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저성장일수록 人才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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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경제산업부장

10월이 되면 기업 ‘인사시즌’이 시작된다. 승진 대상자 선별·조직 개편을 위한 인사평가와 경영진단이 진행되고, 연말까지 정기인사안이 발표된다. 한 해 동안의 공과와 실적을 따지는 신상필벌 원칙이 냉혹할 정도로 작동하기 시작한 지 5년이 지났다. 경제성장률이 6%대에서 3%대로, 다시 2%대로 거꾸러져 저성장 기조가 고착된 2011년부터다. 그해부터 2015년까지 5년간 30대 그룹 상장사의 종업원 1인당 매출액은 매년 2.7%, 영업이익은 7.1%씩 하락한 반면, 인건비는 4.2%씩 올랐다는 조사가 있다. 기업은 당연히 수익성을 회복하기 위해 상시적인 인적 구조조정을 실시했고, 그때마다 실적주의 원칙이 기본 잣대가 됐다.

CEO스코어가 분기보고서를 바탕으로 파악한 30대 그룹 주요 계열사 임원은 올 상반기 총 9632명으로, 지난해보다 484명(4.8%)이 감소했다. 상무급이 4.3%, 전무급은 5.3%, 부사장급은 2.7% 줄었다. 사장급이 234명에서 242명으로 소폭 늘었다지만, 임원진이 실적에 근거한 책임경영의 타깃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임원의 산술적 경쟁률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30대 그룹에서 임원이 되는 비율은 2013년 직원 100명당 1명꼴에서 2015년에는 107명당 1명꼴이다. 기업마다 인수·합병(M&A)과 구조조정을 실시한 결과다. 임원이 되면 군대에 빗대 ‘별을 달았다’고 치켜세우는데, 일 년짜리 계약을 하는 ‘비정규직’이다. 임원을 10년 이상 하면 “천수(天壽)를 누렸다”고 하지 않던가. 그들은 각 기업의 기획·연구개발· 영업·생산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군대로 치면 연대장이자 사단장들이다. 그들의 능력과 사기에 전장의 사기와 성패가 달렸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기업들의 문화에선 “임원 자리는 실적에 따라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신세”라는 자조에 더 익숙하다. 경영 리더십의 인적 토대가 안정적으로 축적되기 어려운 풍토다.

올 연말 인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정보기술(IT), 전자, 자동차 등 선도 부문의 업황이 불투명한 데다 구조조정의 파도를 넘고 있는 조선·철강·석유화학 부문도 어둡기만 하다. 일각에선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단행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성과를 놓고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기업 경영의 기본이다. 거기에 따라 공평한 인사가 이뤄지는 게 당연하다. 다만, 단기 실적에만 기초한 인사가 지속되면 조직 피로감이 누적될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로 인해 인사를 통해 꾀해보려던 조직문화 쇄신이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조직이 경직되고 기존의 상명하복식 문화가 견고해지면서 창의와 도전의 분위기는 움츠러들게 된다.

기업은 오히려 위기국면일수록 연구개발과 인재 투자에 힘써야 한다. 무에서 유를 만들고, 이제는 세계적 기업으로 일어선 국내 기업들의 성장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저성장 시대에는 구성원들의 몰입도가 떨어져 조직의 활력을 높이는 인사가 필요하고, 변화에 대한 내부의 요구가 강해질수록 잠재성을 지닌 인재를 발탁해 동기를 유발하는 게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새로운 트렌드에 대응하는 방식, 혁신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인사를 활용해 조기 성과를 내보려는 단기(短期)·단견((短見)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지속형 혁신’(sustaining innovation)과 ‘시장 창조형 혁신’(market-creating innovation)을 요구받고 있다. 잠재성과 도전성을 견지하면서 불확실성에 맞서는 능력을 내재화해야 한다. 사람을 아껴 쓰라는 뜻이다. ‘파괴적 혁신’을 강조해온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도 올해 다보스 포럼에서 이런 측면을 이례적으로 강조했다.

저성장 시대의 기업 인사에는 신상필벌의 원칙만 있는 게 아니다. 우직한 신뢰를 보여주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인사가 있고, 긴 안목으로 사람을 키우는 백년수인(百年樹人)의 인사도 있다. 식민지와 전쟁으로 인한 경제 황무지에서 오늘의 세계적 기업을 일으킨 창업 1세대는 어려울 때 더 적극적으로 좋은 인재를 키우고 아꼈다. 2세를 거쳐 이제 3세, 4세로 내려오면서 그런 기풍이 퇴색되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사는 중요한 경영 행위다. 기업 환경이 어려울수록 멀리 보는 인사의 중요성도 더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