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개헌=反개혁’이라는 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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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정치부 선임기자

한국 현대사에서 광장민주주의는 체제 변동의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한 세대 전 6월항쟁이 ‘1987 체제’를 만든 것처럼 이번 촛불평화혁명도 ‘2017 체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1987 체제’가 ‘광장민주주의→직선제 개헌→대선’의 흐름을 만들었듯 ‘2017년 체제’는 ‘광장민주주의→분권형 개헌→대선’의 흐름을 만들며 새 체제의 원년을 맞이해야 한다고 믿는다.

개헌에 집착하면 개혁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개헌=반(反)개혁’이라는 독(毒)의 논리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에서 펴낸 ‘분권형 개헌 저지 보고서’에 항의 성명을 낸 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최근 문재인 지지자를 자처하는 이들로부터 문자와 전화 테러에 시달렸다고 한다. 욕설을 뜻하는 ‘18원’ 후원금을 무더기로 입금받은 의원도 다수다. 살기(殺氣)는 물대포나 쇠파이프에만 있는 게 아니다. 온·오프라인을 통한 악성 비난과 인신공격도 폭력이다. 이런 유형의 테러 뒤엔 절대권력을 향한 위험스러운 동경이 자리 잡고 있다. 제왕적 권력이 손에 잡힐 것 같은 오만함과 조급성이 폭력과 테러의 진원이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집권 후)2018년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 수 있다”고 밝혔지만 솔직히 미덥지 않다. 당선 후 개헌 약속을 지킨 대한민국 대통령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민주화운동의 거목인 YS와 DJ, 두 전직 대통령도 개헌 약속을 깼다.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는 기자에게 집권 후 개헌 약속을 “웃기는 소리”라고 했다.

왜 개헌인가. 내적으로는 저주와 재앙을 무한 반복하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대신할 새 체제를 찾아야 하고, 외적으로는 글로벌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지금의 대통령 단임제로는 측근·친인척 비리와 권력 농단의 유혹을 끊을 수 없다. 지금의 헌정체제로는 전 세계적인 기술 진보와 국제적 분업구조의 변동이 몰고 오는 저성장과 격차를 감당할 수 없고, 미·중 패권 경쟁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도 없으며, 미래 성장동력이 될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해나갈 수 없다. 6·25는 종전 후 30여 년간 군사적 권위주의라는 테제(these)를 형성했고 1987년 6월항쟁은 또 다른 30년 동안 대통령 단임제라는 반(反)테제를 정당화시켰다. 이제 작금의 촛불혁명은 독점과 중앙집권을 대체하는 분권과 실질적인 민주주의라는 종합테제로 나아가는 동력이 돼야 한다.

개혁파의 개헌파 공격에서 30년 전 대선을 앞둔 후보단일화(후단) 그룹과 비판적지지(비지) 그룹의 갈등이 떠올랐다. 당시 YS 지지자는 후단을, DJ 지지자는 비지를 주장하며 독하게 싸웠다. 후단 그룹은 비지 그룹을 분열세력으로 내몰았고 정권을 획득했다. 이후 대한민국은 양분됐고 오랫동안 화동할 수 없는 길을 걸었다. 개헌하면 개혁할 수 없다는 주장도 반대편을 반개혁론자, 분열론자로 모는 도그마에 빠질 우려가 있다. 대통령을 탄핵한 대한민국 정치권과 시민사회에 주어진 또 다른 도전은 대통령제를 탄핵하는 일이다. 대권 주자들 간에 ‘개헌연대’를 띄우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전진해야 한다. 개혁만 부르짖다가 개헌을 외면한다면 ‘1보 전진, 2보 후퇴’의 우를 범하게 될지 모른다. mins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