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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김회평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7년 03월 27일(月)
‘工場 프레임’에 갇힌 근로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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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근로시간 단축, 곧 최장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자는 의제는 사실 노·사·정이 진작 결론을 낸 사안이다. 2015년 9·15 노사정위원회 합의문에는 3자가 치열한 논박을 거친 끝에 마련한 성과가 들어 있다. 나중에 합의서를 찢어버린 노동계도 박근혜정부가 의원 입법 형태로 ‘노동개혁 5법’을 추진하려 했을 때 근로시간 단축이 담긴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해선 별 시비가 없었다. 5법 중 파견법·기간제법을 빼곤 친(親) 노동계 법안이란 평가가 주류였다.

노사정 합의문은 기업 규모에 따라 4단계, 1∼4년 시행을 유보하고, 이후 4년간 주 8시간 특별연장 근로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휴일근로 중복할증 문제는 법원에 판단을 미뤘다. 그런데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위가 시행 유예 대신 형사처벌을 2∼4년 면제하는 ‘면벌(免罰)’로 바꾸고, 특별연장 근로는 언급 없이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정치권이 끼어들어 노사정 ‘합의’를 뒤엎은 꼴이다. 결국 정당 간 합의는 미뤄졌지만, 대선 정국을 주도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을 반영한 논의였다는 점에서 재점화 소지가 크다.

세계 최장 수준의 ‘과로국가’를 탈피하자는 명분, 그리고 일하는 시간을 줄인 만큼 일자리를 만들어낼 거라는 기대가 근로시간 단축론을 지지하는 양 축이다. 한국인의 연간 근로시간은 2015년 211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766시간을 크게 웃돈다. 취업자는 혹사당하는데 청년은 일을 못 해 애태우는 부조리를 더 두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근로시간 단축이 고용 확대로 이어지려면 중요한 변수를 해결해야 한다. 한마디로 줄이면 결국 ‘돈’이다.

국내 법정 근로시간은 1989년 주 48시간에서 44시간으로, 2003년 다시 40시간으로 줄었다. 그러나 두 차례 획기적인 근로시간 단축에도 고용률 상승효과는 1%를 밑돌았다. 근로시간 단축이 기업들에는 초과근로수당 부담만 더 늘렸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휴일근로 중복할증 문제가 걸려 있다. 현재 평일 연장근로에는 50% 임금이 추가되는데, 휴일에 일한 경우 여기에 50% 더 가산해 100%를 지급해달라는 소송 14건이 법원에 계류 중이다. 대법원이 근로자 손을 들어주면 최소 7조5000억 원을 당장 토해내야 할 판이고, 향후 추가 부담도 뒤따른다.

근로자도 잠재 피해자에 속한다. 휴일을 합쳐 주 68시간을 일하다 52시간으로 묶이면 월 300만 원을 받던 사람은 210만 원까지로 줄어들 수 있다. 연봉 1억 원에 육박하는 현대자동차만 해도 특근수당이 2000만 원 안팎이다. 중소기업 근로자 대다수는 초과근로에 생계를 기대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임금삭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을 요구하지만, 그래서는 고용 확대로 이어질 수 없다. 대선주자들이 근로시간 단축으로 50만 개 일자리 창출을 외치면서도 정작 중요한 이 대목에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언급을 회피한다. 위선이다.

한국 근로자는 일에 치여 살지만,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OECD에서 꼴찌권이다. 이런 모순을 방치한 채 근로시간 단축을 강제하는 건 기업엔 규제가 된다. 근로시간에 대한 낡은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다. 주 68시간이든, 주 52시간이든 지금의 근로시간법제는 산업화시대의 공장(工場) 시스템을 근간으로 한다.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직장과 직무의 개념은 혁명적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에선 화이트칼라에 대한 초과근로시간 개념이 사라지고 있고, 일본에선 재택근무·투잡 허용 등 ‘회사인간’의 가치관이 무너지는 추세다. 독일에선 연장근로에 돈을 주는 대신, 1년 등의 단위로 일과 휴식을 맞바꾸는 ‘근로시간 계좌제’가 일상적이다. 국제노동기구(ILO)가 권하는 연장근로 할증률이 25%다. 한국에선 2배 수준인 50%이고, 휴일 중복할증까지 인정되면 100%도 나올 판이다. 이런 고율로 유혹하니 과로를 자청할 수밖에 없다. 유연한 고용, 일과 삶의 균형이 글로벌 흐름인데 한국은 거꾸로 가는 형국이다.

한국은 산업 현장의 로봇밀도가 이미 세계 1위다. 공장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은 것이다. 완충장치 없는 근로시간 규제를 밀어붙이면 기업들은 자동화 시설을 더 늘려 대처하거나 외국으로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취업에 목마른 청년들은 일자리 창출은커녕 일자리 감축을 지켜봐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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