를 불러올 수도 있는 금기(禁忌)의 단어지만, 북한의 핵공격 위협이 현실로 드러나면서 국가의 생존과 존망을 더 이상 타인의 손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한국사회에서 표출되고 있다. 한국의 핵무장 여부는 비대칭적인 남북한의 군사적 역학관계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국제질서를 뒤흔드는 전환점으로 여겨지고 있어 박근혜정부의 최대 외교현안이자 관리 과제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한반도 안보지형이 일대 전환의 시기를 맞고 있다.
국내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핵무장 필요론은 근본적으로 한반도 유사시 미국이 제공하고 있는 핵우산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불안감과 우려감에 기인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1953년 조인된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어느 한 나라가 군사공격을 받으면 서로 협의하고, 무력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지속하며 강화시키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이 같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해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 억지력 제공 등을 한국 측에 약속해 왔다.
하지만 북한의 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시애틀과 로스앤젤레스, 워싱턴 DC 등을 겨누고 있을 경우 단 한 발로도 수십만의 인명손실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핵미사일 발사 버튼을 과연 미국이 누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은 북한이 핵무기 고도화와 대량확보 단계에 도달하면 이른바 ‘찢어진 우산’이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팽배하다. 올해 4차 핵실험(1월 6일)과 5차 핵실험(9월 9일)을 감행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핵무기 대량확보를 독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핵은 한국이 권한을 갖고 있는 핵무기를 통해서 확실하고 결정적인 억제가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결국 독자적인 ‘공포의 균형’ 수단을 확보해야만 북한의 오판을 방지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김정은은 핵무기를 갖지 못하면 자기가 죽는다는 생각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작은 만큼 남한도 핵무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도 북한핵을 막는 대안 중 하나로 거론된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군축협상 문제와 연동된 만큼 미국의 전술핵 한반도 재배치 결정은 한국의 독자 핵무장과 마찬가지로 험로가 예상된다. 미국은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1991년 미·소 간 전술핵 폐기 합의에 따라 한반도에서 전술핵을 철수했다. 러시아도 동구권과 구소련연방국가들의 핵무기를 회수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 발표로 전술핵 철수를 지지했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미국과 러시아 두 강대국의 합의에 따른 후속조치에 불과했다. 미국이 한반도에 전술핵을 재배치할 경우 러시아의 반발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북한의 핵위협 현실화로 핵무장 찬성 여론은 반대를 앞지르고 있다. 지난 23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전국 성인 1010명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8%가 우리나라의 핵무기 보유 주장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대는 34%에 그쳐 핵무장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두 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 정부 입장에서도 더 이상 미국의 핵우산만을 바라보고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국민들의 안보 불안을 달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다. 북한이 핵탄두 실전배치까지 마치면 안보 위기감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정보 당국은 앞으로 2~3년 안으로 북한의 핵탄두 실전배치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전략 핵폭격기인 B-52와 B-2의 한반도 배치, 핵항공모함, 핵잠수함의 주둔 등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동시에 비상상황을 대비해 한국이 핵무기 보유를 할 수 있는 조건과 상황을 점진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며 “(한국과 일본의 핵 개발을 허용할 것이라는)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와 한국의 핵무장에 대해 곧 구체적인 협상을 진행하고,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가 당선된다면 핵무장을 보다 신중하게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미국은 확장억제 제공을 강조하면서 한국 내의 핵무장 여론 확산에 제동을 걸고 있다. 존 울프스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군축·핵비확산 담당 선임국장은 지난 21일(현지시간) “한국이 자체 핵무기 보유를 추진하는 것은 우리(미국)의 이익에, 또 한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서도 성 김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최근 “한·미 양국 정상뿐만 아니라 군사 전문가들은 전술핵 재배치가 필요하지 않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한국의 핵무장은 일본과 대만의 연쇄 핵무장을 불러와 비핵확산정책을 와해시키는 만큼 미국이 용인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에 대해 미국이 반대하고 있고, 주변국의 반발로 어려움이 큰 건 사실이지만 자체 핵무장 주장이 한국 내에서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미 전술핵 재배치’나 ‘미 전략자산 상시배치’ 등을 대안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지렛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자체 핵무장에 대한 한국 내부의 의지가 향후 한국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 찰스 퍼거슨 미국과학자협회(FAS) 회장의 한국 핵무장 가능성에 대한 보고서도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퍼거슨 회장은 보고서에서 “1998년 추가로 6차례 핵실험을 강행한 인도의 경우 경제제재를 당했지만, 제재가 1년도 가지 않았다”면서 “한국이 핵무장을 할 경우 한국에 대한 제재는 형식적일 가능성이 크며 몇 달 뒤에 해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미국은 동북아 지역 안보환경 전개 상황에 따라 비밀리에 일본과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환영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김만용 기자 my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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