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개점휴업’ 고려항공·북한관광 등에 北 공작원 ‘위장취업’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2일 오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시내에 위치한 조선국가여유국(북한관광국) 사무실의 문이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다.

- 말레이 ‘北 사무실’ 찾아가보니

3년전 취항 중단 된 고려항공
시내 한복판에 버젓이 자리해
최근엔 직원들 출근조차 안해

자물쇠 잠겨있는 북한관광국
“가끔 한 명 드나드는 것 봤다”

‘현광성 은신說’ 북 대사관 앞
직원 나와 말레이 정부 비난

22일 오후 북한 고려항공의 쿠알라룸푸르 사무소가 위치한 잘란 암팡 지역의 한 오피스 빌딩. 북한 고려항공 사무소는 이 건물 20층에 있는 ‘하이스카이’라는 렌털업체 내부에 위치해 있었다. 김정남 암살 사건에 북한 유일의 민간항공사인 고려항공 직원까지 연루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말레이시아에 있는 북한 회사들이 공작원들이 은밀히 활동하기 위한 ‘위장 취업소’로 활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고려항공은 2011년부터 매주 1회 평양발 쿠알라룸푸르행을 운행해왔다. 하지만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인한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통과로 중국·러시아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국외 노선 운항이 대부분 중단됐고 말레이시아 노선 역시 2014년 들어 취항이 중단됐다. 하지만 취항이 중단된 지 3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고려항공 사무실은 여전히 시내 한복판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날 하이스카이의 한 직원은 “고려항공 사무실이 이곳에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다만 직원들이 얼마 전까지는 있었는데 최근에는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은 인근에 위치한 조선국가여유국(북한관광국)도 마찬가지였다. 북한관광국 말레이시아 사무소는 북한이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지난 2012년 8월에 쿠알라룸푸르에 설립됐다. 북한관광국 홈페이지는 여느 관광회사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다양한 명소와 행사 사진 등으로 여행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이날 찾은 북한관광국 사무실은 자물쇠로 굳게 잠긴 모습이었다. 이웃 주민에게 직원들을 본 적이 없냐고 묻자 “이들은 항상 문을 닫고 있다”며 “다만 가끔 오전에 나이 많은 한 사람이 드나드는 것은 봤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에 들어와 있는 북한 회사들이 사실상 수년간 개점휴업 상태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일각에서는 북한 공작원들의 위장 취업소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 관계자는 “워킹 퍼밋(취업 비자)을 받고 들어오면 상대적으로 장기간 체류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 공작원들이 이런 점을 이용, 위장 취업 형태로 말레이시아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23일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김정남 암살 사건의 유력 용의자이자 2등 서기관인 현광성(44)이 북한대사관에 은신 중이라는 이야기가 돌면서 이날 오전 북한대사관 앞에는 수십여 명의 취재진이 몰려 북적였다. 특히 오전 9시쯤 북한대사관 관계자는 갑작스럽게 취재진에게 다가와 말레이시아 정부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는 “우리 대사관은 일체 이번 수사와 관련해 협조받은 것이 없다”며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대단히 항의한다”고 말했다.

쿠알라룸푸르 = 글·사진 장병철 기자 jjangbe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