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그들만의 리그로 끝난 國監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유병권 정치부 차장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오는 21일 운영위원회의 청와대 국감으로 사실상 막을 내린다. 집권 여당의 국감 보이콧이란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로 야당만 참여한 ‘반쪽’으로 시작된 이번 국감은 15대 국회 말부터 18년 동안 국감 현장을 모니터해 온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이 처음으로 ‘F’ 학점을 줄 정도로 내용과 형식, 운영 면에서 최악의 ‘정치 국감’이었다. 여당은 처음부터 무책임했고, 야당은 시종일관(始終一貫) 무능했다. 이번 국감은 ‘기(起)-승(承)-전(轉)-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이라 할 정도로, 야당은 전 상임위에서 관련 의혹을 쏟아냈다. 하지만 누가, 어떤 목적으로 재단 설립을 기획하고 주도했는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씨와 차은택 씨가 연루됐는지 등의 핵심 의혹을 밝혀내지 못한 채 야당은 변죽만 울렸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최 씨와 차 씨의 증인 채택을 막는 ‘홍위병’ 역할을 마다치 않았다. 이런 국감을 보면서 국민은 어떤 기대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 정부를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속 시원한 스캔들?, 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초래할 수 있는 메가톤급 폭로?, 16년 만에 탄생한 거야 3당의 힘자랑?… 아닐 것이다. 그런 것은 내년 대통령 선거만 바라보는 정치꾼들의 바람일 뿐이다.

올 국감은 안보·경제·사회 위기 등 미증유의 국가적 복합 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9월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실업률(9.4%)에 시달리는 청년들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일자리가 마련되는 국감을 원했을 것이고,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대하며 파업 중인 노동자는 일방적 해고의 잣대로 이용되지 않는 공정한 평가 기준이 논의되길 기대했을 것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빅2’의 위기로 코스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애타게 바라봤던 개미 투자자들은 수출·성장 절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경제 정책이 탄생하길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국감은 국민의 바람을 저버렸다. 국민은 고통과 위기를 벗어날 해법을 기다렸는데, 정치권은 의혹 제기와 폭로, 정쟁이란 엉뚱한 답을 내놓았다. 무용론이 아니라 국감 폐기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권력층의 비위 의혹에 분노하는 것마저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민생은 힘들어지고 있다. 대기업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수백억 원의 기부금을 냈으니, 그만큼 법인세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은 경제살리기 답이 아니다. 같은 야당 의원으로부터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이 긴밀히 논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청와대가 국정원을 동원해 박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를 물색했다는 폭로는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니다. “수사 중이라 말할 수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한 증인의 뻔뻔함도 답이 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국회의장 직속의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추진위원회’가 국감 개선 방안으로 제시한 증인 신청서 의원 개별 제출, 증인 신문 여부 기재 등 ‘실명제’ 정도로는 정치 국감 구태를 끊어낼 수 없다. 이 같은 정치 국감은 폐기해도 괜찮다는 각오로, 국민에게 해법을 제시하는 정책 국감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상시 국감, 집중 국감, 증인 선택제 등 국감 개혁 방안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yb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