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팀장의 북레터>책은 예고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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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들을 읽다 보면 묘한 ‘시간차’가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세계화 시대, 그들의 문제가 우리 문제이고, 그들의 관심이 우리 관심인 경우가 많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비슷한 현상인데 우리보다 조금 앞선, 그러니까 ‘우리에게도 곧 닥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와 완전히 다르거나 우리보다 한참 앞선 경우가 아닌 약간의 시간차입니다.

예를 들어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나오고 있는 일본의 미니멀리즘 관련 책들, 직장에 목숨을 건 ‘사축(社畜)인간’이 되지 않겠다는 직장 에세이, 동네 빵집에서, 숲에서, 어촌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으려는 책 같은 것들입니다. 책이 나온 뒤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한국 사회에서도 이런 흐름이 분명해집니다. 일종의 예고등 인 것이죠.

뉴욕에서 활동하는 에세이스트 크리스틴 돔벡의 ‘자기애적 사회에 관하여’(사이행성)도 그런 책입니다. 제목만 봤을 땐 자기중심 세대, 나르시시즘이 넘쳐나는 사회에 대한 분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낯설지 않은 진단이죠. 하지만 책은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책이 아니라 나르시시스트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 나르시포비아가 중심이었습니다. 나르시시즘 공포증. 자기밖에 모르는 자아도취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로 인해 적대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나르시시스트를 다룬 책들이 많이 나왔는데 대부분 인간 관계에서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부모, 애인, 상사와 동료 때문에 고통받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었습니다.

돔벡은 나르시시즘이 21세기 유행병이라고 진단합니다. 미국 사회에서는 1970년대부터 모습을 드러내,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 사이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함께 본격화됐다고 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의 개방적이고 자신감 넘치며, 자기도취적인 성향이 극단적 자기애와 이기심으로 치달았다고 합니다.

아이들을 너무 애지중지하고 관심과 칭찬을 퍼부어 키운 베이비 부머 세대의 양육방식이 중요한 역할을 했고 SNS와 리얼리티쇼는 나르시시즘의 강력한 동인입니다. 여기에 젊음에 열광하는 나이 든 세대들이 이들의 과도한 자기애마저 아름다운 것으로 여기면서 사회 전체에 나르시시즘 도미노가 일어나고 있다고 풀이합니다. 저자는 각종 나르시포비아 관련 사이트 등을 알려주며 나르시시스트들은 흡혈귀이니 당장 관계를 끊으라는 조언도 서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자존감이 부족하다는 우리 한국 사회에도 나르시시즘 포비아가 사회적 문제가 될 날이 올까요. 돔벡은 책의 끝에서 타인을 참아내지 못하는 자신의 자기애적 성향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기애의 모퉁이를 돌아 관계의 봄을 찾았으면 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말이 타임 슬립으로 우리에게 전해진 쪽지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